1.
2015. 10. 23(금)~25(일).
2박3일 만의 짧은 여정(旅情).
고향집에 다녀온 것도 여정에 들어갈까?
지난 금요일에 시골로 떠났다.
고향집에 도착하니 대문이 훵하니 열렸다.
누가 열었어? 내가 고향집을 떠날 때 대문을 닫지 않았다는 뜻일까?
대문 안 사랑방 부엌 바닥에는 배달된 지 한 달이나 더 지난 우편물이 시멘트 바닥 위에 떨어져 있었다. 우체부가 대문 틈새로 우편물을 던져넣었다는 뜻. 결혼청첩장도 있고, 월간지 3종류(디지털농업, 전원생활, 산림)도 있고, 재산세 납세고지서 등도 있었다.
지난해 2월부터 빈 집이다.
내 왼쪽 겨드랑이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피부병이 생겼다. 친정으로 내려온 딸이 놀래고. 자정무렵에 시골 종합병원 응급실로 급히 실려 갔다. 두 군데 큰 병원에 돌아다녔으나 대상포진 약은 겨우 하루 분밖에 수령하지 못했다.
날이 새자마자 큰 병원이 있고, 치료약을 살 수 있는 서울로 급히 올라왔다. 나는 금새 치료받고 나았다.
문제는 함께 올라온 아흔여섯 살의 어머니.
극도로 노쇠했기에 6월 중순에 저녁밥 먹다말고는 그참 응급실로 급송. 그 뒤로는 돌아가실 때까지 긴 입원생활. 올 봄에 아흔일곱 살을 넘긴 며칠 뒤에는 어머니를 아비의 산소 옆에 묻고는 나는 서울로 상경.
어머니가 살았던 집은 벽촌의 낡은 농가다. 어머니가 떠난 뒤로는 산새와 들고양이들이 드나드는 그런 집으로 쇠락하고 있었다.
오랜 만에 도착한 시골에는 세월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제는 10월 하순. 추수가 끝난 논도 있었고, 누런 벼가 조금은 남아 있으나 조만간 수확이 끝나 가는 절기였다. 가을은 저만치 지나가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텅 비었는데도 내 텃밭은 허무가 가득 차 있었다. 텃밭 세 자리는 완전히 풀들이 차지했고, 억새꽃이 하얗게 피는 잡초들의 세상이었다.
텃밭농사를 짓지 않고 이태나 방치한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엉터리 농사꾼, 게으른 농사꾼이었던 내가 어머니의 노환으로 병원에 전전긍긍하는 바람에 밭은 풀밭이 되었다. 반성과 아쉬움이 물씬 풍기는 밭을 후이 휘둘러보고는 이내 고향후배가 사는 이웃마을로 갔다.
그 그곳은 수십 년 전에는 갯바다가 코앞인 마을이었다. 수십 년 전, 갯바다를 막아 서 만 든 간사지 들판이 한없이 펼쳐지는 농촌마을이다,
허름한 농가로 나를 초청한 사내는 50대 중늙은이. 10여 년 전에 수도권에서 이사센터를 운영했다. 이사짐을 옮기다가 전선주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감전사고. 낙상. 그 후유증으로 정신장애와 신체장애가 심한 사내다. 종토를 짓는 산지기가 되어서 겨우 짓는 밭농사.
그가 애써 지은 멧돌호박, 풋고추, 가지 등 조금씩 얻었다.
'시장에서 돈 주고 사면 훨씬 좋은 것을, 더 많이 사겠지요.'
라는 아내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농사 지으려면 영농비가 들어가다는 것을 알기에 농작물을 공짜로 얻어서는 안 된다. 부실한 몸으로도 농사 지으려고 애쓰는 처지가가엽고, 더우기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살기에.
저녁 무렵에 내 집으로 돌아왔다.
동구밖에 떨어져 으깨어진 은행알 부스러기를 대빗자루로 쓸었다.
내가 수십 년에 윗밭 가생이 언덕에 심었던 은행나무는 키가 훌쩍 컸다. 누렇게 익은 은행알이 많이 떨어졌으며, 차가 다닐 때마다 고약한 인분냄새를 풍기었을 터. 깨지고 잘게 부스러진 채로 햇볕에 말라버렸기에 대나무 빗자루로 쉽게 쓸었다. 삼태미에 담아서 웃밭 과일나무 밑에 부어주었다. 대추나무, 모과나무의 뿌리 근처에도.
아쉬운 거야 또 있었다. 입맛을 즐길 수 있는 으름, 무화과, 대추의 열매가 모두 없어졌다. 으름이 하나도 안 보였다. 땅에 떨어져 말라비틀어졌고, 곰팡이도 잔뜩 슬었다. 저 혼자 익었다가 땅에 떨어져 썩었다는 뜻.
'누가 무화과를따 먹은 줄로 알았는데 아닌 게 확실해요. 길가에 있는 무화과야 오가는 사람들의 손을 탓겠지만 외진 곳에 있는 무화과나무 가지에는 말라비틀어져 썩은 흔적이 남았네요.'
아내가 아쉬운 듯이 말하며, 말라버린 으름을 줏어서 나한테 보여주었다.
바깥마당가에 선 대추나무에서도 자갈 위에 잔뜩 떨어져 있었다. 비바람에 떨어지고, 오래되어 물러쳐졌다는 뜻. 텃밭에 있는 것도 대추나무도...
사람이 따지 않은 과일은 다 자연으로 회귀하고 있었다.
텅 빈 시골집은 많은 것들을 비어내고 있었다.
비워내는 것이 있으면 또 채워지는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사라지는 것들이 있는 시골에는 또다시 싹을 틔우는 것들도 많았다. 가을철이면 새 싹을 내미는 잡초들이 무척이나 많이 자라고 있었다.
사계절은 가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특히 나한테는.
10. 24. 토요일 아침.
날이 새자마자 대나무 장대를 높이 쳐들고는 하늘을 겨냥했다. 베어낸지 오래 된 대나무는 비바람에 삵았다. 쉽게도 부러지는데도 마땅한 바지랑대가 없어서 그것을 사용했다. 힘겹게 높이 쳐들었다. 하늘을 콕 찌르듯이 붉은 색깔의 감을 겨냥했다.
수령 50여 년이 훨씬 더 넘는 늙은 감나무다. 아비는 과수원 농사를 짓는다며 대전에서 묘목을 잔뜩 사다가 심어놓고는 저 너머의 세상으로 일찍 가 버렸다. 그 옛날 머슴(일꾼 아저씨)는 논농사 위주로 일했기에 밭은 관심밖이었다. 사과나무는 하늘소 등 해충으로 작살났기에 젊은날의 내가 다 베어냈다. 아비의 흔적으로 남긴 감나무 두 그루.
이제는 너무 늙어서 감이 조금만 열린다. 한 그루는 고사 직전인데도 나는 차마 베어내지 못했다. 삼십 여 년 전에 죽은 아비의 흔적이었기에.
재래종 감나무 종류이었기 때문일까? 홍시는 높은 하늘 에박혔다.
늙은 감나무 말고도 서너 그루가 더 있다.
저절로 싹이 터서 자생한 감나무도 있고, 장에서 사다가 심은 대봉감나무도 있고, 고염나무도 있다.
종일 180여 개를 땄다.
고개를 뒤로 졋혀서 따려면 목덜미가 무척이나 아팠다. 주먹 쥔 손으로 뒷목을 톡톡 쿡쿡 치며 쥐어박았다.
감을 딸 때에는 날아갔던 새들은 내가 쉴 때마다 다시 돌아와 감나무 꼭대기에 앉았다.
새들이 감나무 꼭대기에서 떠나기도 하고, 가지에 앉기도 했다. 새들이 감을 좋아할까? 아니면 '그것은 내 홍시(紅枾)여" 하며 감 따는 나한테 시위하는 것일까?
'알았다고.'
까치밥으로 40여 개를 남겼다.
10. 25. 어제는 일요일. 충남 보령시 주교면 농업기술센터로 나갔다. 농업활력화대회 3일째.
재작년(2013년)에는농업대학 단기교육과정(100시간짜리)를 이수했다. 동기생도 만났고, 센터장 소장과 과장들도 만났다. 국회의원, 시장도 와서는 덕담도 남겼다. 많은 사람들. 곳곳에 전시한 많은 화훼작물, 가을을 상징하는 분재, 석작품, 값 싼 농작물이 가득 찼다. 먹을거리도 있고, 흥겨운 노래잔치와 장끼자랑도 있었다.
행사 도중에 나는 살짝 빠져나왔다.
대천 시내 버스터미랄 2층에 있는 결혼식장에 다녀와야 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시골집으로 배달된 결혼청첩장. 동네사람이 장가 가는 날에기에 대천버스터미날 이층 결혼 결혼식장에도 잠깐 들렀다. 쉰세 살의 늙은 총각, 마흔네 살의 늙은 처녀의 만혼결혼식인데도 하객들은 참으로 많았다.
부페로 점십밥을 먹고는 농업기술센터로 다시 들렀다.
시골집에 들러서 차 트렁크에 가을걷이를 잔뜩 실었다.
몸이 불편한 고향후배한테 사 온 호박도 실고, 애써 딴 감도 실고, 얻어 온 풋고추도 실었다.
어제 밤중에 서울 도착했다.
2.
오늘 아침.
늙은 멧돌호박을 깎아 달라는 아내.
나는 세 개 가운데 작은 것을 골라 두 팔로 안았다.
큰 것은 큰딸한테 나눠주어야 할 터.
가운뎃 것은 젖먹이가 딸리고 또 임신한 며느리가 잠실에 잠깐 들르면, 내가 겉껍질을 벗겨 주어야겠다.
부러진 숫돌을 찾아내어 부엌칼을 쓱쓱 문질렀다. 날카롭게 칼날을 갈았다.
면장갑을 끼고는 멧돌호박에 칼을 박았다. 힘을 불끈 주고는 힘겹게 호박을 반토막으로 잘랐다.
'저런, 이거 정말로 농약 안 치고도 농사 지었구먼.'
호박 속살이 노랗게 변색하고, 속이 딱딱하게 경질화되었다. 호박 안에는 벌레가 잔뜩 들어서 꿈틀대었다.
허리가 잘록한 나니니벌 계통의 벌이 호박꽃 속에서 알을 깠다는 뜻. 호박이 맺히고, 클수록 호박 속에 든 알도 점차로 컸다는 뜻이다. 길이 1.5cm의 구데기(애벌레). 수저로 속살을 긁어내고는 호박 겉껍질을 벗겨졌다. 호박 속살도 칼로 조심스럽게 도려냈다. 호박벌레가 많이도 갉아먹었다고 해도 깎아낸 호박은 잔뜩이나 되었다.
아내가 냉동고에 넣어 보관하고는 수시로 호박국을 끓이거나 잘게 썬 호박에 밀가루를 묻히고는 전을 부칠 게다. 살짝 부치면 맛있는 간식거리가 된다.
적은 돈으로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게 농작물이 늙은 호박이, 고구마이다.서민이 즐겨먹는 이들은 가을의 진정한 맛이다.
시골생활이 꿈이었을까?
시골집에서 이틀 밤을 잤다.
자다가 부엌문을 통하여 앞마당에 나오면 하늘에는 달이 있었다.
맑은 밤하늘에 달빛 처연하게 빛났고 별들도 반짝거렸다.
시골 집에서는 맑은 바람이 쇄려하게 불었다.
서울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한 맑은 공기였다.
서울에 도착한 지 30분이 채 안 되었는데도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지루하고 후덥지근한 열기가 나기 시작했다.
짜증을 잊으려고, 바깥엔 나가지 않는 채 컴퓨터에 일기를 썼다.
서울에서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나를 지치게 한다.
하루가 지난 오늘은 종일 몸과 마음이 무척이나 나른했다.
고향집에 하루라도 더 오래 머물러야 하는데도 자꾸만 귀경을 재촉하는 아내의 말에 등신처럼 아뭇말도 하지 못한 채 어제 서울 올라 온 나.
서울의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진 아내와 시골생활에 길들여졌을 것으로 착각하는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른다.
건널 수 없는 견해차이, 생각의 다름이 나를 더욱 지치게 하나 보다. 서울에서 살아야 하므로.
2015.10.26.월요일.
첫댓글 무슨이유로빈집이되었을까요?왠지가숨이찡하네요
엥? 벌써 댓글?
고맙기도 하여라.
글 쓰는데 아내가 어제 시골에서 가져 온(구매) 멧돌 호박 하나를 깎으라고 지시(?) 하기에
머슴이 되어서 호박 하나 깎으려고 중단한 글인디...
늙은 호박 속에는 작은 버러지가 잔뜩. 호박꽃속에 나나니벌 계통이 작은 벌이 알을 깠다는 뜻.
호박속에 갇혀서 알이 부화하고 자라고.. 갸들은 호박살을 갉아먹다가 나중에는 호박살을 뚫고 나와 세상으로...
히히 나이가들면여자가왕이랍니다 ,요즈음은폰으로하기때문에자연히빨리할수있는것이아닐까요
나이가 들면 여자는 여왕이 되는군요.겁나는 세상이네요. 저 늘 조심하면서 살 게유. 고개는 땅에 수그리고. 숨도 조심스럽게 내 쉴 게유.
바깥으로 나서 운동하라는 아내의 지청구를 먹으면서도 종일 집안에 쑤셔박혔다.
북박이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잘글은 생활일기.
대지회에서 회원의 글과 사진을 읽은 것에 대한 답레로 잡글 하나 올렸습니다.
ㅎㅎ...영화처럼 그림이 주욱 연상되는 2박 3일이로군
그사이 여러가지 볼일도 보고 감도 따고...할 일 다 하고 다녀온 고향 길일세
나에게는 고향집도 사라졌고 추억들마져 가물가물 하고...
그저 부모님 산소에 벌초 겸 성묘하러나 가는 고향일세
나는 묘를 안만들려고 작심하는지라, 아마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 할
그런 고향이라네, 최공도 지금이야 고향 에 가끔 가지만 머지않아 뜸하게 되고
가지 않게 될 날이 올 걸세, 물론 토지 등이 정리되어야 겠지만 ㅎㅎ
하여간에 고향 잘 다녀 오셨네
시골땅 처분했으면 싶어. 아무 쓸 데도 없는 산과 밭...
이용가치가 없어도 세금은 꼬박꼬박 물리대. 심지어는 묵정밭이 되어버린 탓에 농로도 없는 땅.
모두가 경작을 포기한 땅은 세금이 더 물려. 나쁜 국가여. 농로 등을 개설해 주고 세금을 뜯어가던지 말던지 하지..
점점 산길도 밭길도 없어져. 동네 뒷편 산자락의 밭은 도로 숲으로 변해가는 실정이지.
정리해야 하는데 누가 사지? 국가? 정부?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하도록 하는 정책을 펼쳐. 그게 국가재정수익이 늘어날 터.
나쁜 국가, 못난 정부를 탓해야 되는지.. 다 필요없는 고향이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