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은유의 세계로 떠나는 동시 열차
박승우(동시인)
1
조수옥 시인은 1997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되어 등단한 후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한 중견 시인이다. 성인시를 쓰던 시인이 어떤 계기로 동시를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동시를 열정적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씽씽카 타는 참새들』는 경기문화재단 창작 지원금을 받아 출간하는 조수옥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동시집에는 총 50편의 동시가 실려있다. 수많은 동시 중에서 선택받은 작품일 것이다.
동시집 해설을 청탁받고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해설을 쓸 만한 능력도 없는 데다 혹 좋은 작품에 사족을 달아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결국은 독자 입장에서 감상문 정도 쓰는 걸로 하고 수락하였다.
동시집을 읽고 첫 번째로 드는 느낌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작품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러 번의 퇴고의 과정을 거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재별로 분류했을 때는 자연이나 사물 소재의 동시가 많았다. 시의 소재가 무엇이든 시적 대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상상력을 더하여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시는 거기에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하고 동심이 바탕되어야 한다.
조수옥 동시의 가장 큰 특징은 비유를 잘 활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고 정서적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의인화하여 사물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은유로 참신한 모습을 그려낸다. 조수옥 시인은 우리 주변에 있는 익숙한 것을 비유(특히 은유)를 통하여 낯설게 표현하는 기교가 뛰어나다. 그런 능력은 대상에 대한 관찰과 사유 그리고 시적 감수성 훈련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럼 시인의 작품을 통해서 은유와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2
은유로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 몇 편을 살펴보자.
비행기가
기다란 밧줄을 깔고 있다
하늘이 양쪽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려는가 보다
-「비행운」 전문
비행기가 날아가면서 남긴 비행운을 줄다리기 할 때 사용하는 밧줄로 비유하였다. 간결한 동시지만 하늘 운동장에 밧줄을 깔고 가는 비행기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하늘이 양쪽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면 누가 이길까? 비행기는 밧줄을 동서로 깔았을까? 남북으로 깔았을까? 줄다리기 선수는 누구일까? 이 시에는 그 어떤 단서도 없어 알 수가 없다.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줄다리기 밧줄을 깔아놓았으니 독자가 편을 가르고 선수를 기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누가 심었을까
밤하늘 텃밭에 움트는
달의 새싹
-「초승달·1」전문
세 줄짜리 짧은 동시지만 초승달을 ’달의 새싹‘으로 은유한 것이 참신하다. 달을 소재로 수많은 시인이 시를 썼지만, 초승달을 ‘달의 새싹’으로 비유한 시인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비유는 첫 번째 사용한 시인이 시어의 특허권을 가진다. 다음에 누군가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낡은 비유가 되어 그 효과는 현저히 떨어진다.
초승달은 자라서 보름달이 되고 다시 작아져서 그믐달이 되는 순환을 계속할 것이다. 밭에 심은 채소들이 계절에 따라 순환하듯이. 이 동시도 앞서 인용한「비행운」처럼 공간을 많이 열어두었다. 초승달이 달의 새싹이라면 달의 씨앗은 무엇일까? 누가 심었을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여백으로 비워둔 부분은 독자들의 몫이다.
하늘이
지상으로 전송하는
겨울 첫 카톡 문자
-안녕하세요
-첫눈입니다
창문을 여니 온 동네가
꽃잎 휘날리는
동영상이다
-「첫눈」전문
요즘은 맛있는 음식도 아름다운 풍경도 스마트폰이 먼저인 시대이다. 먼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고 음식을 먹고 풍경을 감상한다. 그리고 가족에게 친구에게 카톡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낸다. 하늘도 시대에 부응하여 첫눈을 카톡으로 보냈나 보다. 카톡을 열면 사진을 볼 수 있고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듯이 하늘이 보내온 카톡은 창문을 열면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첫눈 오는 풍경을 카톡으로 하늘이 지상으로 보낸 동영상이라는 발상이 흥미롭다. SNS로 대표되는 시대적 흐름을 동시에 잘 반영하였다.
물이 얼까 봐
틀어 놓은 수도꼭지에서
물 발자국
!
!
!
눈 오는 밤
동네 골목을 순찰 중인
경찰 아저씨 발자국
!
!
!
!
날이 밝자
지붕 처마 끝엔
고드름 발자국
! ! ! ! !
겨울은 발자국을
새기며 지나갑니다
-「겨울 판화」전문
이 동시는 발자국의 보조관념으로 모양의 유사성을 가진 문장 부호(!)를 사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물, 경찰 아저씨, 고드름 발자국이 찍히는 특성에 따라 보조관념인 부호(!)도 다르게 배열하여 실감 나게 하였다. 발자국은 정적인 이미지지만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서는 동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수도꼭지의 물은 얼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물방울 발자국을 찍고, 경찰 아저씨는 순찰을 돌며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고드름은 꽁꽁 얼어붙는 행위를 통해서 발자국을 남긴다. 시인은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조수옥 시인은 한겨울에도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우리 주위의 발자국을 멋진 판화로 새겨놓았다.
칙
칙
폭
폭
칙
칙
폭
폭
봄여름 가을
물줄기를 실어 나르던
열차
너무 추워
낭떠러지역에
그만 멈춰 버리자
서로 몸을 껴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물줄기들
정차 시간은
급행열차 타고 오는
봄이 도착할 때까지입니다
-「겨울 폭포」전문
물이 흘러가는 것을 열차로 비유하였다. ‘칙칙폭폭’은 글자를 세로로 배치하여 열차의 이미지를 재현하였다. 열심히 달리던 열차가 추운 겨울 폭포가 있는 낭떠러지역에서 얼어버렸다. 바다까지 가는 여정이 아직 남았겠지만, 냇물도 쉼 없이 달렸으니 한 번쯤 쉬어가는 것도 괜찮겠다. 아니, 승객인 물줄기가 서로 몸을 껴안고 견디는 시간도 필요하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역경을 이겨내야만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견디면 봄은 올 것이고 열차는 물줄기를 싣고 다시 달릴 것이다.
더 힘차게.
위에 인용한 동시 외에도 은유의 세계로 독자를 이끄는 동시가 많았다. 바람=미용사「바람 미장원」, 팽이채=의사「응급 처방」, 초승달=부메랑「초승달·2」, 호루라기=새「호루라기 새」 등의 작품이다.
3
동시는 어린이를 주 독자로 한다는 점에서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동시가 필요하다. 조수옥 시인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는 비유나 말맛을 살려 재미있게 쓴 동시 몇 편을 살펴보자.
그제는
전라도 댕겨왔당께요
어제는
경상도 댕기왔심더
오늘은
충청도구먼유
내일은
강원도래요
전국 곳곳을
싸돌아다니는
장마철
먹구름 학생들
-「여름 방학」전문
말맛이 있는 재미난 동시다. 여름철이 되면 먹구름은 바쁘다. 이곳저곳 다니며 소나기를 퍼부어 무더위를 식혀주기도 하고, 장마철에는 며칠간 계속 내려 질리게도 한다. 먹구름을 학생으로 의인화하여 지역 사투리로 말하는 것이 정감 있다. 누구나 겪는 경험을 다르게 바라보고 새롭게 표현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콕,
아야!
콕, 콕,
아야야!
콕, 콕, 콕,
아야야야!
얘, 이제 고만해
나 죽는다
-「까치와 지렁이」전문
까치가 지렁이를 쪼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지렁이가 죽을 지경에 처한 상황이지만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콕, 아야! 콕, 콕, 아야야! 하는 모습이 그저 장난치는 모습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얘, 이제 고만해’ 하는 걸로 봐서는 까치도 그 장난을 그만둘 것 같다. 말의 묘미에 의해서 위험한 상황이 해학적 장면으로 바뀌었다. 이 작품에서 생명 존중을 논하는 것은 시인의 의도와 맞지 않다. 까치와 지렁이가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저 비 맞고 나면
흙은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저 비 맞고 나면
씨앗들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저 비 맞고 나면요
-「봄비」전문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재미난 동시다. 여기서 ‘맞고’는 ‘비를 맞다’는 의미와 더불어 ‘회초리와 같은 무언가에 맞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흙과 씨앗은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한다. 흙과 씨앗은 봄비 맞고(또는 봄비한테 맞고) 흙은 빗물을 머금어 씨앗에게 주고 씨앗은 새싹을 밀어올릴 것이다. 이 동시는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라는 시어가 동음이의어인 ‘맞고‘에 의해 절묘하게 호응하고 있다. 봄비와 씨앗의 관계를 새로운 언어 방식으로 해석한 수작이다.
콩들이
항아리 속에서
물만 먹고도 신이 나서
콩
며칠 지나자
머리통이 간지럽다며
콩콩
이제 다 컸으니
어서 내보내 달라고
콩콩콩
주방에 나온 콩나물
고춧가루 마늘 냄새에 눈물 콧물 흘리며
콩콩콩콩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나올걸
콩콩콩콩콩
에이, 할 수 없지
두 손 들었다!
-「콩」전문
이 동시는 콩을 의인화하여 콩나물이 되고 콩나물무침이 되어 가는 과정을 말맛을 살려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의인화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동심이 잘 느껴진다. “물만 먹고도 신이 나서/콩”, “머리통이 간지럽다며/콩콩”, “고춧가루 마늘 냄새에 눈물 콧물 흘리며/콩콩콩콩” 각 연에서 콩이 하는 행동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꼭 아이들이 하는 행동과 닮았다.
이외에도 「졸음 리모컨」, 「응가」, 「새」, 「참새가 요렇게 대답하다 걸리면」 등도 재미있게 읽었다. 한편으로 「민들레꽃」, 「씽씽카 타는 참새들」, 「가을」, 「겨울나기」등의 작품은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4
마지막으로 조수옥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오지』에 실린 성인시 한 편을 소개한다.
옷소매가 길어 수선집에 들렀다
이틀 뒤에 찾으러 오라며
이름을 묻길래 수옥이라고 했다
발음이 어눌했는지
수억이요?
아니 수옥입니다
차라리 수억이면 좋았을 텐데요
수억을 벌 수도 있지 않느냐며
터진 실밥처럼 배시시 웃는다
(으따찰로, 아짐씨 찬말로 말씸 맛나게
해부요 지 이름자까징 수선해불라고 그라요)
듣고 보니 혹 이름을 바꾸면
수억을 벌 수 있지 않을까
구슬(玉)이 서 말이면 무엇 하겠는가
수억이 훨씬 낫지 , 암 낫고말고
수억 수억 수억 씨~익 웃으며
골목 수선집을 나서는데
귀때기를 후려치는 찬바람에
수억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오매 어째야스까잉」전문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재미있는 시다. 실제 있었던 일인지, 경험을 재구성한 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수옥 시인의 언어 감각과 운용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시다. 말의 재미가 있으면서 마지막에 수억에서 수옥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의미심장하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조수옥 시인은 수억이 아닌 수옥으로 앞으로도 시를 쓰며 살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몸에는 뜨거운 시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조 시인은 동시 열차의 기관사가 되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닐 것이다. 시가 될만한 것을 만나면 잽싸게 태워 비유의 옷을 입히고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고 동심의 숨결을 불어넣어 새로운 승객으로 변신시킬 것이다.
두 번째 정차역에는 어떤 동시 들이 내릴까?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