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RTigCS9EGU
오늘 본문에는 두로와 시돈 지방에 사는 한 가나안 여인의 귀신들린 딸이 고침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두로와 시돈은 솔로몬의 성전건축 때 필요한 백향목을 공급받았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레바논에 해당되는 지역인데 이 지역은 예로부터 상업과 무역이 발달해서 부를 누리던 지역이었습니다. 경제가 발달하면 영적으로는 반비례하여 타락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은 신약의 소돔과 고모라도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마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스라엘이 타락함으로 심판을 받을 때 비교의 대상으로 언급될 정도로 .. 차라리 그렇게 타락한 두로와 시돈이 견디기 쉬울 정도로 이스라엘이 타락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등장하는 여인의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다고 나오는데 이는 두로와 시돈의 영적인 상태를 대변해주는 상황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 여인의 이름이 유스타 이고 딸의 이름은 베레니케 라고 알려져 오고 있습니다. 비록 전승이지만 이름이 전해져 온다는 것은 그만큼 이 여인의 신분이 유력한 재력가였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력이 대단하니까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 노력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만 결코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이 이 지역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주님께 나아와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구원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고 오직 외부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이 세상을 의미하고 두로와 시돈에서 딸을 고치지 못한 여인의 모습은 인간 스스로 구원의 방법을 만들어낼 수 없는 영적상태를 보여주는 장면인 것입니다.
■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경제도 아니고 뛰어난 정치가도 과학자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절대유일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소개하는 우리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2절에 보시면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가나안 여인이 주님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두 명의 소경이 주님을 향해 외칠 때 나온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는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라는 의미가 담긴 표현입니다. 단순히 예수를 향해 선생이나 주님이라 표현하지 않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라고 한 것은 그만큼 믿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 라는 칭찬을 받음과 동시에 딸이 병이 고침을 받게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본문이 앞서 나온 본문과 비교되는 내용임을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떡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다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비난함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사람을 정말로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이 등장한 것입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가나안 여인, 두로와 시돈의 사람들은 더러움에 속한 부정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본문의 가나안 여인을 인정하시고 칭찬하는 것을 통해 유대인들보다 오히려 이 여인이 더욱 정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여인이 인정받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태생으로 보나 환경적으로 보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이 이스라엘 백성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이 여인을 받아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은 그의 믿음을 통해 정하다고 인정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이 냉정하게 거절하는 듯한 시험도 무릅쓰고 끝까지 매달리는 믿음이었음을 24절부터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병을 고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도 마땅치 않는다고 하셨는데 개는 이방인을 풍자적으로 말하던 당시 유대인의 풍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떠나지 않았고 그 결과 여인의 소원대로 딸의 병이 고침을 받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먼저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을 본문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기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의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삶의 현장에서 딸의 병이 고침받는 것과 같은 역사를 경험하시는 복된 날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의 주님,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들 가운데 오셔서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헤에 다시 한번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아무리 인간이 지혜롭고 뛰어나다 할 지라도 구원은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가나안 여인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이 있음을 우리가 기억하며 이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거하는 믿음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믿음으로 가나안 여인의 딸이 고침받은 것과 같은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날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