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 다중이
연필은 수학문제를 풀고 시를 써내려간다
무엇이 잘못 된 것일까
지우개는 연필이 잘못한 행동만이 존재이유라며
시커먼 땀을 흘리며 산화한다
바닥은 흔적도 없는 하얀 공간이다
연필은 어리뱅이짓을 되풀이하고
지우개는 마찰열을 일으키며
오르락내리락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는다
지인으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를 치유하려고
힘주어 문지르다가 그만
종이는 찢기고 구겨져 휴지통으로
사랑은 연필로 쓰라고 어느 가수가 노래했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지운다고 상흔이 지워질까
연필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연필을 사용할 뿐
그리하여 지우개의 인연을 질기다
잉크로 쏟아버린 과거는 찢어버려도
새 바닥을 만나지 못하고 과거 속으로 침잠한다
오랫동안 아니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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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 다중이
장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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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
23.05.16 18:2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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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은 연필과 지우개를 짝지워 주었군요.
멀리 에덴동산까지 비약하게 됩니다.
신은 연필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고 지우개로 하여금 무한 씻어내게 하는
잘못과 용서와 헌신의 주소까지
선생님의 생각을 언제쯤이면 따라갈 수 있을까요?
거북이는, 달팽이는 기어가도 갈 수 있을까요?
가기는 가고 있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