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극복
며칠 전, 서구 검단 왕길동에 있는 공장 지대에 수해복구 자원봉사를 갔었다.
십여년 전만 해도 농촌 등지의 수해 복구 현장에 가서 도와주는 것이 일상처럼 당연했었다.
그 후 아프기 시작해서 복구 현장에서 봉사하는 일은 거의 안 하게 되었다.
도와주러 갔다가 내가 일을 만들 면 안 되기에 안 갔는데, 그 날은 실내에 서 하는 일이라고 해서 단체원들과 함께 했다.
11개 시설이 침수되었고 3일차 진행되고 있었는데, 봉사자들은 3개조로 나뉘어 세 곳에 투입되었다.
우리 팀이 간 곳은 물류 창고였는데...처참했다.
사람이 다치는 것도 끔찍한 일이지만 생산되어서 한 번도 사용되지 못 하고 그대로 쓰레기가 된 물건들은
처참하다는 표현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예전의 농촌 수해 복구 현장의 기막히고 참담한 일들을 겪었지만, 그 때도 감당 못 할 재난이 사람들에게 주는 절망을 체험했었다.
수해를 당한 사람들은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수마라는 말이 실감이 될 정 도로, 삶의 모든 것이 흙에 파묻히고 벼 라별 오물에 뒤덮였다.
그것을 씻어내야 하는데 정작 물이 없었다. 개울이고 우물 이고 온통 뿌연 흙물이어서 쓸 수 없는데 수도물은 나오지 않았다.
물차가 오기도 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도 했지만, 우리들이 느낀 절망감은 커다란 심적 타 격을 주었다.
우리들은 대체 이 수해민들 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진흙투성 이가 된 농작물이며 그야말로 뻘탕이 된 집안을
치울래야 치울 수도 없어, 그저 밖 으로 내놓기만 했었다. 다 버려야 했다.
무심한 햇살 아래서 삶의 일부이던 세간들이 더러운 쓰레기가 된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무표정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그런 무저항 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런 경험들은 있었으나 이번처럼 물류 창고가 수해를 입은 곳은 처음이었다.
우리가 지정받은 창고로 갔을 때 모양새 만 다르지, 그 때 그 농가들의 상태와 흡사했다.
농가는 농작물과 살림살이였으 나, 넓은 두 개의 창고는 널부러진 물건 천지였고 역시 흙탕 개칠갑이 되어 있었다.
사업을 한지 일 년 되었다는 사장은 거의 얼빠진 얼굴이었고 뭘 어찌 해야할 지도 모르는 듯 했다.
수해 봉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나마 몇 사람 되지 않았고 모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우두망찰했 다.
나는 무엇을 어찌 했으면 좋겠냐고 바로 물었고, 사장은 쓰레기가 된 물건들 과 소생할 수 있는 물건들의 구분이 절실 했다.
방향이 정해지고 박스에 물건을 담아 선반으로 올리는 조와 질척한 쓰레기를 밖으로 버리는 조.
씻을 수 있는 물 건을 씻어 말리는 조로 구분해서 정말 정신없이 일했다.
다행히 수돗물이 나와서 씻을 수 있는 것이 고마웠다.
근래에 온 몸을 땀으로 미역감아 본 적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온 몸이 물에 잠긴것 같이 되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리되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혼신의 힘을 다 했다.
다른 봉사자들의 일솜씨들이 놀라웠고 마치 자기들 일처럼 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한 개라도 더 살리고자 하는
간절함이 그렇게 온 힘을 다하게 했음을 나는 안다.
봉사자들의 그런 모습들이 일으키는 선한 에너지가 바로 내 삶의 원동력이다.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도 경직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일을 하면서 너무 아깝고 너무 기막히고 너무 답답했다.
창고 전체엔 물건을 진열할 수 있는 단단한 3단의 선반들이 설치되어있었고,
이 장마철에 모든 물건을 미리 선반으로 옮기기만 했어도 되었다.
엄청나게 폭우 가 쏟아진 것이 아니어서,상습 침수지대 라고 하는 그 곳에 창고를 정했을 때 신경 을 썼어야 했다.
장마가 아니어도 선반에 물건을 올리고 바닥에 박스채로 두어서 는 안되었다.
요즘은 온라인 판매가 많아서 그런 물류창고를 만들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 은가 보았다.
수 백 종이 되어 보이는 일상용품들이 박스채로 바닥에 있다가그대로 수해를 입은 꼴이었다.
창고 안으로 역류하는 물이 들어왔고, 박스들이 젖어서 상품을 뜯어보지도 못 하고 그대 로 쓰레기가 되었다.
물에 젖는 것만으로 그대로 상품 가치를 잃게 되는 물건들이 거의 대부분인데 어쩌자고 그렇게 무심 했을까?
설마...가 항상 문제가 됨을 해마다의 재난 사고에서 본다.
재난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만,자연 재난은 예 방되어져야 옳은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도 해마다 예방할 수 있는 수해를 겪게되는 것일까?
정말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은 반드시 있지만 대부분은 예방이 가능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엄청나게 버려 지는 상품들을 보면서, 이런 악순환이 언제까지 되풀이 될지 아득한 느낌으로 마음이 너무 힘든 하루였다 .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