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 하느님과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
-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과 시나이 산에서의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된다. 미켈란젤로 작 ‘모세’, 대리석상, 성 베드로 대성전, 바티칸.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광야 생활을 하다가 시나이 산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신비로운 신앙 체험을 합니다. 이집트 탈출과 시나이 산의 신앙 체험에서 가장 주도적이고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가 없었다면 하느님께 대한 히브리인들의 신앙이 없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모세는 압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신비로운 신앙 체험을 했다는 것은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야훼는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있다’는 의미는 단순히 철학적 존재 의미가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있는 분’ ‘지금 바로 여기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 야훼는 ‘있게 하는 분’으로도 해석됩니다. 있게 하는 분은 ‘창조 활동을 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습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 조건은 하느님의 다스림에 순종하여 율법인 ‘십계명’을 지키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계약을 잘 준수하면 종살이에서 ‘해방’ 시켜 주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으로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계약으로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야훼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탄생합니다. 주변의 다른 민족들은 자연 현상이나 동물을 숭배하는 종교의식을 행한 것에 비해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이라는 역사적인 실제 사건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야훼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보다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축제를 중요한 종교 의례로 지내게 됩니다.
이 축제는 사실 하느님께서 이집트 탈출 이전부터 모세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나의 백성이 내 앞에서 축제를 올리도록 광야로 내보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야훼가 누군데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겠느냐? 나는 야훼를 알지도 못하거니와, 이스라엘을 내보낸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하며 거절하였다. 그들은 말하였다. ‘히브리인의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광야로 사흘 길을 나가 우리 하느님 야훼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공동번역 「성서」출애굽기 5,1-3)
사흘 길을 나가 우리 하느님 야훼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유목민들의 봄 축제를 뜻합니다. 해방절인 파스카 축제는 바로 유목민들의 봄 축제에서 기원한 것인데 이스라엘은 이것을 이집트 탈출 사건과 결부시킨 것이지요. 또 이스라엘 민족의 무교절과 주간절, 초막절은 농사와 연결된 축제인데 이것 역시 이집트 탈출 사건과 연관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축제가 바로 이집트 탈출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파스카 축제인 무교절(해방절)은 탈출기 본문에 이미 나온 것과 같이 종살이에서의 해방 순간을, 수콧이라 하는 초막절은 광야에서 머무른 것, 주간절이라고도 하는 오순절은 시나이 산 계약 체결과 연관돼 있습니다. 이 축제들은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에서 ‘이상적인 시기’(예레 2,2; 호세 2,14-15)와 ‘시험과 유혹의 시기’(신명 8,2-3)를 기념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느님의 이끄심을 기념하는 거룩한 제사 곧 축제를 통해 거룩한 민족,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는 ‘신명기 시대’부터 시작해 갈수록 점점 더 이스라엘과 그들 하느님의 관계를 해석하는 열쇠가 됩니다. 그리고 이 계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계약’ 곧 신약(新約)으로 표명됩니다.
이집트 탈출과 시나이 산 계약은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치적 해방’의 의미가 있습니다. 곧 새로운 질서로 들어감을 뜻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보장돼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종살이에서 해방과 자유라는 새로운 질서로 들어가기 위해선 ‘신앙의 정화’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바로 ‘광야 생활’입니다. 광야를 떠돌면서 히브리인들은 많은 고생을 하고 불평불만을 털어놓고 가끔 하느님께 대한 신앙도 저버립니다. 광야는 고난과 시련이 끊이지 않는 인간의 현실 세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신앙만 있다면 인내와 희망으로 이 고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특히, 광야 생활에서 ‘만남의 천막’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와 희망의 샘이었습니다. ‘성막’이라고도 하는 이 만남의 천막의 계약 궤 안에는 야훼 하느님과 맺은 십계명 증언판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떠돌면서도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성막 안에서 현존하신다는 확신하고 모든 시련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