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가 EU4나 크킹2인데 왜 나온지 한참 된 EU3을 했냐고 물으신다면... 일단 4편을 안 샀고, 나중에 4편을 사기 전에 옛~~날에 사서 스팀 라이브러리에 썩...묵혀둔 3편을 먼저 해치워 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올해 초부터 맨땅에 해딩하는 기분으로 시작했습니다. 일단은 좀 쉬다가, 작년 겨울에 미리 사놓은 빅토리아 2와 크킹2를 하다가 기회를 봐서 EU4를 사려구요.
네, 정말 뭣도 모르고 어설프게 겁도 없이 조선으로 첫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테크 레벨에 예산 투자 하는 방법을 몰라서 건물이 안지어진다고 멍때리고 있기도 했고,
그걸 시간 가속하는 법을 몰라서 기본 시간진행 속도로 계속 지켜보기만 하기도 했고...
메시지 팝업창을 일일이 설정하다가 뭔가 꼬였는지 윈도우로 튕기기도 했고,(최초의 역설신!)
초반에 어설프게 아메리카 발견해 보겠답시고 무리해서 태평양을 건너다 1년간 쌩돈 부어가며 뽑은 카락 일곱척과 탐험가 제독을 고기밥으로 만들어보기도 했고,
그 전에 류쿠 공략을 한답시고 병력을 뽑았는데 수송선 쓰는 법을 몰라 어설프게 구글링을 하고,
만주족한테 전쟁을 걸고 힘차게 북진을 했는데 군대가 한큐에 전멸해서 멘붕이 왔는데 확인해보니 군사유지비를 안 줘서 사기가 0....
인플레가 너무 올라 병력도 제대로 뽑지 못하는 상태에서 반란군이 너무 많이 나오자 gg치고 재시작을 하기도 했고,
결국 빡쳐서 중반부엔 돈이랑 개척자 치트도 몇번 써가면서
(특히 그놈의 오이라트놈들 땅 뺏는거.. 아니 솔직히, 중앙아시아 칸국들이 외교기능이 없다시피 하다는게 말이 됩니까! AI지들끼리는 동맹도 종속도 합병도 자유롭게 하면서!)
유목민 영토 빼고는 빈땅 개척을 위주로 플레이하다 보니, 정작 영토는 저렇게 넓지만 인구수는 한반도와 중국지역 빼고는 한 곳에 1,2천 안팎밖에 안 되는 애매한 왕국이 되어 버리더군요.
더욱이 무서웠던 사실은..., 저기 바이칼 호수 서쪽부터 그루지야하고 맞닿는 곳 까지의 영토는 '비잔티움'과 '베네치아' 한테 뺏은 영토들입니다... 아니 무슨 지중해의 망령들이 죽지도 않고 더 흥해서 날뛰다니 시껍했지 뭡니까.
서구화는 예상했던 시점보다 빨리 할 수 있었습니다. 한참 필리핀 개척을 하다가 브루나이랑 전쟁하던 중에, 포르투갈한테 개척지를 팔아치우는데 성공했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근대화를 이룩한 뒤 뽑은 군대 유닛이 멀끔한 서양식 전열보병이 아니라 왠 아시가루 비스무레 한게 나와서 시무룩... 그나마 테크 발전속도가 확실히 빨라져서 좋았지요.
가장 기분 째지는(?) 순간은 동군연합이라는 요소로 명나라 땅을 통째로 상속받았을 때 였습니다. 뭐 남쪽에 오나라가 큰 규모로 따로 독립해 나가긴 했지만 난징이나 항저우 같은 정말 금싸라기 땅이 반란도 없이 통째로 들어오니 '이맛에 왕실결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 얼마안가 바로 공화정으로 바꿨지만...
일단 중국대륙의 인구와 재정수입을 쓸수 있게 되니, 그 뒤는 뭐 엄청 쉬웠어요. 오세아니아에 개척지를 펴고, '합병만이 능사는 아닌거 같아' 하고 깨달아서(?) 인도차이나 반도 지역은 합병보단 유교 개종과 종속국화로 한 오십년 싸우고, 인도 지역도 남쪽 비자야나가르와 북쪽 라지푸타나랑 한 육,칠십년 치고박으면서 의도적으로 소국들로 분열시키고 종속시켰죠. 그와중에 인상깊었던 것은 가까운 조선의 인도차이나와 필리핀 영토를 놔두고 항상 캄차카 반도...에 상륙작전을 펼치던 라지푸타나 해군과, 인도 남부를 평정한뒤 전쟁을 끝내고 회군하자 냉큼 영토를 뺏어먹은 한자동맹 놈들 정도가 기억에 남네요.
1750년도 정도 지나서 '슬슬 후반부인데 화끈하게 일을 벌여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군대도 왕창 모으고 함대도 마구 뽑아서 희망봉을 돌아 올라가 발트해로 들어가서 신성로마제국 원정을 한번 했었습니다(사실 원래 전쟁의 원인은 말레이 반도에 식민지를 만들려는 프로이센을 때렸더니 신롬황제인 보헤미아가 선전포고를 해서였지만). 과연 유럽하고 전쟁을 하니 급이 다르더군요. 처음에 한 5만명이면 되겠지 한 원정대가 반란을 염려해 본국에 주둔하던 군대들까지 다 동원해 거의 20만을 쓰고서야 겨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다른 나라들이 우리가 막 개척하기 시작한 북미 개척지들을 안 괴롭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1821년에 시간이 다차서 게임이 끝날때까지 하면서 느낀건, '아, 전쟁은 군대로 하는게 아니라 자산과 외교로 하는 거구나' 라는 교훈이었습니다. 종속국과 동맹국이 많므면 굳이 개척지와 신대륙의 자원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게임 후반부에 들어서야 눈치챈 거였지만, 카스티야는 스페인으로 진화하지는 못해도 어찌어찌 실제 역사 비슷하게 세력확장을 하는데 비해, 오스만이랑 프랑스는 분열해서 사라졌고, 잉글랜드는 대영제국으로 진화하는 메시지를 본거 같았는데 어느 시점에 다시 잉글랜드로 퇴화되어 있었습니다. 대체역사라도 진행된 걸까요. 대신 나폴리나 베니스, 비잔티움, 아라곤 같은 나라들이 크게 흥하더군요. 일본은 초기에 결혼주선이나 무역조약을 몇번 거절하길래, 원정을 갈까 생각했지만 지역 수가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잊어버렸는데 그냥 4개 다이묘들이 지들끼리 아웅다웅 잘 살더군요. 최후반부에 심심해서 정복전쟁을 벌였는데, 일부 지역을 점령하니 연간 위신 변화량을 증가시켜주는 땅이 있음을 보고 '진작에 일본을 공격할껄!' 하고 후회했지만 너무 시간이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솔직히 이전엔 4X장르를 좋아하지는 않았었거든요. 남들이 최고의 마약(?!)이라고 극찬하는 문명5도 그냥 음 할만하네 하고 어쩌다 가끔 살짝 건드려보는 정도였지요. 이번에 한 EU3가 패러독스사 4X장르 게임중 첫번째로 잡은 타이틀인데,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뭐랄까, 묘한 매력이 있어요.
'여기서 이 땅을 먹고 여기에 개척을 미리 하고 예네랑은 돈 좀 주고 나중에 동맹맻자고 하면 되고 예네는 그냥 맘에 안드니 군대로 밟아야지 히히' 하면서 쉼없이 맵을 클릭하고
로그창과 팝업 메시지에 일일히 반응하게 되고, 예산 슬라이더 0.1 단위에 신경쓰면서 세심하게 조정하고...,
그 모든 조정과 전투와 이벤트의 결정이 하나의 거대한 역사로 나타난다는 재미. 그러다 보니 날밤을 홀딱 새는 일이 많아지면서 점점 빠져들게 되네요.
3편이 이정도로 재밌으면 MOD나 4편은 또 얼마나 재밌을까요? 빅토리아 2나 크루세이더 킹즈 2도 이거만큼 재밌겠죠? 일단 유럽 국가로 2회차를 느긋이 하면서 되새김질을 하고 나서 생각해 보렵니다.
첫댓글 와우..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새삼 추억돋네요.. 서구화의 빡셈이랑 식민지로 도피하던 소국들이 떠오르는군요 ㅎㅎ 뎌4는 확실히 간편하면서 더 디테일합니다만! 3도 충분히 재미를 느껴볼수있죠
언뜻 보면 아시아 조선의 모습이 독수리같이 보이네요 ㄷㄷ
판도브레이커 영국이 생각 외로 가만있었네요. 저한테는 최고의 패러독스 게임이었습니다 ㅎㅎ
꼭 추억담 나누는 거 같네요 ㅎㅎ 뎌3 명작이죠 ㅎ
유로파 2,3도 명작중 명작이죠
와...전 명나라 잡는다고 미친듯이 고생했는데 동군연합으로 한방승천이 가능했군요. 전 만주까지만 생각했는데 말이죠.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