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다
-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대표들을 스켐으로 불러 모아 부족 동맹을 맺고 하느님만을 섬기기로 했다. 이스라엘이 정복한 예리코 전경.(여호 6장 참조)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이집트 탈출 후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다 이룬 결실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모세는 느보 산에서 죽고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앞까지 도착했다는 이야기로 모세오경을 마무리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이 온전히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세오경은 요르단 강변을 배경으로 끝을 맺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모세오경을 읽을 때, 모세오경이 약속된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할 임무를 여호수아에게 맡기면서 요르단 강변에서 끝맺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인 예수님의 생애를 요르단 강변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의 약속들이 충만히 실현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경 역사 지도」 67쪽 참고)
여호수아기 1-12장에 나오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는 도식적이고 이상적인 하느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사건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침공 전투가 연이어 빠르게 단시일에 일어난 것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기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중앙 산악 지역을 쳐들어간 후(1-9장) 숨돌릴 새도 없이 남부 지역을 정복하고(10장), 북부 지역을 점령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11장). 하지만 판관기 1-3장은 여러 사건이 섞여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이 아주 서서히 이루어졌음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과 가나안 원주민들 간의 격렬한 전투가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오랜 세월에 걸친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역사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느님의 구세사를 살펴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과 당시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던 아모리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타이트족, 기르가스족, 히위족, 여부스족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혈통, 곧 서부 셈족계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나안에 살던 셈족 가운데 이스라엘 12지파 조상 중 일부만 이집트에 내려가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집트 탈출 후 시나이 산에서 야훼 하느님께 대한 유일한 신앙 체험을 합니다. 이들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하느님의 백성이 됩니다.
반면, 가나안 땅에는 셈족의 성읍들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성읍의 백성들은 자신의 임금들뿐 아니라 이집트 파라오의 착취를 당하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피를 가진 사람들이 요르단 강 동쪽에 나타나서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었습니다. 계급 차별이 없고 누구나 평등한 하느님의 십계명은 가나안의 셈족들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신앙은 분명히 착취와 억압을 당하던 가나안의 셈족들에게 구원의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쳐들어왔을 때 적극 호응하였습니다. 군사력이 열등했던 이스라엘이 차례차례 가나안의 성읍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을 듣고 하느님의 율법으로 살려고 회심한 가나안 셈족들의 협조 때문이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기원전 13세기 말엽 곧 기원전 1200년께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마무리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집트 공식 문서에는 히브리인들의 탈출 사건이 한 줄도 기록돼 있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람세스 2세의 후계자인 메르넵타 파라오(재위 기원전 1234~1220)가 기원전 1220년께 팔레스티나를 정벌하고 이집트의 옛 수도 테베에 세운 전승 기념비에 ‘이스라엘’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경 이외의 기록물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념물입니다. 따라서 메르넵타 전승 기념비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을 알려주는 성경 이외의 유일한 고고학적 자료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 12지파에 땅을 나누어 줍니다. 여호수아기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에 선물로 주어진 땅의 진정한 정복자는 ‘주님이시다’라고 이스라엘은 고백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한 후 장엄한 계약 의식을 거행합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온 히브리인들과 예로부터 가나안에서 살다가 이스라엘에 호응한 같은 혈통의 종족들이 동맹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주례한 계약 의식은 모세의 시나이 산 계약과 비슷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 판관들, 관리들을 불러내어 오직 야훼 하느님만을 섬길 것을 권고하고 이스라엘의 대표들은 자신들이 증인이 되어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들은 그 증거로 낯선 신들을 치워버리고 하느님의 율법을 받습니다.(여호 24장 참조) 이 부족 동맹으로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