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8일(수)
* 시작 기도
주님...
나의 음란과 부정함이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라고 하셨습니다(살전 4:8).
엄위하고 지존하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그 죽음은 지옥으로의 직행이오나 이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혀 주셨으니 이것이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요?
오늘도 나를 돌아보고 나 자신을 부인할 줄 아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높은 곳으로의 지향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낮은 곳으로 내려갈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엡 2:1-10
제목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윷게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나의 묵상
예수 그리스도는 불순종과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그 때까지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며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세력에 순종하는 자였다.
그 악한 세력은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마음속에서 역사 하고 있다.
사실 우리 모두 그들과 똑같은 죄된 본성을 좇아서 행하였다.
또한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온갖 죄를 저질렀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전까지는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긍휼과 사랑이 너무나 크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불순종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우리를 그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 주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또한 우리의 선한 행동으로 구원받은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 누구라도 자랑할 수 없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 선한 일을 미리 계획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살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아버지의 생명으로 아들을 낳으셨다(요 5:26).
그리고 그 생명을 가진 아들이 말씀으로 하나님 품속에 거하셨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세상을 창조하기로 작정하셨다.
사람을 만들어 그들에게 영생을 주기로 약속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창세전 언약이다.(딛 1:2, 엡 1:3-6).
그렇게 창세전 언약에 따라 사람을 지으셨는데 첫 번째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였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게 되었다.
하지만 불의한 아담과는 달리 불의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은 그렇게 영죽을 아담을 위하여 창세전에 아들을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대로 때가 되어 아들을 보내셨다.
그것은 창세전 언약대로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다.
도무지 인간에게서는 어떠한 의도 찾을 수 없기에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고 무덤에 장사되신 아들을 하나님은 다시 살리신다.
그 아들의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되심을 믿는 자들에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 큰 사랑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함께 살리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운 자가 되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어떠한 경우도 우리의 선한 행위로 인함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으며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나의 허물과 죄를 다 속량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이 허물과 죄로 인하여 갈등하고 고민하며 그 안에서 헤매고 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은 그 때, 즉 옛 사람으로 살던 때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도 그 권세 아래서 헤맨다는 것은 내가 거기에 속고 있음이 분명하다.
전에는 육신의 정욕과 욕심을 따라 지내며 그것이 원하는 대로 살던 자, 즉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하지만 이제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옛 사람으로 살던 불구덩이 속에서 끄집어내셔서 새 사람이 사는 아버지 집,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로 이사시켜 주셨다.
다시 말하면 거지에서 왕자로 신분이 바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잠시 거지로 살던 그 습관이 배어 있어서 거기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남아 있지만, 나는 하나님 나라의 왕자임이 틀림없다.
나의 영원한 거주지가 바뀌었다는 것은 나의 의가 아니다.
(골 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내가 한 것이라면 나의 자랑이 되겠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의 의는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무엇을 행한다면 그것은 죄 짓는 것밖에는 없다.
하지만 불구덩이 속에서 그을려 타 죽어가는 나를 위해 친히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셔서 당신은 죽으시고 나를 건져내셨다.
내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나를 살리셨을까?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인데 왜 나를 살리셨는가?
여전히 죄 가운데서 갈등하고 헤매이는 나를 주님은 당신의 생명의 값을 치르면서까지 왜 나를 살리신 것이다.
그 이유는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아버지의 은혜와 자비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신다.
나를 창조하셨지만, 죄 가운데서 죽어 있던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값으로 다시 살리신 새 창조의 역사는 나의 삶의 의미를 전혀 새롭게 하신다.
그것이 이제 내가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바로 나의 남은 생을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큰 사고를 3번 당하였다.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고들이었다.
게다가 폐암까지 걸렸지만 다시 회복되었다.
요셉이 입애굽을 하기까지 죽을 고비가 많았지만, 그가 죽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서 이루어야 하는 사명, 즉 입애굽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지금 죽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기에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육신으로 있는 것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더 유익하기에 자신의 그런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하였다.
(빌 1:22-24)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나 역시 이 세상을 떠나 그 나라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를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 놔두시는 것은 나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선한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하도록 남겨두셨다면 그 선한 일에 매진하기를 원한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이 땅에서 윤리 도덕적으로 행하는 선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이란, 그런 만물 안에서 행하는 선한 일을 넘어 창세전 언약에서 말씀하신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다.
이 영생은 단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이 영생조차 내 맘대로 해석하고 오해하였던 자임을 고백한다.
하지만 복음을 통하여 영생의 의미를 알고난 후로는 날마다 이 영생의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나는 육신으로는 너무 연약한 자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요 목사와 선교사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선한 일을 온전히 행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진정한 영생 곧 선한 일은 우리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을 통하여 누리는 하나님 나라이기에 오늘도 부족하지만 말씀 묵상을 통하여 그 나라를 바라본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선한 일을 마땅히 행해야 할 자인데 그 선한 일을 내 마음대로 오해하며 곡해했던 자가 여기 있습니다.
선한 일이란 윤리 도덕적인 세상적 선한 일이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받은 자입니다.
그것은 창세전 언약에 의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약속한 영생이요 그 영생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 날마다 그 영생을 말씀으로 누리며 주님과 더 가까이 친밀하기를 원합니다.
내게 임하는 여러 가지 환난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게 하시고 연단으로 나아가 인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