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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 제1298호

하드웨어 거지와 소프트웨어 부자
<한줌의 흙 +하나님의 숨결=사람>이것이 인간 존재의 공식입니다,그래서 하나님과의 단절을 자초(自招)해 타락한 인간을 향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하십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나 이 공식과, 이 운명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그리고 공급하심 속에서만 그 삶이 가능한 존재요,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고, 한 호흡조차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허락된 것 외(外)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소목장이 노인 제페트가 만든 말썽꾸러기<피노키오>같은 피조물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자요, 천지만물의 주인이시며 절대주권자이심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에게 이 모든 것을 다스리라 하십니다, 즉,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여 주인이 손해 보거나 욕 먹지 않게 잘 관리 하라는, 소위 <선한 청지기>의 책임을 부여 받고(마 25:14-30)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일에 있어서 대리인으로 참여하는 자 !!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르네 데카르트>는“나는 생각 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고 말했고, <블래스 파스칼>은“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오직 자신의 생각에 의지하여 주인의 삶을 행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모두에게 소유는 공통합니다, 소유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고, 무소유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의미하나, 청지기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소유란 위임(委任)받음을 뜻하며, 주인행세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소유란 소욕(所欲)으로 나타납니다,
청지기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소유는 나눔을 통해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手段)이지만, 주인 행세하며 사는 사람의 소유는 그 자체가 목적(目的)입니다, 그래도 가끔, 물질의 노예, 욕심의 종노릇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가진 자들 중, 무소유니 비움이니 선행(善行)을 통해 자유를 자위(自慰)하지만, 말 그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뿐,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진 않습니다,
산자락 오두막집 텅 빈 방안에 눈에 띄는 살림살이라곤 달랑 낡은 금고 하나뿐인데 그 속에 몇 백억이 들어 있다면 그는 부자인가요 가난뱅이인가요?? 어느 목사님이 표현한<하드웨어 거지>와<소프트웨어 부자>란 비유입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임은 텅 비어 있는 듯 하나, 그 안에 감춰진 충만함이 있다고 한다면, 자칫 <하드웨어 거지>는<소프트웨어 부자>를 은폐하기 위한 위장물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 무소유(無所有)가 참으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 대한 선행된 배려와 나눔에 대한 철학(하나님의 심정)이 있어야 한답니다, 이러한 무소유만이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절제의 미(美)가, 가난한 이웃에게는 부요(富饒)한 자의 덕(德)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남보다 더 잘 사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죽을 때도 부자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장 부끄러운 일이 되는 것 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삶과 부(富)를 잘 관리할 책임을 맡은 자, 즉 선한 청지기로 부름을 받은 존재로<내 것>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욥 1;21)하는 욥의 고백이나,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합 3;17~18)
이 하박국 선지자의 심정을 <사도 바울>은 또한 이렇게도 표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 2;20)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 오직 자기를 버리고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을 자랑합니다,
이렇듯, 소유의 주체가 자신이라면, 무소유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없으니 나에게 속할 수 있는 소유물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소유보다 앞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는 없다.”는 무아(無我)인 것입니다, 태생(胎生)이 무아(無我)인 우리를 채우고 있던 하나님의 형상의 대부분은 인간의 타락으로 상실되고 손상되었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 대신 자리 잡고 앉아 왕 노릇하는 세상의 것 중 부끄러운 것들은 버리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처음의 모습대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삶을 애써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재물 재능 지혜 힘 지위 등 형태 불문하고 소유란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 곳간을 넓히고 스스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에 끝나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예수는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시며, 비유를 통하여 재물을 자기 곳간에 쌓지 말고, 소외되고 궁핍한 자들과 나누어 사용함으로 부(富)를 하늘나라 곳간에 쌓으라 하십니다 (눅12:15이하)
누가복음16장의 부자는 재산이 많기 때문에 음부에 간 것이 아니요, 거지 나사로는 가난해서 낙원에 간 것이 아닙니다. 부자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눅18:22)고 말씀하신 것은 천국은 무소유자가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막10장 이하) 하나님의 위탁물을 내 것이라 내 맘대로 함이 횡령이요, 절도이기 천국가기 어렵다는 것을 교훈하신 것은 아닐까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여기까지 와 있지만, 언젠가 나의 길 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경계선에 서면, 이 세상 먼지하나 내 것이라고 챙겨 옮겨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잠시 쓰고 남김없이 다 놓고 가야합니다, 이 세상 온갖 부귀영화를 어느 누구보다 많이 누린 솔로몬 왕 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없는 인생의 해 아래 모든 수고는 그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라는 고백은 참으로 참 입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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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