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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랑(洪娘)은 임진왜란(1592년)
전후에 살았던 관기(官妓)였다.
홍랑은 일찍부터 고죽의 시를 좋아 했었다.
당시 삼당시인(三唐詩人)이
문맥을 떨치던 시절이었다.
헌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이었던
손곡 이달과
전남 장흥 출신 옥봉 백광훈
전남 영암 구림의 고죽 최경창이었다.
고려에 이어 조선 초기에도
송나라 시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
당나라 시풍의 시를 써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관기란 관청에 소속된 기녀이다.
관기는 관아에 소속되어야 한 만큼
미모와 재질이 뛰어나야 한다.
노래와 춤 거문고의 삼박자에
거기다가 시(詩)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로 더할 나위가 없다.
단만 신분이 관기이기 때문에
사생활의 제약을 받는다.
특히 관기는 거주 이전이 안 된다.
첩으로 부부생활을 하드래도
남편이 떠나면 해어지는 것이 숙명이다.
관기의 신분은
관물(官物)이나 공물(貢物)로 취급되어
사람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곺은 조선시대는
의식주가 걱정이 없고 양반들과 사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저
어쩌면 각광받는 직종일 수도 있다.
홍랑은 함경도 관아 관기였다.
그 무렵에 삼당(三唐) 시인으로
명성 높은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이
함경도 북도(北道) 평사(評事)가 되어
경성(鏡城)에 부임하게 된다.
이것이 조선시대
남녀간의 염문으로
불을 지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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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신말씀 감사합니다 .
묏버들 가려 깎어는
가람이병기박사님에 의해
원시가 발견 됐다고 합니다.
옛글호 적힌 시가
바로 가람선생께서
발표한
시조립니다.
고맙습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좋은시조 감상합니다.
좋은음악 감상합니다.
좋은영상 감상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잘 감상합니다.
즐감합니다.
조선시대
삼 대 여류 시인을 들자면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
뭇남정네들의 혼을 빼버린
황진이
고죽과 영혼을 함께한
홍랑이라 하겠습니다.
세걔적인
연정 문학으로
로미오와 쥴리엣이
있다면
그것은
픽션입니다.
하지만
우리 조선에는
년픽션(실화)으로
욋버들 가지 꺾어가 있습니다.
홍람과
고죽의 순애보는
유교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문학과 삶이
함께한
사람의
진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조선시대
남자들도
사람의 불꽃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하겠습니다.
가라스님
고맙습니다.
홍랑과 최경창 아름다운 사랑 이었군요.
요즘도 그렇게 아름다운 인연들이 맺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죽 최경창이
왕인박사 유적지가 있는
영암 구림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잘흥 백광훈
염암 최경창은
당시로는
뛰어난 문장가였던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