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한창옥
“야야 배고프다”
열흘간 의식 없던 시어머니
살아있는 정적의 목덜미를 잡는다
틀니 빼놓아 볼이 오목하게 패인 뼈의 형상으로
놓아버린 수저의 밥알을 가득 물고
장지로 가는 길에 요기를 하셨을까
앙상한 다리가 되어서야 끝이 난
틀니에 물려있던 당신의 긴 여정
외양간에 새끼 밴 황소와 열일곱 살 장남을 앗아간
군홧발의 인민군은 끝내 눈에서 빼내지 못하셨다
거친 뼛속 울음 숨긴 알몸으로
며느리 품에서 임종하신 젖가슴은
갈비뼈에 길게 말라붙어있었다
향물을 끓여 식어가는 몸을 닦으며 쓰다듬어보는
낡은 주머니 같은 젖무덤
엄지발가락 꼬물대는 가녀린 향내 사이로
차가운 불두덩만 솟아있었다
당신의 몸에서 솜 같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온다
해가 지고 눈물 글썽이던 조등이 깜빡이자
조문객이 들어선다
더 크게 곡소리 컹컹 꺼내며 들어서는
한 달 된 작은 며느리 얼굴이 벌겋다
이것은 어떤 곡비일까
- <현대시> 2008년 .9월호
소다 구두
한창옥
구두 사러 소다매장에 갔어요
엄마는 눈도 돌리지 않고
소다를 섞어 빵 반죽을 하고 있었어요
영업시간이 다 되어 손님들은 총총히 나가요
엄마 혼자 남겨지면 어쩌죠,
백화점은 철컥 문이 닫혔는데
오뚜기소다를 넣고 빵을 만들어요
빨강 노랑 파랑구두를 구두주걱으로 반죽을 해요
갇혀버린 엄마는 집으로 갈 생각도 없어요
왕방울 보석 박힌 구두를 신고 매장을 날아다녀요
이렇게 갇혀버려도 좋아요
엄마가 만들어준 빵을 먹으면 돼요
소다가 부풀려준 빵요,
광목천을 깔고 가마솥 뚜껑을 덮어 설설, 익혀낸
산더미처럼 부풀려진 빵
솥뚜껑을 열어젖히는 엄마머리도 한껏 부풀어져요
얘야, 어서 먹거라
모락모락 김이 솟는 노리끼리한 빵을 먹어요
손때국이 빵에 뚝뚝 흘러요
엄마는 앞치마로 손도 코도 닦아줘요
엄마! 오빠 빵은 어딨어요
아득히 흘러간 시간들이
어둠 속에서 마냥 부풀어요
찬장 위에 있던 아빠구두도 날아요
오빠는 피터 팬이 되어 날아다녀요
엄마! 장화 한 쪽이 없어요?
- <현대시> 2008년 .9월호
2016년 한창옥 시집 ( 내 안의 표범 >수록
첫댓글 이번 설에 서울 올라가면 엄마한테 노리끼리 부풀어오른 소다빵 만들어달래야겠다ㅎㅎ
소다빵 만들어달라고 떼써볼 엄마가 계시니 부럽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