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어디에나 있다!
집 밖을 넘나드는 안주 탐방기
『일단 한잔, 안주는 이걸로 하시죠』는 지극히 평범한 음식으로 문을 연다. 특별한 음식이 어디쯤 나올까 뒤적여도 본문은 볶음밥, 돈가스, 꼬치구이, 배달피자와 카레 등 익숙한 음식으로 가득하다. 자신만의 취식 전략으로 익숙함에서 최상의 맛을 이끌어내는 것이 진짜 대가의 길. 이렇게 발견한 새로운 맛에 놀라 자신의 미식 일대기를 짚어보는 장면도 책에 웃음을 얹는다. 낯선 음식과 조우하고 깨달음을 얻는 모습도 신선하다. 미야자키의 명물 히야지루를 처음 맛본 자신을 금수로 묘사하고, 서비스로 받은 수제 건포도식빵에 꽂혀 홈베이커리의 진화를 논하며, 기차 도시락에서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꼭 가야만 하는 맛집과 굳이 종업원을 힘들게 만들지 말자며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까지. 이 책은 집과 밖, 프로와 아마추어를 넘나드는 안주 탐방기다. 우스운 예능과 제멋대로 레시피가 함께하면 그곳이 맛집,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것을. 아울러 콧방귀를 한껏 뀌게 하는 술집 에피소드, 방 정리를 하러 갔다 조우하는 진짜 집밥의 맛, 인생 선배가 되어 마주하는 마무리 커피까지. 시기와 상황이 짠 판에 말려들어 연거푸 술잔을 비우는 미식가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건강을 위해’… 뭐라고?
‘나를 위해’ 일단 한잔!
이 책의 취지는 ‘음식의 의미대로 제대로 먹고 마시자’다. 건강과 비용 심지어 원산지까지 제쳐두고 음식의 맛에 집중하는 순간… 고급 요리니 명품 술이니 다 하잘것없어지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만 오롯이 남는다. 일찍이 혼술의 길로 들어선 저자답게, ‘홀로 만찬’을 즐길 수 있도록 책 곳곳에 노하우를 깔아두었다. 거나하게 취해 술 따위로 잘난 척이라며 독자를 한방 먹이고, 물두부에 미네랄워터를 넣는 자신을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이라며 농을 치는, 원산지를 재는 사람에게 식욕이 음란하다며 비웃음을 날리고야 마는 구스미 마사유키가 밉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궁극의 맛은 값이나 원산지로 정해지지 않으며, 자신이 쌓아가는 것임을 ‘미식의 대가’는 알고 있기에.
돈가스를 좋아하지만 대표적인 고열량 음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꺼리는 성인이 많을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 맥주까지 마신다면 대사증후군을 향해 직행하는 길, 홀로 비만 가도를 훌쩍 떠나는 여행, 또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는 지름길로 여겨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그 문제는 생각과 먹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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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맛있는 두부 한 모를 준비하고 그다음은 다시마와 대파와 가쓰오부시와 간장. 끝. 난 이미 준비가 끝났다. 이렇게까지 심플할 수 있다니, 물두부는 정말로 세련된 요리가 아닌가. 배추니 쑥갓이니, 필요 없다. 표고버섯이니 팽이버섯이니, 전혀 필요 없다. 벚꽃 모양으로 자른 당근? 바보냐, 생초짜도 아니고. 애들 도시락에나 넣어주시게. 대구? 당신이나 집에 가져가서 드시죠(당신? 그게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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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슈마이 도시락에는 ‘항상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 한 줄이 작게 새겨져 있다. 겸허. 하지만 시원시원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 p.64
따뜻한 밥에 차가운 국물을 붓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난, 뜨거운 음식인지 차가운 음식인지 확실히 하라고, 옛날 개밥 같잖아, 가정교육이 엉망이야, 예의가 없어, 하는 부정적인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지몽매했던 건 나였다.
--- p.172
마지막은 역시 ‘임종 직전’에 먹고 싶은 게 어울린다. 일생의 마무리.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건?’ 하는 질문을 자주 듣지만, 그런 건 때가 되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 하고 생각했다. 자신이 몇 살에, 어디서, 언제쯤 죽는다는 걸 모르면 대답할 수 없지 않은가. ‘먹고 싶은 음식’은 그런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 아닌가.
---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