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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개나리
황 순 원
상철은 수술실 밖에서 담배만 연방 피워댔다.
처제인 영이의 수술은 실로 길었다. 불안과 초조가 뒤엉킨 긴 시간이었다. 오후 한시부터 여섯시 반까지, 삼십 분이 덜한 여섯시간이나 걸렸다. 수술이 끝났을 땐 시월 하순께의 날이 다 저물어 있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있는 고등학교 동창 윤의 말이, 뇌 후측에서 작은 달걀만 한 혹을 떼어냈다고 한다. 악성인지 어쩐지는 아직 모른단다.
상철은 특별히 윤의 안내로 외인 출입금지로 되어 있는 회복실엘 들어가 보았다. 장모와 아내에게는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해서 그만두었다. 사실 보이지 않는 게 잘했다 싶었다.
끔찍한 몰골이었다. 머리는 온통 붕대로 감고, 양쪽 눈은 광선을 피하기 위해 가제로 가리고, 산소흡입기가 코에 끼워진, 찌부러지게 퉁퉁 부은 얼굴은 도시 영이 같지도 않고, 산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처럼 얼굴이 부은 것은 수술할 때 환자를 엎드려놓고 하기 때문이라고 윤이 설명 해주었다.
뇌에 종양성 혹이 생겼다는 진단이 내려졌을 때, 장모는 수술을 하느냐 어떡하느냐를 상철에게 의논해왔다. 장인은 연전에 세상을 떠나 없고,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처남뿐이라 의논 상대가 상철 자기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상철은 얼른 결단을 내려주지 못했다. 아직 우리나라 의술로는 종양성 뇌수술에 있어서 수술 도중과 직후의 사망률이 칠팔 할, 사망은 않더라도 반신불수나 전신불수되는 경우가 이삼 할, 완전히 성공하는 율은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환자 자신이 머리의 통증을 견디다 못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수술을 해달라고 하여 결정을 짓게 되었다.
지난봄, 여고 2년이 되면서부터 영이는 가끔 누웠다가 일어나려면 골이 앞으로 쏟아지는 듯이 아프다곤 해 병원에 가보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아플 때는 뇌신이나 사리돈으로 가라앉히곤 했다. 그런데 여름 한동안은 좀 괜찮았다가 가을철에 들어서면서 점점 동통이 심해가더니 아무런 약으로도 진통이 듣지 않게 되고 나중엔 골을 인두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까지 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상철은 환자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수술을 자진 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자는 수술한 지 닷새 만에 눈을 뜨기는 했다. 그러나 사람을 알아보지를 못했다. 그리고 말은 물론, 듣지도 못하고 사지를 움직이지도 못했다.
상당히 중한 환자라도 이삼 일이 지나면 대개 병실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레지던트 윤의 후의로 일주일간이나 그냥 회복실에 둘 수 있었다. 회복실에 있는 동안 환자는 호전도 악화도 되지 않았다.
그사이 뇌에서 떼어낸 혹은 검사한 결과 악성으로 판명되었다. 악성이면 앞으로 육 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하고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던 가족들은 맥이 풀렸다. 그 중에도 장모는 그 소릴 듣자 그만 병원 복도에서 쓰러질 듯 몸을 가누지 못했다.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긴 뒤에도 환자의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사는 데까지는 살려야 할 것이었다. 환자를 전문적으로 지키고 보살필 사람이 하나 필요했다.
그래서 한 간호보조원 아줌마를 얻게 되었다.
병원 사람의 소개로 얻은 아줌마는 보매 사십이 좀 넘었음 직한 여인이었다. 키는 작달막하나 야무진 몸집과 둥근 얼굴이 건강해보였다. 그 점은 좋았으나 입꼬리가 처지고 눈두덩이 두꺼운 품이 어딘가 자상치 못하고 성깔머리가 있을 듯한 인상이었다. 이런 여자가 어떻게 의사표시라고는 조그만치도 하지 못하는 중환자의 갖가지 시중을 돌볼 수 있을까 의심스럽게 생각됐다. 등창이 나거나 못이 박이지 않도록 두 시간만큼씩 몸을 돌려 눕히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환자의 식사를 규정에 의해 잘 지킬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먼저 우유와 계란과 미음을 링거 병에 넣어 환자의 코로 디민 고무관을 통해 먹인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야채와 소고기 끓인 국물을 먹이고, 다시 두 시간 후에 과일즙을 준다. 밤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세 차례 되풀이한다. 이 세 차례의 각각의 시간을 지켜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과일즙을 제외한 다른 음식물은 농도와 온도를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아줌마가 제대로 해나갈는지.
게다가 아줌마에 대한 꺼림칙한 뒷얘기까지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 아줌마는 이 대학병원 수술실과 회복실에서 잡일을 해왔는데 그만 큰 실수를 저지르고 쫓겨났다는 것이다. 그 실수라는 것이, 아줌마에게 회복실의 응급환자를 잠시 봐달라 하고, 당번 간호사가 변소엘 다녀와 보니 환자 코에 꽂은 산소흡입기가 빠져 있고 환자가 그것으로 하여 죽고 말았다는 얘기였다. 아줌마가 간호보조원으로서 적임이 아니라는 생각은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장모나 아내의 생각도 마찬가진 듯했다. 그러나 당장 다른 도리가 없었다. 간호과에 등록돼 있는 간호보조원들이 두 사람이나 왔다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돌아가버린 실정이니 누구든 맡아 보아주겠다는 것으로 참아야지, 이 사람 저 사람 고를 계제가 못 되었다. 그저 앞으로 좋은 사람을 구할 때까지 임시로 둬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족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출입문에 면회사절을 써 붙이고, 여하한 사람도 병실에는 들이지 않았다. 학교 담임선생이나 친구들까지도 번번이 그냥 돌려보내야 했다. 환자에게 의식 이 없으니 선생이건 누구건 들여다본다고 별다른 충격을 받을 걱정은 없었다. 단지 어떤 사람에게라도 환자의 흉한 모양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보고 나서 환자의 상태를 이 입 저 입 옮길 것이 싫었다. 아줌마에게 외부 사람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환자의 얼굴의 부기는 얼마 안 가서 가셔졌으나 눈을 떠 이리저리 안구를 돌리긴 하면서도 여전히 장님이었다. 이쪽에서 그 눈길을 좇아 초점을 맞추려 해도 소용없었다. 말할 수 없이 답답하고 기막힌 노릇이었다. 장모와 아내는 때때로 환자의 귀에 바싹 입을 대고, 이름을 불러보고는 걸핏하면 눈물을 찔끔거렸다.
신체 중에서 그런대로 움직이는 것은 이 눈알과 입 이었다. 어쩌다 하품 비슷한 것을 하며 입을 벌리기도 하고, 입맛 같은 것을 다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 외는 손가락 발가락 하나 옴짝달싹을 못했다. 한갓 숨이 채 끊어지지 않은 육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환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표정 같은 것을 보이는 때가 있었다. 몸을 돌려 누일 때, 또는 관절과 근육이 굳어지지 않게끔 병원 전속 안마사에 의해 사지를 주무르고 관절을 굽혔다 펴는 물리치료를 받을 때 아프다는 빛을 보일 적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소리는 내지 못하고 얼굴 가죽만이 찡그려지는 것이다. 보기에 안된, 이 얼굴의 일그러짐으로 해서 환자의 생명을 확인한다는 것은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임이 틀림없었으나, 그렇게나마 살아 아픈 표시라도 하는 걸 가족들은 대견스러워했다. 또 한 가지, 환자에 따라서는 삼 개월 가량 걸려 의식이 회복되는 수도 있다는 병원 측 말이 한 가닥 희망을 주었다.
병실은 동남간향 방이라 결코 침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 안에 감도는 속 깊은 그늘을 덜기 위해 커다란 쪽빛 유리화병에 언제나 싱싱한 꽃을 가득 꽂기를 거르지 않았다.
다른 간호보조원을 구하지 못한 대로 해를 넘겼다. 환자의 의식은 그냥 어둠에 갇힌 채.
레지던트 윤의 주선으로 지금까지 있은 독방 입원실을 삼등 입원실 요금으로 있게 되었다.
이제는 가족들도 환자의 시선을 맞춰본다든지, 이름을 불러보고 우는 일은 없어졌다.
그런데, 두고 보니 날이 갈수록 아줌마의 간호가 대단한 것이었다. 의외였다. 다른 간호보조원을 구하지 못해 그냥 아줌마를 둬두게 된 것이 오히려 얼마나 잘된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족들은 하게 됐다.
상철은 상철대로 처음 아줌마에 대해 품었던 경솔한 선입관을 뉘우쳐야 했다. 그렇지만 불쾌한 뒷맛은 물론 아니었다.
아줌마의 무언 속의 간호는 고용인으로서의 의무만이 아닌 그대로 환자에 풀려든 그런 간호였다.
얼마 전부터 환자는 낮과 밤을 바꾸고 있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깨어 있는 것이다. 환자를 따라 낮을 밤으로 삼을 수는 없는 처지건만, 아줌마는 밤중에 잠이 들었다가도 환자를 옮겨 뉘어야 할 시각이나 음식을 줘야 할 시각을 한번도 지나쳐버리는 일이 없다고 간호사와 의사들까지도 감탄들을 했다.
환자의 물리치료만 해도 병원 전속 안마사가 바빠서 미처 오지 못할 때는 아줌마가 대신 해주곤 했는데, 안마사가 할 때보다 환자가 덜 아파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환자가 낮과 밤을 바뿐 뒤로는 아줌마가 시간 없이 수시로 환자를 주물러주었고, 전혀 안마사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게까지 되었다.
이 밖에 아줌마는 환자가 그때그때 추워하거나 더워하는 낌새를 재빨리 알아채고 손을 쓰는 것이었다. 아줌마가 환자의 이불을 턱밑까지 꼭꼭 감싸주고 스웨터 같은 것으로 가려주었는가 싶으면 환자의 얼굴엔 소름이 돋아나고, 이불을 내리고 팔을 밖으로 내어놓아주었는가 싶으면 환자의 얼굴엔 열기가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줌마는 또 매일 가제에 반드시 미지근한 물을 축여 환자의 얼굴을 씻어주고, 약솜으로 입 안을 닦아주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봄이 이르렀을 무렵, 두 사람 사이에 생긴 도시 믿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 교류 같은 결 보게 되었다.
수술한 지 다섯 달 가까이 경과했건만 여전히 의식이 깜깜한 환자라 오줌똥을 때없이 쌌다. 한번은 기저귀를 갈자마자 오줌을 싸 아줌마가 볼기짝을 한 대 때렸다. 그랬더니 환자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다. 섭섭함이나 미안함을 느낀 거나처럼.
또 한번은 간호사가 맥박을 재는데 환자가 하품을 하다 그만 제 혀를 깨물었다. 대번 피가 흘렀다. 간호사가 아무리 입을 벌리려해도 어찌나 악물었는지 영 벌려지지가 않았다. 그러자 아줌마가 다가가 환자의 입을 어루만지며, 아가 이러지 말구 입 좀 벌려라, 어서 웅? 하고 타이르듯 하니까 그제야 악물었던 입을 스스로 여는 게 아닌가.
하루는, 회사의 일이 바빠 병원엘 못 가다가 상철이 오래간만에 들렀다.
병실로 들어서면서 우선 상철은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무포를 깐 방바닥이 구둣발로 선뜻 밟기가 송구스러울 정도로 말짱히 닦여 있는 것이었다.
방에는 아줌마 혼자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네의 얼굴이 별나게 초췌해 있었다. 입 꼬리가 더 처지고, 두꺼운 눈두덩이 부어 눈을 내리덮고 있었다. 갑자기 몇 해를 한꺼번에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말없이 의자를 내놓는 그네에게 수고가 많으시다고 했더니 간단히, 뭘요, 할 뿐이다.
환자의 머리에 씌워졌던 털모자는 벗겨지고, 수술 때 빡빡 깎았던 머리칼이 선머슴의 더벅머리만큼 돋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낮인데 깨어 있는 것이었다. 환자가 낮과 밤을 바꿨던 일을 생각하고, 이제는 정상대로 돌아왔느냐고 물었더니 아줌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가가 나 밤잠 못 자는 게 안됐던 모양이죠, 했다.
상철은 한동안 환자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전처럼 포동포동하고 능금빛이 도는 얼굴은 아니었으나, 얼굴색이 곱게 피어 있는 것이었다. 수술 전 고통의 흔적인 듯 양미간에 새겨졌던 주름살도 깨끗이 펴져 있었다. 악성이면 반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는데, 도무지 죽음을 앞둔 환자의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때 등 뒤에서 아줌마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가, 응가하고 싶으냐? 어린애에게 하는 듯한 삽삽한 말투였다. 도시 아줌마의 음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상철은 환자의 표정을 살펐다. 좀 전과 조금도 변함없이 허공에 아무런 초점도 없는 시선을 던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시 아줌마가, 아가 조금만 참아라 응? 했다. 한결같이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말씨에, 상철은 아줌마 쪽을 돌아다보았다. 뒤를 받아내려는 듯 신문지 조각을 펴든 아줌마의 눈길이 환자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부은 눈두덩 새로 새어나오는 눈빛을 보고 상철은 가슴이 화끈했다. 아줌마의 시선엔 무표정한 환자의 얼굴로부터 무엇인가를 분명히 읽고 있는 빛이 역력했던 것이다. 상철은 어서 자리를 비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돌아오는 길에 레지던트 윤의 방을 찾아갔다.
“환자의 상태가 아주 좋아 뵈는데?”
상철의 말에 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글쎄.”
하고는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그 병은 저러다가도 언제 어떻게 급변할는지 예측을 불허하는 병인걸.”
이런 상황 속에서 가족들의 발길이 차차 병원에서 떠갔다. 환자의 음식 때나 아줌마의 월급을 주기 위해 열흘에 한 번, 보름에 한 번씩밖에 다녀가지 않게 되었다. 아줌마를 믿고 안심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족들 편에서 엔간히 지쳐 있었던 것이다.
화병의 꽃이 시들어 있거나, 아무 꽃도 꽂혀 있지 않기가 일쑤였다. 화병만이 덩그마니 더 커 보였다.
한편 아줌마의 얼굴은 점점 더 못돼가, 본래의 둥그렇던 윤곽이 흉업게 쭈그러들었다.
그 반면 환자는 여름철에 엉치뼈 한옆의 약간 짓물렀다가 낫고는 별 등창도 나지 않고 땀띠 하나 없이 지냈다. 그러면서 얼굴색이 더욱더 뽀오얗게 피어났다. 머리칼도 꽤 자라 여기저기 핀을 꽂게끔 되었다.
이같이 여름도 지난, 그러니까 악성이면 넘기기 힘들다던 육 개월 아닌 십 개월도 훨씬 지난 어느 날 오후, 상철은 아내한테서 회사로 온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서였다. 환자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상철은 올 것이 기어이 왔구나 했다.
병실에서는 주치의와 윤과 간호사가 환자에게 수혈과 산소흡입을 시키며 응급가료를 하고 있고. 그 뒤에 장모와 아내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서 소리 죽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
환자는 금방 숨이 질 듯 눈을 똥그랗게 흡뜨고 눈망울을 한자리에 고정시킨 채 벌린 입으로 헉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보기에 무척 괴로운 임종 같았다.
장모와 아내의 울음과는 어그러진 또 하나의 소리가 들려 상철은 뒤쪽을 보았다. 병실 한쪽 구석, 취사도구가 있는 옆에 무릎을 세워 그 위에 고개를 묻고 아줌마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유난히 몸집이 조그마해 보였다.
그것은 울음이라기보다 억누른 신음에 가까운 흐느낌이었다. 밀어닥치는 온갖 감정을 누르고 늘러 비어져 나오는 신음과도 같은 것. 상철의 귀에는 자꾸 아줌마에게서 비어져 나오는 이 소리만이 파고들어 왔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날 환자는 숨을 거두지 않았다. 한참 눈을 똥그랗게 굳히고 금시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헉헉거리다가, 땀을 쫙 뽑고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상철은 이상한 생각에 엉겨들었다. 환자가 아줌마의 신음 같은 흐느낌 소리를 틀림없이 들으면서 잠들었으리라는 것 이었다. 그게 가능하냐 안 하냐를 따지기 전에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가고, 가족들의 울음이 그친 뒤에도 아줌마의 흐느낌은 잠시 더 계속되었다.
환자가 숨을 거둔 것은 그로부터 석 달이나 더 지난, 진눈깨비 홑날리는 날이었다. 환자가 수술을 받은 지 만 일 년하고 한 달 보름쯤 뒤였다.
병원에서, 환자가 운명했으니 속히 오라는 전갈이 왔다면서 차를 세워놓고 회사에 들른 아내와 함께 상철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집이 먼 데다가 이내 택시를 잡아탈 수 없었던 듯 장모도 그제야 들어섰다. 아내와 장모는 서로 붙들고 울음을 터뜨렸다.
상철이 아줌마더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줌마는 요전에 보았을 적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눈꺼풀을 내리깐 채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는 아줌마에게서 시선을 비키는데 침대 머리맡 탁자 위 화병에 꽂힌 개나리가 눈에 들어왔다. 삐죽삐죽 마구 뻗은 가지에 꽃이 성글게 피어 있었다. 아줌마가 어디서 꺾어다 꽂아 피웠을 것이었다. 진눈깨비 내리는 비철에 핀 꽃이라 그럴까, 유별나게 선명해 뵈는 노란 꽃빛이 시체를 덮은 흰 시트에까지 어리는 것 같았다.
상철은 아줌마에게 다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려다가 이 꽃이 아줌마 대신 아무것도 말할 게 없다고 하는 것 같아 그만두고, 레지던트 윤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이날 윤은 애초 입가에 미소 같은 것을 띠우는 법 없이,
“내가 들어갔을 땐 이미 숨이 지구도 한참 뒤였어.”
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는 사전 가족에게 임종을 알리지 못한 것은 병원 측의 잘못이 아니라는 뜻이 들어 있었다.
“글쎄 죽은 뒤에서야 그 아줌마가 간호사에게 알렸단 말야. 내가 연락을 받고 달려갔을 땐 벌써 아줌마가 환자의 눈을 감기고, 코에다 솜까지 막아놓고 있지 않겠어.”
상철은 저번 때 아줌마에게서 본 비탄을 떠올리며,
“결국은 그 아줌마 혼자서 임종을 지켰다는 거지?”
“그렇지.”
그리고 윤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저번 때 같지 않고 이번엔 별로 운 빛도 없이 침대 앞에 서 있던 데.”
좀 전에 아내와 장모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도 아줌마는 따라 울지를 않았다. 울음도 자기 혼자서 미리 다 울어뒀다는 건가.
“괴로운 임종이었을까?”
상철은 저번 때 환자가 괴로워한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야 모르지. 직접 보지 못했으니까…… 한 가지 이런 일은 있었대. 간호사한테 들은 얘긴데, 저번 일이 있은 후부터 아줌마는 항상 환자더러 타이르듯이 말하더래. 아가, 죽더라도 곱게 가거라, 곱게 가, 응? 하고 말야. 그래선지 어쩐지 몰라도 말끔한 얼굴이 마음 푸욱 놓고 아주 깊은 잠을 자는 것만 같았어. 갓 감긴 머리엔 빗자국이 곱게 나 있고…… 그 병은 마지막이 평온치 않은데다가 입에서 더러운 것이 나오는 게 보통인데.”
상철은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물며 윤에게도 한 대 주었다.
윤은 금방 자기는 피웠다고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 방은 병실이 아니고, 두 사람의 살림방이었지. 하여튼 최근엔 간흐사 의사 할 것 없이 신발을 벗고야 그 방엘 드나들었으니까. 어디 친부모 자식 간이라고 그럴 수가 있겠어. 글쎄 감기 같은 것은 어느 한쪽이 걸리면 으레 다른 쪽도 걸리곤 했으니 말야. 두 사람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데까지 서로 통하고 있었어. 환자가 언제 죽으리라는 것도 다 알고 있었을걸. 결국 알고도 안 알린 거라고 봐야 할 거야.”
상철은 이제 더 할 말도 없고, 더 들을 말도 없었다. 아줌마의 극진한 간호는 의학적 진단을 뒤엎고 환자를 제 명 이상 오래 살게 한 셈이었다. 그리고 이왕 성한 사람이 되지 못할 바에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숨을 거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싶었다.
염을 할 때 수의는 아줌마의 원대로 그네의 손으로 입혔다.
관을 시체안치소에 옮겨놓고, 구내매점에서 초를 사갖고 돌아온 아내가 급한 말투로 이런 걸 알렸다. ˙
“그 아줌마가 간호보조원을 그만뒀대요. 지금 등록을 취소하고 돌아갔다지 뭐예요.”
그러나 상철은 창 너머로 눈을 주며 미리 예기나 했던 얘기처럼 듣고 있었다.
다음다음날은 활짝 갠 포근한 날씨였다. 장례 때도 아줌마의 모양은 뵈지 않았다.
-끝-
2016년 4월 26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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