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19일) 대낮(현지 시간)에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고프(체르니히우)시(市) 도심에 러시아 이스칸데르 순항 미사일이 떨어졌다. 도심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드라마극장과 성당, 대학 등이 손상됐고, 지금까지 7명이 숨지고 130명이 다치는 인명피해가 났다.
서방 외신들은 이날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기념하는 '구세주 변모 축일'을 맞아 과일 바구니와 꿀 등을 들고 성당을 찾은 정교회 신자들이 많았으며, 이들이 성당을 나설 무렵 러시아 미사일이 강타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체르니고프 드라마극장이 큰 손상을 입었다/사진출처:텔레그램
이 도시의 올렉산드르 로마코 시장은 "공습을 당한 드라마극장 뒤에 있는 공원엔 아이가 있는 많은 가족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며 "이런 범죄는 민간인에 대한 전쟁범죄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데니스 브라운 유엔 우크라이나 담당 조정관도 "사람들이 산책하고 교회를 오가는 대낮에 중심 광장을 공격하는 것은 악랄한 짓"이라고 러시아를 비난했다.
러시아군이 체르니고프 도심을 공습한 것은 지탄받아야 마땅할 잔혹한 행위다. 다만, 러시아가 대낮에 왜 그곳을 공격했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체르니고프는 러시아군이 개전 1개월후 '1단계 특수 군사작전' 완료를 선언하며 병력을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으로 집결시킨 뒤 최전선과는 동떨어진 곳으로 여겨졌다. 최전선으로 향하는 주요 보급로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자체 반성도 적지 않게 제기된다.
이 매체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공습 대상이 된 체르니고프 드라마 극장(Драмтеатр)에서는 19일 우크라이나의 '전투 드론' 전시회인 'Люті Пташки'(우크라이나어로 '사나운 새'라는 뜻)가 열렸다. '최전선을 (돕기) 위한 군사 기술에 관한 엔지니어, 군대 및 자원 봉사자들의 회의'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특수부대 관계자와 항공 대학, 드론 개발및 제조업체, 후원 기업 대표 등이 이날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시회의 주최자는 현지 언론에 의해 차기 국방장관 후보에 오른 마리아 베를린스카야(공식 주최 단체는 '빅토리 드론즈'·Victory Drones)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역할이 강조된 '드론의 개발및 군 보급'을 위해 군 담당자와 드론 개발및 생산자, 후원자들을 모아 수도 키예프(키이우)와 르보프(르비우), 드녜프로, 하르코프 등을 돌아가며 '드론 전시회'를 열었고, 체르니고프에서 행사를 갖다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이다.
빅토리 드론즈가 공개한 체르니고프 '전투 드론' 전시회 포스터/텔레그램 캡처
빅토리 드론즈를 이끌고 있는 마리야 베를린스카야. 그녀는 현지 언론에 의해 차기 국방장관 후보에도 올랐다/사진출처:hromadske.ua
행사장에 대한 러시아군의 타격 가능성도 제기됐다고 한다. 7월 말에 열린 하르코프 전시회에서 러시아군의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자, 베를린스카야는 "도시를 순회하면 전시회를 갖는 것은 지방 당국에서도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들(러시아군)이 두렵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체르니고프 전시회 일정을 지난 14일 온라인을 통해 공개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주최측(빅토리 드론즈)은 텔레그램 포스팅에서 "체르니고프 전시회가 19일 오전 10시 현지 군정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다"며 "참석자들은 별도의 양식을 작성하고 개인적으로 초청장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참석자의 안전을 위해 장소는 당일 아침 6시에 통보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러시아측은 행사 장소를 정확히 알고, 개막 후 곧바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참석자 중 누군가가 러시아 측에 행사 장소를 누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이 즉시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스트라나.ua는 "공개된 미사일 공격 영상으로 볼 때, 공격 목표는 전시회가 열리는 드라마극장 건물이었다"며 "'전투 드론 전시회'를 직접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미사일이 드라마극장을 향하고(위), 곧바로 거대한 화염이 드라마 극장을 덮쳤다/텔레그램 영상 캡처
전시회에 참석한 특수 드론 공격 부대 '빌리 아룔'(Білий орел) 부대장은 "행사의 시작과 함께 진행자가 간단히 행사 내용을 소개하고, 보안 조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애국가를 부른 뒤 1분간의 묵념이 막 끝나는 순간, 공습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며 "방공호로 내려가라는 요청에 참석자들은 대부분 방공호로 내려갔으나 나는 지인을 찾으러 2층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순간, 큰 폭발을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당시 드라마극장 안에는 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드론 전시회' 행사장이 폭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크라이나 소셜 미디어(SNS)에는 행사 주최 측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러시아에 적대적인) 그런 행사가 러시아 국경과 가깝고, 민간인이 많이 오가는 체르니고프의 도심에서 왜 열었느냐는 것이다.
"멍청아, 너희들이 체르니고프 도심에 왔으니.." "왜 그들을 초대했어? 바보들아".. 등등의 비판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베를린스키야 게시물에도 비난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이 포럼을 개최안을 낸 천재가 대체 누구냐? 정신이 있는 X이냐?" "몇 분이면 (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는 체르니고프에서 이런 행사를 열다니, 도대체 그 이유가 뭐냐?" 등등.. 비난 글로만 보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스스로 불러들였다'는 뜻인데, 왜 국내 언론에는 우크라이나의 이같은 분위기를 한 마디도 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