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의 메시아 공연 후기
2008년 11월 14일 금요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는 포항시립교향악단, 합창단 합동연주회로 헨델의 메시아 공연이 있었다.
10월 28일, 정훈희와 해바라기 초청 팝스 콘서트 관람 이후 보름 만에 문화예술회관을 찾는다. 지난 공연 때는 자리가 없어 두 시간 내내 서서 관람하였다. 이번에는 입장료를 5,000 원씩 받는다고 해서 내심으로 자리가 많이 빌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해보니 표가 매진이란다.
이럴 어쩌나? 술자리 초대도 마다하고 온 가족이 나섰는데 난감하다. 그래도 일단 기다려보자. 어떤 이들은 그냥 돌아가기도 하고, 우리와 같은 사람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혹시 입석이라도 없을까?
얼마 기다리지 않아, 2,000 원에 입석을 들여보내기 시작한다.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공연장에 들어가 보니 아직 자리가 많이 비어 있다. 지난번 팝스 콘서트 때를 대비해서 예비 의자도 많이 갖다 놓았는데, 예비 의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빈자리가 많다. 우리는 제일 앞쪽 둘째 줄에 여유 있게 앉았다. 표는 없는데 왜 자리가 이렇게 많이 남았을까? 초대장을 뿌려서 그럴까, 아니면 교회에서 단체로 매입해 놓았지만 참석하지 않아서 그럴까?
팸플릿에는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첫 문장부터 막힌다. 왜 일본어투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연주되어지는"=>"연주되는", "메시아가 항시 연주 되어지게 되었다." =>"메시아를 자주 연주하게 되었다."
게다가 맞춤법도 틀렸다.
지휘는 포항시립합창단 김용훈님이 맡았다. 공연 도중 박수를 치지 않고, 1부와 2부 사이에 휴식 시간을 가진다고 안내한 후 제 1부 예언과 탄생 부분 연주에 들어갔다. 양 옆에 빔 프로젝터로 슬라이드와 예수의 생애를 다룬 영화 장면을 보여주고, 곡이 진행됨에 따라 제목과 가사를 한글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포항에서 메시아 전곡 연주(몇 곡 빠졌지만)가 초연이라고 하였다. 참 역사적인 순간이다. 나 역시 메시아 전곡을 음악회장에서 감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메시아에 나오는 합창곡 할렐루야는 중고등학교 시절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자주 듣는 레퍼토리였다. 어머니가 아주 비싸게 전축을 장만하고, 거금을 들여 클래식 전집 음반을 샀다. 그 속에 헨델의 메시아도 있었다. 첫 부분부터 들어보면 무척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할렐루야가 나오기 몇 곡 전에 바늘을 올려놓고 감상하곤 했다.
네 명의 성악가들이 제일 앞에 앉아 있다가 자기 노래 순서가 되면 일어나서 부르고 다시 앉는다. 가만히 들어보니 성악가들이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갑자기 헨델은 독일 사람이 아니었던가? 원곡은 독일어일줄 알았다, 해설을 읽어보니 헨델은 1726년 영국인으로 귀화했다. 더블린에서 초연을 했으니 메시아 원곡은 영어 가사로 쓰였겠구나. 나는 당연히 독일어 가사로 작곡했으리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글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면 어떨까 생각하였다.
1부 연주는 50분 이상 걸린다. 하루 노동을 마치고 듣는 음악회라, 박수 치지 않고 긴장하며 듣기란 어렵다. 어느 순간 졸음이 와서 눈을 잠시 감았는데 세오녀가 툭 쳐서 겨우 눈을 뜨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10분간 휴식할 동안 많은 사람들이 돌아갔다.
10분간 쉬고 나기 다시 생기가 돈다. 2부 마지막 순서에 나오는 '할렐루야'를 기다리면서 감상한다. 지휘를 포항시립교향악단 유종님이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성가대 활동하면서 '할렐루야' 반주가 무척 어려워 쩔쩔 맸던 적이 있다. 잠시 지휘를 했을 때는 '할렐루야' 연주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솔로 성악가 중에도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나오는 하품을 억지로 참는 모습도 보인다. 성가대원 중에는 기침을 간신히 참기도 한다. 그만큼 오랜 시간 박수 없이 계속 연주하기란 쉽지 않다. 앞줄에 혼자 앉아 있던 어린이가 갑자기 장난감을 빙빙 돌리기 시작한다. 무척 신경이 쓰인다. 보호자 동반 없이 어린이를 혼자 두기엔 메시아는 따분한 곡이다.
'할렐루야' 코러스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일어섰다. 대부분 관객이 일어선 것 같으나 우리 앞에 앉아 있던 두 젊은 남녀는 끝까지 붙어서 일어나지 않았다. 왜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밉상인지 모르겠다. 영국왕 조지 2세가 왜 갑자기 연주 중에 일어났을까 생각해보니, 졸다가 갑자기 일어선 게 아닐까 확신이 든다.
사람들은 할렐루야 곡이 끝나자 박수를 쳤다. 안 쳤으면 감동이 더 컸을 텐데...
3부는 귀에 익은 소프라노 아리아 "내 주는 살아계시고(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로 이어진다.
연주가 끝나고 앙코르로 할렐루야를 불렀다. 지휘자가 함께 따라 불러도 좋다고 했는데, 포항 사람들은 박수를 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빠른 곡이 나오면 무조건 해병대 박수를 치는 사람 때문에, 결국 지휘자는 박수 치지 말라는 손짓을 계속 해야만 했다. 박수를 쳐야 할 때와 치지 말아야 할 때는 분명하게 아는 것이 지혜다.
두 시간 이상 걸린 연주가 끝났다. 앙코르를 마칠 때까지 남아 있는 관객은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이 그렇게 바빴을까? 역사적인 메시아 전곡 연주회에 오면 좀 느긋하게 주말 저녁을 투자하면 안 될까? 영화 엔딩 타이틀이 채 올라가기 전에 일어서는 관객이나,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자마자 일어서는 승객들과 다름없이 후다닥 나가버리는 풍토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연주회 마치고 거의 마지막에 객석을 나선다. 로비에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본다. 내가 가르치는 중학교 2학년 한 아이가 아버지랑 감상하러 왔다. 그리고는 아는 사람이 없다. 벌써 가버렸나?
포항문화예술회관 마당에 포장마차가 하나 들어섰다. 어묵을 사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헨델의 메시아를 감상하고 나서 '오뎅'을 먹는 모습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세오녀는 배가 고팠지만 '폼생폼사' 때문에 집에 가서 맥주나 '매실주'나 마시기로 했다. 피대기를 구워 시원한 맥주 한 잔!
첫댓글 음악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텐데...너무 마음이 각박해요 ㅋㅋ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만 85년도 성가대에서 연주했었는데, 연습량도 많았고 팀웤도 아주 좋아 꽤 완성도 높은 연주라고 칭찬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전곡 감상은...ㅎㅎㅎ 쉽지 않았을 것 같네요. 2주전부터 저희 성가대는 벌써 성탄 미사 준비 들어가서 연습 중이랍니다. 예전 멤버들끼리 할렐루야 한 번 다시 해보면 재미있겠다...
좋은 연주회를 다녀 오셨군요. 여기서 사족하나... 합창곡을 가장 잘 연주하려면 작곡된 곡의 원어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언어의 장단과 높낮이를 생각해서 작곡을 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저 들 밖이 한 밤중에'라는 캐롤의 첫 부분은 못갖춘 마디이지요. 왜냐 하면 원 가사가 'The First Noel, the angel did say..'이므로 기능어인 정관사 'The'에는 강세가 들어가지 않으므로 약박으로 시작해야 하기에 못갖춘 마디가 된 것이지요. 이를 우리말로 바꾸어 놓으니 약간의 강세가 들어가는 첫 가사 '저'의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답니다. 사족이니더.ㅡ.ㅡ;;
사족 한가지 더... 헨델 메시아를 음악회에서 감상할 때 할렐루야 부분에서는 일어서서 듣는 것이 전통입니다. 영국의 국왕이 이 부분에서 일어선 것이 그 기원이 되었지만, 이 대 합창이 이 곡의 클라이막스이고, 전 오라토리오를 꿰뚫는 주제가 흐르는 순간이며, 종교적으로는 마치 국가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에구... 음악이라고는 귀를 씻고도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이런 글을 읽으니 자꾸 사족만 달게 되는군요. 에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