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결실을 심다
가을은 거두는 계절이라고 배웠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 내내 땀 흘려 가꾼 것을 가을이면 거둔다. 그래서 가을을 말할 때면 으레 황금 들녘과 탐스럽게 익은 과일을 떠올린다. 그런데 어느 늦여름 밭에서 나는 조금 다른 가을을 만난다. 사람들은 거두는 대신 무언가를 심고 있다. 흙을 고르고 골을 낸 뒤 작은 종구를 하나씩 내려놓는다. 가을의 결실은 그렇게 땅속으로 먼저 들어가고 있었다.
산 아래 작은 밭이다. 한여름의 기세가 아직 남아 풀은 무성하고 햇살도 뜨겁다. 밭 가장자리에는 여름 동안 자란 풀이 허리까지 올라와 있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사람들이 밭으로 들어선다. 얼굴에는 벌레를 막는 망을 두르고 손에는 장갑을 꼈다. 멋을 낼 틈도, 모양새를 살필 겨를도 없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밭을 덮었던 풀을 걷어내고 흙을 뒤집는다. 쇠갈퀴가 흙 위를 지나갈 때마다 땅의 속살이 드러난다. 흙덩이를 부수고 고랑을 다듬자 길고 반듯한 밭이 만들어진다. 누군가는 앞에서 흙을 고르고, 누군가는 뒤따라 작은 종구를 심는다. 허리를 숙이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한 줄을 마치면 또 한 줄이 기다리고 있다.
바구니 안에는 자잘한 종구가 수북하다. 언뜻 보면 수확을 끝내고 남은 작은 알뿌리처럼 보인다. 크기도 제각각이고 모양도 반듯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은 남은 것이 아니라 시작될 것들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몸 안에 아직 보이지 않는 계절 하나를 품고 있다.
한 알을 집어 흙 위에 놓는다. 손가락으로 작은 자리를 만들고 뿌리가 내려갈 방향을 살핀 뒤 살며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흙을 덮는다. 방금까지 햇빛 아래 있던 것이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다.
심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을 눈앞에 두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묻는 일이다. 잃어버리는 것처럼 땅에 내려놓고 기다리는 일이다. 씨앗도, 구근도 흙에 묻히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을 시작할 수 없다. 사람의 눈에서 사라지는 순간 식물에게는 오히려 시작이 된다.
삶에도 그런 시간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다. 열심히 살아도 성과가 보이지 않고, 마음을 다해도 돌아오는 것이 없는 날이 이어진다.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 묻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땅속의 씨앗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 보이지 않는다고 멈춘 것은 아니다. 어둠 속에서도 뿌리는 자라고 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생명을 단단하게 만든다. 우리는 결과만 보고 한 사람의 시간을 판단하지만 삶에서 중요한 변화는 대부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밭에는 말보다 손이 바쁘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허리를 깊이 숙여 종구를 하나씩 놓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갈퀴로 흙을 고른다. 풀숲에 앉은 사람도 묵묵히 손을 움직인다. 세 사람의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일의 리듬은 하나다. 한 사람이 길을 내면 다른 사람이 심고, 또 다른 사람이 뒤를 정리한다.
농사에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돌아보면 수많은 손이 있었다. 힘들 때 밥 한 끼를 챙겨준 사람, 말없이 곁을 지켜준 사람,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삶의 밭 한 귀퉁이를 고르고 있었을 것이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진다. 모자 아래로 땀이 흐른다. 잠시 일을 멈추고 들어와 물을 마신다. 탁자 위에 생수 두 병과 수건이 놓여 있다. 흙 묻은 장갑도, 화려한 음식도 없다. 차가운 물 한 모금이 이렇게 달 수 있다는 것을 땀 흘린 뒤에야 안다.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니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시원하다.
행복도 어쩌면 이만큼 단순한 것인지 모른다. 목마를 때 마시는 물, 지쳤을 때 잠시 앉을 수 있는 의자, 더운 날 얼굴을 닦을 수 있는 수건 한 장. 평소에는 너무 흔해 귀한 줄 모르던 것들이 필요해지는 순간 가장 소중한 것이 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먼저 가르쳐주는 행복은 의외로 작다.
잠깐 쉬고 다시 밭으로 나간다. 풀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여 올라온다. 한 줄 한 줄 종구가 놓인다. 가까이서 보면 볼품없는 작은 알들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흙 위에 점선처럼 길게 이어진다. 마치 누군가 땅 위에 미래의 문장을 쓰고 있는 것 같다.
한 알, 또 한 알. 쉼표처럼 놓이고 문장처럼 이어진다.
지금은 읽을 수 없는 문장이다. 흙이 덮이면 글자조차 사라진다. 그러나 계절이 지나면 땅이 대신 읽어줄 것이다. 비가 내리고 햇빛이 비치며 뿌리가 내리면 오늘 우리가 쓴 문장은 초록빛으로 번역되어 올라올 것이다.
농사는 미래에게 보내는 편지와 닮았다. 오늘 답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씨앗을 심는다. 내일 당장 싹이 나오지 않는다고 흙을 파헤쳐 확인하지 않는다. 기다린다. 그것이 농부가 자연에게 보내는 가장 큰 믿음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너무 빨리 결과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 마음. 오늘 노력한 일이 내일 곧바로 열매를 맺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는 마음. 사람을 사랑하면서 당장 같은 크기의 사랑을 돌려받으려 하지 않는 마음. 아이를 키우면서 오늘의 가르침이 훗날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싹틀 것이라고 믿는 마음.
심는다는 것은 결국 기다림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가을은 흔히 완성의 계절이라 부르지만 밭에 서 있으니 완성과 시작의 경계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를 거두는 동안 다른 하나를 심는다. 어떤 식물은 열매를 맺고 어떤 생명은 이제 땅속으로 들어간다. 자연에는 완전한 끝이 없다. 끝나는 자리에서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된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우리는 무엇인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직장을 떠나고, 아이가 집을 떠나고, 오래 하던 일을 내려놓으면 자신의 쓸모까지 사라진 듯 허전해한다. 하지만 빈 밭은 끝난 밭이 아니다. 무엇을 새로 심을 수 있는 자리다. 비워졌다는 것은 다시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가을의 밭이 그것을 보여준다. 한 줄을 다 심고 허리를 편다. 몸이 먼저 세월을 말한다. 허리가 뻐근하고 무릎도 쉽게 펴지지 않는다. 젊었을 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이 이제는 제법 힘들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가볍다.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흙 앞에서는 사람이 단순해진다. 잘났다는 생각도, 못났다는 생각도 별 의미가 없다. 흙은 누구의 직업도 묻지 않고 나이도 묻지 않는다. 손을 내밀면 묻어나고, 씨앗을 심으면 품어준다. 우리가 사회에서 달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름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몸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흙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흙을 밟으며 우리는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는 오래된 사실을 기억한다. 멀리 산이 밭을 감싸고 있다. 나무들은 아직 짙은 초록이다. 그러나 바람 끝에는 어제와 다른 기운이 묻어난다. 한낮에는 여전히 덥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잠시 서늘하다. 풀벌레 소리도 조금씩 달라졌다. 계절은 달력보다 먼저 몸으로 온다.
곧 가을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가을의 결실을 거두지 않고 심는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야말로 삶의 아름다운 역설이다. 결실은 언제나 수확만을 뜻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 또한 한 사람이 살아오며 얻은 결실이다. 많은 것을 경험한 뒤에도 다시 씨앗 하나를 들 수 있다면, 상처를 겪은 뒤에도 사람을 믿을 수 있다면, 실패한 뒤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값진 결실이 있을까.
젊음의 희망은 앞날이 많아서 생긴다. 그러나 세월을 지난 사람의 희망은 조금 다르다.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심는 마음이다. 내가 다 누리지 못하더라도 꽃이 필 것을 믿고, 내가 모두 거두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열매를 만날 것이라 생각하며 땅을 고르는 마음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심는 일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글 한 편을 쓰고,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도 모두 씨앗을 묻는 일이다. 지금 당장은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서 싹이 날 수 있다. 우리가 남기는 것은 거창한 업적보다 그렇게 심어놓은 작은 것들인지 모른다. 어느새 바구니가 가벼워진다. 수북했던 종구들이 대부분 땅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끝이 보이지 않던 긴 밭에도 가지런한 줄이 생겼다. 흙 위에 놓인 마지막 몇 알을 집어 든다.
마지막 한 알을 심고 흙을 덮는다. 손바닥으로 가볍게 토닥인다. 잘 자라라. 말하지 않아도 마음은 그렇게 말한다. 사람도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재촉하지 않고, 함부로 파헤치지 않고, 그 사람이 자신의 계절을 만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때로는 햇빛이 되고 때로는 비가 되어주는 것. 사랑도 결국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일을 마친 밭은 의외로 조용하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오가던 자리에는 갈색 흙과 가지런한 고랑만 남는다. 눈에 보이는 결실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 흙 아래 수많은 작은 생명이 누워 있다는 것을.
가을은 그렇게 땅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열매가 보일 때 결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 밭에서 배운 결실은 조금 다르다. 결과를 얻는 것만이 결실은 아니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 것, 기다릴 줄 알게 되는 것, 혼자보다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는 것, 평범한 물 한 모금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 살아오면서 얻은 이런 마음들이야말로 세월이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결실일 것이다.
산 너머로 햇빛이 조금 기울기 시작한다.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허리를 펴고 밭을 바라본다. 오늘 심은 작은 알들이 언제 싹을 내고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래도 괜찮다. 모든 희망이 오늘 증명될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흙 묻은 손을 털며 밭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가지런히 이어진 고랑 아래 아직 보이지 않는 계절이 누워 있다. 가을은 거두는 계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알았다. 잘 살아온 사람의 가을은 거두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무언가를 심을 수 있을 때, 삶은 또 하나의 계절을 시작한다. 우리는 오늘 작은 알뿌리를 심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은 곳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한 알도 함께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