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즈막 남은 동창과 옛 학우
글 이 용 구
나는 9세에 당시 보통학교에 입학을 했다 어린 마음에 거리상
처음에는 아버지를 따라 갔으나 마침 우리 앞 마을에 같은
입학 친구가 있어 아침 저녘으로 같이 다녔다
그 친구가 바로 강인석 동창이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우리
두 사람은 중학교에 입학이 되었다 비록 각 중학교는 다르나
같은날 같은방향 같은시간의 통학 열차로 서울로 기차통학을
했으니 막 말로 우리 둘은 진짜 불알 친구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생활 근거지는 계속 안양이고 늙도록
안양에서 살며 안양을 지켰으니 진짜 우정의 동기 동창생이며
참다운 벗이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동창회등에 모이는등
늘 같이 할 때가 많었으며 동창중 둘 만 남게 된지 오래였다
(후략)
그러나 약 3년전 부터 이 친구가 약간 치매끼가 들었어도 내가
가면 "아~ 용구" 하며 악수를 청하며 반겨 주었는데 1년전 부터는
내가 가도 "누구십니까..? 하는등 딴 전으로 몰락한 사람이 되어
있으니 만나도 의사 소통이 불능으로 자주 만나기가 거북 했으나
그래도 어릴적의 유일한 홍안 시절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처지라
가끔 찾아 가 보았다
당시 우리 졸업생은 남녀 합해 50명 이었으나 거의 다 세상을 떠나고
나와 둘 만 남은 처지라 그래도 친구가 그리워 자주 찾아 갔으며 병세
악화로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한지 수 개월이 지난 오늘 아침에 전화가
오길 세상을 떴다는 부인의 소식을 들으니 이젠 동기생 둘 중에서
또 하나가 가니 나 만이 외톨이가 되었다 생각하니 하늘이
깜깜해 짐을 느꼈다
그날 오후 부랴부랴 장례장에 가니 영정이 모셔있고 조문을
받고 있었다 꽃 속에 파묻혀 있는 그 영정사진을 보니 옛 시절이
주마등 같이 떠 오르고 이젠 나만 남았음을 실감하고 다음은
내 차례임을 감지했다 그리고 아들에 손을 잡고 자네가 진짜
효자 였다고 격려와 위로해 주었다 또한 부인께는 그간 간호
하느라 고생이 많었습니다 하니 부인은 살아 있을때 많은
협조로 위안을 받았다며 고맙다고 말 했다
이 친구는 내리 딸 7공주 다음으로 겨우 아들을 하나 둔 8남매의
가장으로 딸 들은 모두 교직(중.초교) 교사로 또한 늠늠한 사위들이
있어 조문객은 줄을이어 쇄도 하였으며 30여개의 대형 조화가
즐비하게 놓여 있는것을 본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 친구라고
여겼으며 또한 만약 내가 죽으면 어떻할까 하고 상상 비교도
해 보았다
집에 돌아와 나와 친한 고교 동창에게 전화를 하니 그런 번호가
없다 하기에 재차 확인하고 다시 거니 또 없는 번호라 하니 좀
이상했다 이 동창과는 한달에 1~2회는 서로 통화 하는데 왠일일까
내가 추측하길 그간 세상을 떠나 가사 정리를 하고 딴 곳으로
이사 한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결국 그가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알아보니 집을 매각하는 동시에 병세 악화로 입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평상시 그 와의 오고 간 말이 있었는데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죽어도
동창에겐 일체 통지를 하지 않겠다 하였다 무슨 사유로 이런 말을
하나 생각하니 그것은 수년간을 몸소 누어 있어도 동창간 자네 말고는
누구하나 내게 전화 (안부)한번 하지않는 인색함이 아니었는가 하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다음 날은 그가 입원했다는 성남시 분당에 있는 좋은이웃
요양병원에 문병을 가니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이렇게 지난날
우리 초.중.고교 동창들은 하나하나 각자 타고난 생애를 마치고
말 없이 떠나고 있으니 그저 인생이 허무하고 무상하며
슬프기만 하니 어찌하랴 .......
▶♬배경음악:Once Upon A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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