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22]칼럼의 으뜸은 ‘고전古典칼럼’
연말연시 1주일새 ‘고전古典칼럼’ 54편을 음미하여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글들이어서 더욱 그렇지만, 고전칼럼이 여러 분야의 칼럼 중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54편은 한 한문학자(박수밀 한양대 교수)의 작품이다. 하루 한 편씩 읽는 게 좋을 듯한데, 두 달 동안 ‘해치우고’ 나면, 뭐랄까, 정신情神이 조금은 성숙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 1편’ 읽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영어 회화공부를 하루 15분씩 반 년만 하루도 빼놓고지 않고 하면 제법 잘할 터인데, 그게 어디 쉽던가. 무엇이든 꾸준히 한다면 그만큼 성취成就가 있을 터인데. 대부분 작심삼일作心三日에 그치고 만다. 그러니 <성경>이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나 <혼불> 등을 필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아무튼, 신간 『오래 흐르면 반드시 바다에 이른다』(박수밀 지음, 2023년 12월 토트출판사 펴냄, 242쪽, 16800원)는 부제副題 ‘하루 한 문장, 마음에 새기는 성현들의 좌우명’답게
54인의 좌우명座右銘들을 칼럼으로 쉽게 풀이해놓은 것이다. 여기에서 성현이란 ‘역사 속 지식인’을 말한
다. 퇴계, 율곡 등 유명한 학자도 있으나, 처음 들어보는 조선조 문인들도 많다. 좌우명은 ‘늘 자리 옆에 가까이 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을 말한다. 영어로는 Motto나 Mission Statement라 할 것인데, 삶의 방향성, 정체성, 목적 등을 제시하는 ‘인생교훈’일 것이다. 누군가 너의 좌우명이 무엇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무어라 답변할 것인가? 한마디로 말하지 못해도 뭔가 있긴 있지 않겠는가? 하다못해 ‘근면 성실’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들먹일 수도 있으리라.
아아-, 조선조 성현들도 ‘장삼이사張三李四’인 우리와 다름없었다. 다만, 한문지식으로 상당히 고차원적으로 풀었을 뿐이지, 사색하고 성찰하는 것은 마찬가지. 소소한 일상생활에서도 교훈으로 삼아야 할 덕목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의 생각을 엿보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오늘의 거울’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박제가는 “힘을 다해 책을 읽고 시간을 헛되이 버리지 말라努力讀書 勿虛抛時月”고 했다. 세종대왕은 “독서기불유익讀書豈不有益”이라며 ‘정사를 잘 하려면 반드시 책을 읽으라’고 했다. 퇴계는 “자신을 속이지 말라”며 무자기毋自欺를 “삿된 생각을 하지 말라”는 사무사思毋邪, “혼자 있을 때를 삼가라”는 신기독愼其獨, “모든 것을 공경하라”는 무불경毋不敬 등 3개의 경구와 함께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용휴는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다. 하려는 것이 있으면 오늘에 달렸을 뿐이다昨日已過 明日未來 欲有所爲 只在當日”이라며 ‘카르페 디엠Carpe Diem’를 얘기했다.
그런가하면, 이원익은 “남에게 원망함이 없고, 자신에게 잘못이 없도록 하라. 뜻과 행동은 위와 비교하고, 분수와 복은 아래와 견주어라無怨於人 無惡於己 志行上方 分福下比”라 했고, 장혼은 극히 가난하면서도 모든 것을 긍정하는 ‘자족自足의 삶’을 살면서, 호를 ‘이이엄而已广’이라 했는데, 이이而已은 ‘그뿐이면 됐다’이고 엄广은 ‘집’을 뜻한다. 그는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그뿐’이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면 ‘그뿐’인 삶을 살다가, 죽으면 ‘그뿐’인 삶을 살았다. 채제공은 “편하게 살기 위해 최대한 힘을 기울이라”며 ‘매사진선每事盡善’을 좌우명으로 살았다.
문득, 다람쥐 쳇바퀴같은 일상 속에서 재충전再充電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마음의 힘을 채워주는 옛사람들의 좌우명을 되짚어보자.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했고, 어떻게 삶의 파도를 헤쳐 나갔을까? 궁금하지 않으신가. 저자는 말한다. “삶은 외롭고 가련한 것”이라고. 나도 그 명제命題에 늘 동의하는 사람이기에 때문에,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성현들의 삶의 철학이 녹아있고 묻어나는 좋은 글들이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되곤 한다. ‘아항, 이분들의 삶도 내 삶과 별반 다를 게 없구나. 나와 다른 것은 이분들은 끊임없이 수양(마음의 도)을 하면서 노력하고, 경건하게 산 게 다르구나’를 느낀다.
옛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있을 때 ‘문집文集’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이 살아생전 펴낸 문집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사후에 그의 아들들이나 제자들이 남긴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게 상례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1986년부터 2012년까지 26여년에 걸쳐 옛사람 1258명의 문집(통일신라말 최치원의 ‘계원필경’을 비롯해 구한말 황현의 ‘매천야록’까지 1259책)을 영인影印하여 500책으로 펴낸 게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이다. 가히 우리 민족의 보물이자 위대한 기록물유산인데도, 우리글로 100% 번역되려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인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나마 20% 번역된 국역 문집에서 우리 선현들의 삶의 숨결과 사상과 철학의 숨결을 엿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솔직히 칸트고 뭐고 다 저리 가라!인 것을, 우리 후손들이 모를 뿐이다. 박수밀 교수가 옛글에서 숱한 이야기를 캐내어 우리에게 한문을 벗어나 어떻게든 쉽게 우리글로 전달하고자 하는 기특한 뜻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역사실록의 번역도 중요하지만, 문집 번역도 나라에서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역사歷史는 바로 오늘의 거울이므로. 명심하자. 그까짓 권력이 뭐라고 부나비처럼 날뛰는 철부지 설익은 정치인들은.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레터 24/오우아吾友我]내가 나를 벗삼을 수밖에… - Daum 카페
참고로, 나의 좌우명은 고교시절 명심보감에서 배운 구절인 ‘일일청한一日淸閑 일일선一日善’을 지금껏 고수하고 있다. ‘하루를 살면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지고 한가로우면 하루 동안만큼은 신선神仙이 된다’는 뜻이리라. 나아가 날마다(日日) 청한淸閑의 마음으로 산다면 날마다日日 신선이 되지 않겠는가.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으리. 흐흐. 정초에 좋은 고전칼럼 모음집을 읽어 기분이 좋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