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로(labyrinth) 는 한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을 말한다. 미궁이라고도 부른다.
미로는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지하나 반지하에 지었던 것으로 수많은 방과 통로들이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로 배치되었던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뒤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에는 높은 울타리로 갈래를 이룬 길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정원에서 미로를 볼 수 있었다.

-미로의 기원
미로의 기원은 그리스 전설에서 시작된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왕비인 '파시파에'가 황소와 교접해 '미노타우로스' 라는
우두인신 (몸은 인간이고 머리와 꼬리는 황소인 괴물) 을 낳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라는 神 의 계시를 받는다.
아무도 들어갈 수도 없고, 나올 수도 없는 복잡한 성을 계획하고 미궁 '라비린토스'를 만들게 한다.
그리고 그 미궁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둔다.
한편, 왕의 아들 '안드로게오스'는 아테네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했다가 죽임을 당한다.
왕은 죽임을 당한 아들 목숨의 댓가로 아테네에게 매년 소년 7명과 소녀 7명을 각각 바치게 하였다.
그렇게 바쳐진 소년과 소녀들은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먹이가 되었다.
두 번째 희생물이 바쳐지고, 세 번째 희생물이 바쳐질 즈음
아테네의 영웅이었던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기 위해 자진해서 희생물로 자원한다.
테세우스는 자신을 사랑했던, 미노스 왕의 딸이자 공주였던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실패를 얻어, 실 끝을 들어가는 입구에 매어 놓고
그 실을 풀면서 들어가 미궁에 있던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을 따라서 무사히 빠져 나온다.
여기에서 라비린토스는 미궁 또는 미로를 의미하게 되었다.
훗날 유럽에서는 왕궁 등의 비밀 통로에 미로를 많이 응용하게 된다.
*미노타우로스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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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타우로스 | | 희생물이 되는 소년 | | 영웅 테세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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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통을 지녔으나 황소의 얼굴과 꼬리로 태어나 무척이나 난폭했다. 테세우스에게 처형되기 전까지 미궁 '리비린토스'에 갇혀 지냈다. | | 아테네의 소년 7명과 소녀 7명이 매년 희생물로 바쳐졌다. 이 소년과 소녀들은 미노타우로스의 먹이가 되었다. | | 아테네의 테세우스가 희생물로 자원한다.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미궁을 빠져나온다. |

-고대의 4대 미궁
'아르시노'에 고대의 유적지 즉 '크로코딜로폴리스'의 맞은편, 모에리스 호수 동쪽에 이집트의 미궁이 자리잡고 있다.
이집트 학자들에 따르면 '미궁'이라는 단어는 '호수 입구에 있는 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건물 전체가 하나의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12개의 저택과 지하 1,500개, 지상 1,500개 등 모두 3,000개에 달하는 방이 있었다.
지붕은 전체가 돌로 만들어졌고, 벽은 조각작품으로 장식되었으며, 한쪽 면에는 약 74m 높이의 피라미드가 서 있었다고 한다.
지하에는 미궁을 건축하도록 한 왕들의 무덤과 신성한 악어들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또다른 고대 연구의 권위자들 가운데에는 그 미궁이 고대 이집트 대표들의 모임이나 정치적 모임을 위한 장소로
건축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보다는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미로를 건축한 것은 BC 1842~1797년 이집트를 통치한 12대 왕조의아메넴헤트 3세였다.
이집트의 학자 '레프시우스'에 의해 미궁이 파이윰 지방 하와라 북쪽에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으며,
1888년에는 플린더스 페트리에 의해 길이 305m, 너비 244m의 건물 기초가 발견되었다.
왕의 계시를 받은 이집트인의 설계에 따라'다이달로스'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크레타의 미궁은 미노타우로스신화에 등장해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초기의 저술가들은 이 미궁이 크노소스 부근에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고,
또 미궁의 모습이 동전의 그림 도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의 발굴조사과정에서는 왕궁의 건설계획이 있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클로디언 같은 후기 저술가들은 미궁의 위치를 고르티나 근처로 보고 있지만,
그 근처에 있는 몇 개의 복잡한 통로와 방들은 실제로 고대의 채석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렘노스는 에게 해 북쪽에 있는 그리스의 외딴 섬으로 건축법이 이집트 미궁과 비슷하며 150개의 기둥이 있다.
4. 이탈리아 미궁:
클루시움에 있는 포르세나 왕의 무덤 지하에 많은 방들이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무덤은 키우시 근처에 있는 포지오가젤라라는 고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세의 미궁은 프랑스 대성당들의 바닥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도안 속에 건축자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에 파괴되었으나 그후에 복원된 아미앵 대성당의 미궁에서는 건축자들의 이름이 나타나 있는 시가 발견되기도 했다.
미궁 중앙에는 하얀 대리석 표면 속에 주교(主敎)와 3명의 건축가들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중세의 미궁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해명되지 않았다.

-조경(造景)에서 말하는 미로
조경에서 말하는 미로는 중심부나 출구를 찾기 어렵도록 울타리나 나무로 둘러싸 복잡하게 만든 오솔길 구조를 일컫는다.
이와 같은 미로의 구조는 고대의 기하학적 조경을 모방한 것이다.
일반적인 형태의 미로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고 촘촘한 울타리들이 평행으로 늘어서
그 가운데로 일정한 폭의 길이 이어진다. 과거에는 이 길을 오솔길(alley)이라 불렀다.

이와 같은 미로의 목적은 독특하게 표시해 놓은 중심에 도달한 후, 다시 되돌아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표시를 알고 있던 사람도 길을 찾지 못해 혼란에 빠지기 쉽다.
어떤 미로는 6개의 입구 가운데 단 1개만이 중심부로 통하는데, 그것을 찾으려면 많은 장애물과 막다른 길을 거쳐야 한다.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미궁 가운데 하나인 햄프턴 코트 궁전 정원의 미로는 윌리엄 3세 때 만들어졌다. 울타리와 오솔길로 이루어진 이곳에 처음에는 서어나무를 심었다가 이후에 서양감탕나무·주목 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중심부에 도달하려면 먼저 입구에서 왼쪽으로 향한 뒤 첫번째와 2번째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을 택하고,
그후로는 계속 왼쪽을 택해서 나아가면 된다.
영국 동부 서퍽 주의 로스토프트 근처 소멀리턴 홀에 있는 정원의 미로는 존 토머스가 설계한 것이며,
그곳의 주목 울타리는 1880년경에 세워진 것이다.
18세기에도 스펜서 백작의 저택인 윔블던하우스에 미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에는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훌륭한 미로가 있었다.
- 인체에서 말하는 미로
사람의 몸에도 미로라 불리우는 곳이 있다.
단단한 골벽으로 둘러싸인 복잡한 형태의 강으로 청각의 평형감각이 이루어지는 내이가 그 예이다.
단단한 골벽을 골미로라 하고 그 속에 있는 막성인 관 또는 낭을 막미로라고 한다.
골미로의 중앙부에 전정이라는 강이 있고, 그 속에 막미로인 난형낭과 구형낭이 존재한다.
전정에서 뒤쪽 바깥에 이어져 반고리관이 나와 있다.

전정 앞의 안쪽에는 달팽이관이 있고, 그 속에 막미로인 달팽이세관이 있다.
거기가 청각이 있는 자리인데, 전정의 2개 작은 낭과 막성의 반고리관은 평형감각을 관장한다.
막미로는 청각 및 평형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 삶의 미로
삶은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늘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는 갈등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집착이기에 삶이라는 옷을 입고있는 한,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미로이다.
생각이 번거롭거나 예상치 못한 일에 접했을 때, 마음과 행동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삶에는 허다하다.
반면 한가롭게 보이는 일상에서도 뜻과 현실이 부조화가 되어 자신과 주변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을 때
내면에서 복잡하게 얽히는 스스로의 미궁에 빠지게도 된다.
마음이 곧 미로이자 미궁이었던 것이다.
이 미로에서 테세우스처럼 끈을 잡고 있어야 했지만, 그 끈을 놓쳐 종종 헤매일 때가 있다.
때로는 그 미로에 갇혀 존재의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미로는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라는 본질의 벽에서부터 생겨나왔을 것이다.
그 본질의 벽은 '고통' 이라는 미로의 한 부분이다. 벗어나려고 하면 더 많은 고통이 따른다.
차라리 미노타우로스가 있었을 미로의 끝, 가장 깊은 고통의 근원으로 들어가 보면
마음의 미로는 마치 칡과 등나무처럼 그렇게 얽혀졌을 뿐이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불행하다고 음울짓는 까닭은 욕망과 집착이라는 벽에 기대있으면서도
고통만은 감내하지 않겠다는 사리를 외면하려는 이기심과 아집에 있다.
욕망과 집착은 고통이라는 큰 미로 안에 있는 아주 작은 벽이었을 뿐이다.
고통의 미로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 미로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진리'의 미로를 바라볼 수가 있다.
진리의 미로에서만이 진정한 자유를 체험할 수 있다.
하루살이의 삶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간의 형상으로 언제까지고 깨어보겠다고 부스럭거린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 아침을 맞기 전, 새벽 이슬에 젖은 날갯짓이며 바둥거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언제까지 그렇게 헤매이기만 할 것인가!
차라리 삶이 어느 계절의 하루였을지라도 이제는 그 미로에서 당당히 서있어 볼 일이다.
차오르는 달처럼 충만해 볼 일이다.
그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