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0419)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에 7:8~10).
악인은 결국 패망한다~~~~~살면서 불합리하게 여겨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악인의 득세다. 분명히 악한 일을 많이 하고 있지만, 잘 먹고 잘사는 경우를 보게 될 때 과연 신이 계신가? 계신다면 어떻게 저런 사람을 그냥 놔둘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을 때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때가 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인의 불의한 시도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목숨 건 에스더의 폭로에 따라 하만의 흉계를 알게 된 아하수에로 왕은 크게 분노하여 모르드개를 처형시키기 위해 세운 나무 기둥에 하만을 매달아 죽이도록 명령했다. 아하수에로 왕이 그토록 신임하던 하만의 변명조차 들어보지도 않고 즉석에서 극형을 내리게 된 이유는 잠시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왕궁의 후원을 거닐다가 다시 잔치 자리로 되돌아온 그의 눈에 하만이 에스더에게 바싹 다가앉아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왕비의 옷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왕을 무시하는 것이었으며, 더욱이 왕비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하만이 옷자락을 잡고 흔드는 모습이 마치 옷을 벗기려는 시도처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에스더를 강간하려고 덤비는 줄로 오해하게 되어 더 이상 그의 변명 따위는 들어볼 필요도 없이 극형에 처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따라서 에스더에게 매달려 목숨을 구걸한 하만의 행위는 오히려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고 만 셈이다. 더구나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 최대의 수치와 모욕을 안겨주기 위해 하만의 처형 장소를 하만의 집으로 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하만의 교수형은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악인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악인은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이 계획적으로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예시해 준다. 유대인들을 모조리 살육하려던 음모는 물론이고 미리 모르드개를 처형시키려던 하만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으며, 심지어 에스더에게 매달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던 마지막 시도마저 수포로 돌아간 것이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잠깐뿐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에 의해 의인들이 승리하게 됨을 믿고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하만의 경우에서 보듯이 악인의 파멸은 단순히 악인의 패배만을 의미하지 않고 항상 의인의 승리를 돋보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인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가게 해서 결국은 사단이 승리하는 듯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삼아 야곱 가족을 가뭄으로부터 구원해 주셔서 궁극적인 승리를 나타내셨고, 사자 굴 속의 다니엘을, 풀무불 속의 다니엘의 세 친구를,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부활이라는 승리로 승화시켜 주셨습니다. 악하게 사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한때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나 최후에는 멸망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악을 멸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하며 늘 의의 편에 설 수 있도록 깨어 있으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 악인을 패망으로 이끌고 궁극적으로 의인을 승리케 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면서 악인의 흥함을 부러워하거나 이를 통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늘 의의 편에 서서 궁극적으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목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