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개천♡흘러가듯, 2021년 4월 21일의 일기, 밤배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이 길 한 번 걸어봅시다.”
박종팔 회원의 제안으로 걷기 시작한 길이 있었다.
순라길이라고 했다.
옛 조선시대에 말에서 내려야 할 곳을 표시해놓은 하마비(下馬碑)와 조선 세종조의 발명가인 장영실의 해시계를 올려놓았던 앙부일구(仰釜日晷)의 대석(臺石)을 지나 그 순라길로 들어섰다.
조선시대에는 순라군 방망이 소리가 들리던 골목이었지만, 지금은 공예가들의 망치질 소리가 '땅땅' 울리는 소위 ‘공예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고 했다.
순라길은 종묘를 중심으로 해서 동쪽의 ‘동순라길’과 서쪽의 ‘서순라길’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들어선 순라길은 종로 귀금속거리와 종묘 서쪽 담장을 따라 창덕궁까지 이어지는 '서순라길'이었다.
아기자기한 공방과 카페, 그리고 작은 식당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반세기를 서울에 살았어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몇 년 전만해도 노인들이 들끓어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하던 곳이었는데, 잠시 사이에 아름다운 정취의 풍경으로 재생되어 있었다.
곳곳에서 젊은 연인들이 어울린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창덕궁 돈화문에서 그 길이 끝나고 있었다.
지난날 우리가 ‘비원’(祕苑)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궁이었다.
내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옛 추억을 떠올렸다.
46년 전인 1975년 이맘때쯤으로 거슬러, 그때로 스무 살 나이에 접어든 지금의 아내한테 첫 프러포즈를 했을 때의 추억이었다.
돈화문 그 문 앞 길 건너 왼쪽 코너에 있던 어느 2층 다방에서 만나 어렵게 입을 뗐다.
그러나 한 마디로 거절당하고 말았었다.
그 한 마디, 곧 이랬었다.
“저는 아직 결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있다 해도 댁은 관심이 없어요.”
분위기가 싸늘했다.
몇 마디 더 꼬드김의 말을 건네 봤으나 허사였다.
그 허사의 상황이 너무나 어색했다.
발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밟으며 돌아서 내려오는 내 발걸음은 정말로 천근만근이었었다.
만약에 이날의 내 그 프러포즈가 받아들여진다면, 그 길로 곧장 건너편의 비원으로 들어가서 행복한 데이트를 하려고 했던 내 꿈은, 그렇게 한 순간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바로 그 추억의 자리에, 이제는 높은 빌딩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밤하늘에 반쪽 달이 밤배처럼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