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사 6,1-8; 1코린 15,1-11; 루카 5,1-11 / 연중 제5주일; 2025.2.9.
우리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내동댕이쳐 진 존재가 아닙니다. 누구나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났으며, 창조주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천륜(天倫)이라 하는데, 이 보다 더한 창조주와의 인연이 인간 누구나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부르심, 즉 소명(召命)입니다.
물질로 이루어진 모든 물건은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지 못하고 오직 소유주와 사용자의 손길에 따라서 쓰일 뿐이고, 생태계의 바탕을 이루는 식물들도 한 번 뿌리를 내린 그 자리에서 자라나 꽃이나 열매를 맺을 뿐이며, 스스로 움직이는 짐승들은 그저 본능에 의해서만 살아갈 뿐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깨닫는 바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소명 의식에 따라서 물질이나 식물 그리고 동물과 다른 인간의 존엄성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둘러보면, 이런 소명을 자각하지 못하고 물건처럼 주어진 여건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거나, 식물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붙박이로 살아가거나, 동물처럼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릇 인간이라면, 이래서는 안 됩니다. 창조주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치를 이해함은 물론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물어야 하며, 하느님과의 인연을 깨닫고, 세상 속에서 그리고 인생이 지속되는 시간 안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고자 애써야 하는 법입니다.
1. 말씀의 주제와 흐름
오늘 연중 제5주일에 들려오는 말씀의 주제는 선교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어 세상에 파견하시고, 선교사의 소명을 자각하고 파견된 이들의 활동을 신적 권능으로 도와 주시며,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발현하시어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는 말씀의 흐름이 이어집니다.
제1독서인 이사야 예언서는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게 된 이야기를 들었고, 복음에서는 어부들을 찾아가신 예수님께서 풍어기적으로 당신의 신적 권능을 드러내신 후 그들을 제자로 삼으신 소명기사를 들었으며, 제2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박해자였던 시절에 예수님께서 발현하시어 선교사로서 소명을 받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 우리 믿음의 바탕
우리는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새 역사를 창조하고 계심을 믿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또는 우리가 어디에서 일하든지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새 창조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실상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는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양심과 이를 진리의 빛으로 밝혀주는 신앙으로 세워집니다.
3.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다
남유다 왕국이 멸망 당하기 직전에 유다의 귀족 출신으로 사제였던 이사야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 나라에는 신앙이 흔들려서 불공정과 불의가 넘쳤습니다(이사 1,21). 그러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따라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개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집트에 빌붙어서 아시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이집트나 아시리아의 군대보다 더 강하신 분으로서 ‘만군의 주님’(1,24)이시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어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하시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4. 선교의 성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과연 어떠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오늘 복음이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시려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밤새 허탕을 친 그들에게 찾아가셔서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하고 이르시자, 처음에는 망설이던 그들이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배 두 척이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어부 네 사람, 베드로와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소명을 자각하지 못하던 이들도, ‘삶의 깊은 데’로 저어 나가면 생각지도 못하던 풍요로운 성과를 인생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 이 소명 기사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자각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현세에서 자신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 또 얼마나 편히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물질적이거나 경제적인 차원에 관심이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소명을 자각한 이들은 인생의 깊은 의미를 생각하고, 주어진 인생 동안 세상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5. 박해자도 부르신 예수
바오로는 본시 열성적인 바리사이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거짓 예언자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니기까지 했는데, 그런 박해자 바오로의 앞길을 예수님께서 가로막으셨습니다. 번개를 내리쳐서 눈을 멀게 하고, 벼락 소리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4-5). 나중에 사울은 바오로라는 그리스식 이름으로 바꾸고 그리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자신이 부르심을 받은 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6. 하느님의 일, 선교
일찍이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필요한 일꾼을 부르시고, 부르신 일꾼들에게 어떻게 도와 주시는지에 대해 이렇게 갈파한 적이 있습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이사 55,10)
이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비와 눈을 내려 주시기 때문에 농사도 지을 수 있고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하느님의 부르심은 반드시 그 열매를 맺지 않고는 멈추지 않는다는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모른 척 하지 않으시고 매우 관심 있게 지켜 보시며, 당신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일꾼을 부르시고, 그 일꾼이 하는 일을 도와 주십니다. 그래서 선교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자각하고 이에 응답하는 선교는 선교사들만의 몫이 아니며,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신자로 만드는 전교 활동만도 아닙니다. 선교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깨닫는 일이며, 자신의 인생을 인간답게 가꾸는 일인가 하면, 세상에서 사람들을 도우며 풍요롭게 의미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이에 오늘 미사의 입당송인 시편 95장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7. 우리의 기도
어서 와 하느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목청 돋우세
송가를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가세, 노래가락 드높이 주님을 부르세
야훼는 위대하신 하느님이로세, 모든 신들 위에 계신 대왕이시네
깊고 깊은 땅속도 당신 수중에, 높고 높은 산들도 당신 것이네
당신이 만드셨으니, 바다도 당신의 것, 마른 땅도 당신이 손수 만드시었네
어서 와 엎드려서 조배 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세
당신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우리는 그 목장의 백성이로세
당신 손이 이끄시는 양떼이로세.
당신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머리바에서처럼, 맛사의 그 날의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너희 조상이 거기서 나를 시험하고, 내 일을 보고도 시험하려 들었나니,
사십년 동안 그 세대에 싫증이 나버려, 나는 말하였었노라,
마음이 헷갈린 백성이로다, 내 도를 깨치지 못하였도다”
이에 분이 치밀어 맹서코 말하였노라
“이들은 내 안식에 들지 못하리라”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 받고 있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우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