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오늘 오신댄다.
근데 솔직히...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아버지가 많이 달리지신 건 사실이다.
노력도 많이 하시고...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못 깨달았을 뿐...
근데 아버지가 부담스럽다.
자꾸 공부 얘기를 꺼낸다.
"지금은 이렇지만 니가 나았을 때를 생각해서 미리 공부를 해놔야..."
아버지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지금 내 정신에 공부가 들어오겠나???
아버지는 정신과 행동을 별개로 생각한다.
내가 뭐 놀고 싶어서 노나... 계속 노는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을.
아버지는 요즘 한 번도 나에게 요즘 무슨 생각하니, 요즘 뭐가 힘드니 물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자꾸 등산만 가자고 한다.
아버지는 대놓고 말한다.
등산만 계속하면 나는 다 낫는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등산도 중요하긴 해.
자연도 접하고 운동도 하고... 일석이조지.
근데 어떻게 그렇게 무섭도록 단칼에 정의를 내려버리지.
스스로는 몇백번씩 생각을 해서 권유를 한다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단순한 이유다.
혼자만의 근거.
그게 아버지의 한계인가.
한 번은 등산을 가기 싫다는 나에게 짜증스러운 눈빛을 건넸다.
등산이 명약인데 등산을 안간다고...
아버지가 내 병에 대한 이해도도 없으면서 속단을 내리는게 싫다.
이 말을 하면 아버지는 속터져 하면서 말하겠지.
그럼 도대체 넌 뭘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도 확실히 몰라.
그러니까 지금 미치겠고 이러고 있지.
서로 속 터지는 일이다.
나는 한 번 다 나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와서 다시 골골대기도 참 민망하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힘들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사실 힘든데...
그때 너무 오바했다.
근데 그땐 정말 나은 줄 알았으니까...
내 나이 22.
너무도 빨리 흐른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어릴적부터 아버지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 내 기억에 남는 아버지는 좋은 이미지가 거의 없다.
언제나 호통, 고집, 혼자만의 세계, 버럭 짜증, 나와는 감정소통이 되지 않는...
어느 책에서 봤다.
일관되게 못된 아버지보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아버지가 더 무섭다고.
차라리 계속 쭉 못된 아버지가 낫다고.
아버지가 못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박히면 아이는 다른 의존의 대상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좋았다가 나빴다가의 상태를 반복하면 아이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큰 혼란을 느낀다고...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
좋을 땐 한 없이 좋다가도...
마지막에 꼭 한 번의 반전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내 앞에서는 아이구 고생이 많지 하면서 마냥 부드럽게 하다가도
나 몰래 어머니와 통화할때는 내 욕을 하고 있었다. 그 새끼는 노력을 안하다고.
내가 엿들었다.
이게 대체 뭐야...
진짜 이게 뭐냐고...
사람이 이럴 수 있나...?
배신감.
뭐랄까...
어안이 벙벙하고 맥이 탁 풀리는 느낌...?
이렇게 내 앞에서는 좋다가 뒤에서 욕한 적도 많고
고요한 가운데 혼자만의 스트레스로 어린 나에게 갑자기 이유없이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거나...
토익 강좌 들으라고 좋게 웃으면서 타이르다가 내 계속 싫다고 하자 한순간 돌변해서
"니 맘대로 해 새끼야" 하며 갑자기 뺨을 때린다던가...
엄마와 미칠듯이 싸우다가 누구에게 전화만 오면 호탕한 웃음소리로 받는다던가...
그런 웃음을 집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러한 반전들...
이런 것들 때문에 난 인간이란 가식적인 존재라고 생각을 하게됐다.
저 사람이 아무리 웃고 있어도... 속에는 뒤틀린 뭔가가 있겠지... 저건 진심으로 웃는게 아니겠지...
집에 돌아가서는 다 엎어버리고 화만내고 짜증만 낼거야...
이렇게...
아버지는 아이들이란 10번 잘해주다가 1번 못해준 걸 기억하기 마련이라고...
자신도 그런다고 하지만...
1번 못해준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쌓아왔던 믿음과 신뢰를 완전히 뒤엎는 상황들이었음을.
아버지는 여전히 모른다.
아버지에게서는 인간미를 느낄 수 없었다.
오죽하면 날 때리고나서 끝에 안아주려 했을때 내가 그 어린나이에 가식적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이건 어디서 보고 따라하는 거야, 뭐하자는 플레이야 하면서...
그 포옹에 난 전혀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영악했(?)다고나 할까
차라리 못된 아버지였다면 어떻게든 결말이 났을텐데.
나를 쥐었다 폈다 심리적으로 아주 못살게 굴었다.
이건 사실이다.
최근에 한 말이 떠오르는군.
"엄마하고 나하고 싸울 땐 싸우지만 또 잊고 웃고 떠들잖니. 다 그런거야."
풉...
글쎄...
요즘에야 싸우는 거하고 웃는 거하고 반반정도 되지만
아버지가 나때문에 정신차리기 전에는
싸움와 화해의 비율이 9:1 도 안됐었던 것 같은데...?
틀린가...?
언제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았다고 그래, 새삼스럽게...?
내 눈엔 서로 화목했던 적이 없는데... 내 눈깔이 삐었나.
밖에 나가서 서로 화목한 척 가식 떨 때만 빼고 말이야.
엄마 아빠가 서로 '대화'라는 걸 한 적이 있었나...?
난 20년간 들어보지를 못했는데 나 잘때 새벽에 둘이서만 몰래 하셨나보네...^^
최근들어서 아버지를 믿어보려고 기대를 했다가 상처받고 실망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에 혹시나 해서...
그런데 아버지는 여전하다.
많이 좋아지시긴 했지만,
엄마에게 멍청돼지라고 욕하며 싸우는 것도 부활했고(아버지는 내가 모르는 줄 알지만 다 들었다)
여전히 뒤에서는 이제 이 상황에 지쳤다며 나에게 상처주는 말들을 나 몰래 내뱉고(그게 꼭 나에게 들린다는게 문제다)
독서실 끊어놓고 안갔다고 나더러 잘먹고 잘살으라고...
너 벌써 이렇게 집안에만 있은지 3년이나 됐다고...
이런 상처주는 말들을 대놓고 하기도 하고...
가식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고
혼자만의 고집과 아집에 빠져있을 때가 많고
여전히 나와 '감정'소통이 되질 않는다.
나와 교감할 줄을 모른다.
이제 아버지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려고 한다.
좋은 점도 많지만 실망한 기억이 더욱 크기에...
너무 늦었을지 모르지만
좀 더 빨리알아차려야 했지만.
아버지에게 이제 기대라는 걸 하지 않기로 한다.
밀어낸다.
믿음을 주지 않을거야.
20년간 실망만 반복했고 상처만 받아왔다.
내가 진심을 다해 쓴 편지를 읽을 때 코웃음치며 비웃던 것도 난 잊을 수 없다...
그밖의 날 믿어주지 않았던 일들도...
또 기대를 하게 만들지라도, 이번엔 절대 속지 말아야지.
아버지란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는 아버지가 결정하는 거니까 나와는 관계없다.
다만 나는 나로서 주체적으로 아버지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족하다.
그렇게 서로 웃고 떠드는 선에서 만족할 거다.
아버지, 미안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다소 실망스러운 존재예요.
나도 이제 지쳤어요.
이젠 기대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이제 실망도 상처도 없어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사세요.
나도 이제 성인이니까 아버지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겠습니다.
이제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를...
bye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