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봄길이라는 시를 배웠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스스로 길이 되고,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스스로 사랑이 된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시를 읽고 굉장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서 짝사랑을 하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혼자서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발표 시간에 그렇게 말하자 선생님이 수업이 끝난 뒤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시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지만 시험에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가 시험에서 틀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참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아직 고등학생 입니다. 문학을 좋아하고요. 그런데 수업을 들을 때, 수업이 내가 좋아하는 시를, 소설을 해치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즐겁게 보던 시를, 수업 뒤에는 시에서 정답과, 쓰인 비유법, 주제를 찾느라 즐기지 못하게 되니까요.
학교를 가고 문학 수업을 듣는 이유는 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인데, 오히려 수업이 그걸 해치다니 참 아쉽습니다
현직 국어교사입니다. 원래 유튜브는 보기만 하고 댓글을 단 적은 없는데 김영하 작가님 말씀을 들으니까 오만 생각이 다 나서 몇 글자만 끄적입니다.
우선 김영하 작가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공교육을 받아보신 분들은 최소 한 번씩은 들어보셨겠지만 문학이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 간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어떤 얘기를 할 때 상대방이 내 말에 실린 나의 의도와, 부여된 의미와, 감정과 느낌 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경험, 감정, 생각을 담아 이해하는 것처럼 책을 읽는 독자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이를 자기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이해합니다.
김영하 작가님 말씀처럼 애초에 작가가 자기의 의도를 그대로 담아 쓰는 것도 아니지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더이상 문학 작품이 아니라 논설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에서는 문학을 가르칠 때 마치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저도 고등학생 때 모의고사와 내신을 공부하면서 이에 대한 회의감을 되게 많이 느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시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만 해석하라는거지?'와 같은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고, 매일 국어 선생님을 찾아가서 문제가 왜 이따구인지, 제가 멋대로 한 해석이 정말로 틀린 것인지 등을 여쭤보면서 국어 선생님을 귀찮게 했습니다.
친절히 설명해주시던 선생님이 어느날은 너무 피곤하셨는지 "너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가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이후로는 불쑥불쑥 뛰쳐나오던 교육방식에 대한 반항심을 억누르고 그냥 문제푸는 기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제도권에 순응하니 자연스레 성적도 잘 나와서 어떻게 임용고시까지 붙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 다시금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회의감이 많이 듭니다. 제가 정말 싫어했던 '정답이 있는 문학'을 제가 인지하지 못한 채 제 학생들에게 되풀이하고 있더라구요.
소위 말하는 교사용 지도서라는 것을 보면 이미 문학에 대한 답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교사는 그저 학생이 그 답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과 발문으로 길을 잘 안내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강의력이 좋다든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잘한다 등의 칭찬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진짜로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활동을 한다든가, 답을 내리지 않고 학생들에게 여지를 둔 채 작품을 마치게 되면 학생들도 싫어하고 저도 힘들어집니다. 바로 평가를 해야하거든요.
작품을 통해 나오는 학생들의 다양한 해석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도 의문이고, 제가 그 해석들에 점수를 매길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더욱이 학생들은 이미 주어진 답을 찾는 것에 익숙해져 이러한 활동을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잘 하지도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독자 위주의 문학 수업이 과연 가능할까요?
밑의 여러 댓글을 보니 수능은 어느 관점을 주고 그 관점대로 작품을 해석하도록 하지, 답을 정해놓지는 않는다고 옹호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능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관점 제시의 방법 자체가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학생들은 그런 식으로 밖에서 주입된 관점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는 것에만 익숙하지
자기 자신의 주관과 잣대로 스스로 작품을 읽고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모르거든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렇게 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라고 시키는 것에만 따르고, 이게 맞다는 말에 비판 없이 고개 끄덕이는 것을 좋게 보는 사회의 통념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왜?'라는 말을 던질 줄을 모릅니다. '왜 그렇게 해야하지?', '이건 왜 이런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등의 질문을 던지더라도 무시되거나 부정적인 대답을 듣는 경우가 태반인지라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점차 '왜'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 나름대로 사회의 반동분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저 역시 그런 질문이 없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있더군요.
윗대가리들도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닌지라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교육에서의 여러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요즘 실시되는 학생들의 절대적으로 부족한 독서량을 늘리기 위한 한 학기 한 권 읽기 교육이라던가,
교사 중심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이 아닌 다양한 활동 위주의 학생 참여 중심의 교수학습 등이 그 일환입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정책과 교육 방법 등이 솔직히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왜냐면 아무리 그렇게 좋은 수업을 받더라도 결국 그 모든 교육의 끝이자 귀결점은 천편일률적인 수능이거든요. 교육이라는 것이 평가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수능이라는 단 한 번의 평가가 가지는 중요성을 볼 때 결국 평가 방법이 바뀌지 않으면 이러한 답이 정해진 국어 수업은 크게 바뀌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시 말고도 수시를 늘리는 등 교육부에서 고심하고 있기에 어떻게든 좋은 방법으로 바뀌기는 하겠지...하고 일말의 기대는 품어봅니다.
첫댓글 좋네요
맞아요. 수학문제를 잘 푼다고 수학을 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문학성적이 좋다고 문학을 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의미를 느껴야 하고 그거 표현해야 합니다. 지금 교육은 그걸 못하게 하는거죠. 다만 문제를 푸는 기술이필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