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징계 후배 구명, 문체부 전직 관료들의 뒷북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전직 고위관료 12명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연루된 후배 관료 2명에 대한 구명에 나섰다.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은 용호성 사행성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과 김낙중 국립중앙박물관 행정운영단장에 대한 징계를 멈춰달라는 탄원서를 황희 문체부 장관 등에게 전달한 것.
2018년 문체부는 두 사람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할 때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을 전달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도종환 당시 문체부 장관은 검찰 수사결과와 별개로 징계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지난달 두 관료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문체부는 국무총리 소속 중앙징계위원회에 심의를 의뢰하며 자체 징계절차에 들어갔다.
탄원서에 이름을 올린 전 문체부 간부 A 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우리도 현직에 있을 때 청와대에서 내려온 부당한 명령을 후배들에게 전달했던 마음의 짐이 있다.” 그의 고백처럼 12명의 참여자 가운데 다수는 블랙리스트 사태 당시 문체부 고위 간부로 재직했다. 그중 일부는 후배들에게 블랙리스트 지시가 하달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탄원서에는 “블랙리스트 사건에 관여하게 된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건 당시 보직이 부당한 명령을 전달해야 하는 통로에 해당됐기 때문이며 그 위치에 있었으면 누구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블랙리스트 사태 같은 일이 또 벌어질 경우 문체부 공무원들은 영혼 없는 ‘메신저’ 역할을 피하기 어렵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탄원에 참여한 유진룡 전 장관은 2017년 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 참고인으로 출석해 “김기춘 씨(전 대통령비서실장) 취임 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저한테도 그렇고 여러 차례 블랙리스트 작성에 해당하는 일을 지시했고 리스트 적용을 강요했다”며 “(블랙리스트 주도 인물들이) 문체부 담당자들에게 ‘생각하지 마라. 판단은 내가 할 테니까 너희는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했다”고 밝혔다. 궁금하다. 왜 이런 얘기를 듣고도 장관으로 있을 때 직을 걸고 문제 삼지 않았을까. 정작 그는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방송인 자니 윤을 앉히라는 청와대 지시에 반발해 장관직을 사임했다.
전직 간부들의 후배 구명을 보며 2016년 9월 국회에서 열린 문체부 국정감사 현장이 떠올랐다. 문체부 국감 사상 처음으로 7급 주무관이 증인으로 이날 오후 11시쯤 단상에 섰다. 그는 공무원 임용 4개월 차에 미르재단 설립허가 업무를 맡은 막내 실무자였다. 주무관이 증인이 된 건 문체부 간부들이 “미르재단 허가 시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모두 부인했기 때문이다.
공무원 임용 선서 중 ‘나는 정의의 실천자로서 부정을 뿌리 뽑는 데 앞장선다’는 내용이 있다. 전직 간부들은 퇴직 후 뒷북을 칠 게 아니라 현장에 있을 때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부정을 묵과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게 진정으로 후배들을 지키는 일이었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