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랭보
여름날 푸른 저녁에 나는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몽상가가 되어 발밑으로 그 신선함을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
하지만 한없는 사랑은 내 영혼에서 피어오르리니,
나는 멀리 멀리 가리라, 보헤미안처럼,
여인과 함께 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랭보(1854~1891)는 사물에 대해 특유의 새로움과 놀라움의 시적 상상을 보여주었던 시인이었습니다. 이 시에서는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름 저녁의 느낌을 매우 부드럽고 연한 언어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들의 싱싱함과 산뜻함을 온몸으로 한껏 받으며 걷는 행복함을 사랑하는 상대를 향한 감정에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랭보는 새벽 산책의 느낌에 대해서도 “신선하고 흐릿한 빛으로 가득한 오솔길에서, 첫 번째 모험은 나에게 이름을 말하는 꽃이었다.// 나는 전나무들 사이에서 머리를 헝클어뜨린 금발의 폭포를 보고 웃었다”라고 썼습니다. 베일에 싸인 자연의 신비를 구체적으로 감각하는 시인의 예민하고 빼어난 능력이 놀랍기만 합니다.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성귀수 옮김)
야영지 흔들리는 모닥불이
꿈의 형상들을 비추네
뒤엉킨 나뭇가지들 속
몽환이 천천히 올라가네
이제야 한심해하는 회한은
딸기처럼 온통 흠집투성이
추억과 비밀에서
남은 것은 오직 숯덩이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랭보가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상처를 안고 산다. 이 상처를 잊고 살다가 상처가 드러날 때가 있으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다. “뒤엉킨 나뭇가지들”을 태우며 흔들리는 모닥불 위로 “추억과 비밀” 역시 타오른다. 그러자 “몽환이 천천히 올라”가면서, “딸기처럼 온통 흠집투성이” 같은 회한이 마음을 조이기 시작하고, 결국 마음엔 “오직 숯덩이”만 상처로서 남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