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다시 찾아 오신 스님.
17년 전에 쓴 편지를 보여 드렸습니다.
시계
동그란 안경 너머로 화들짝 기뻐하시던 스님의 미소를 생각합니다.
무어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 서성대기만 하시던 그날, 두 번째 뵙던 날. 사랑도 아니고 애착도 아니면서 그렇게 반가울 수 있었던 우리는 같은 불자였습니다.
떠나 오기 그냥은 섭섭하기도 했고 보내기도 그냥은 아쉽기도 하여 일주문 나서기 전에 잠시만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똑같은 마음으로
“하모니카 한 번 더 불어 주소.”
하고 붙잡으시던 인정과 인정. 악수하며 맞잡은 손.
“스님 시계 예쁘네요.”
“법사님 가지세요.”
“제 시계랑 바꾸어요.”
“이렇게 비싼 것을요?”
“값이 문제더이까?”
“단주를 덤으로 드릴께요.”
“부처님을 덤으로 받을께요.”
“이 시곗줄을 한 마디 줄여 주세요.”
“전 시곗줄을 세 구멍 늘여야 겠어요.”
“다음에 만나면 돌려 드릴께요.”
“5년 후에요?”
“그렇게나 오래요?”
“그 동안은 그냥 만나고요.”
“시계는 5년마다 바꾸고요?”
함께 계시던 다른 스님들이 더 기뻐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 덕택에 쇠줄 시계를 얻으셨다고 기뻐하시고, 저희는 스님 덕택에 가죽줄 시계 얻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스님께는 더 강해지라 하시고, 저희에게는 더 부드러워 지라는 법문으로 알겠습니다.
저희가 스님께 드린 시계는 네모이니 사홍서원을 지키라 하심이요, 스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계는 둥글어 모가 없으니 원만무애를 배우라 하심이지요. 그저 모양만, 그저 겉보기만 그렇지요.
아이들은 초침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고 두 시계가 무려 몇 초나 틀린다고 말하겠지마는, 저희는 분침이 몇 눈금 틀려도 그게 무슨 대수며, 스님께서는 시침은 같은 시간이니 두 시계가 맞다고도 하시겠지마는, 부처님께서, 너희가 같은 시대에 사니 이미 같은 시계이거늘 어찌 무량겁을 손목시계 바늘로 재느냐고 꾸지람을 하실라.
콩알만한 건전지로 몇 시간이나 가느냐?
태양만한 에너지도 언젠가는 꺼질 우주.
여래의 무변무량한 하염 없는 에너지를 받으라 하시겠지요.
오오, 스님.
시계 하나씩 바꾸어 끼고도 이토록 마음이 기쁘니,
춤이나 덩실 춥시다. 노래나 닐니리 부릅시다.
부처님께서 그러셨지요.
“너희가 출가하여 산중에 살면서도 세속인 들락대는 일주문에 머물러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는 어느 것이 더 비싼지 숫자로 계산하고 어느 것이 더 값진지 돈으로 따지느냐?
내 이미 말했거니 물질 보배 다 허깨비라.
비싸고 값진 거란 너희 서로 주고받는, 아낌없이 주고 싶은, 준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욕심 없는 그 마음이라.
나는 준 자에게는 상으로 주고, 받은 자에게 덤으로 또 주느니, 기쁨이 그 상이요, 공덕이 그 보너스니라.
무엇을 더 바라느냐?
너희는 준 자에게 또 주고 싶을 것이며 받은 자에게 더 주고 싶을 것이니, 하나 받으면 둘을 주고 싶고 둘을 받으면 열을 주고 싶을 거다. 미움을 주어도 이렇게 불어나거늘 하물며 기쁨을 줄 때야 어떻겠느냐?
주다가 받다가, 너희 그릇은 넘치고 깨어지며 너희 창고는 터지고 무너지리라.
깨어지고 무너진 곳에 너희는 참 보배를 찾으리라.
너희가 세간에서 얻지 못했던, 원래 내가 주었던 그 보배를 말이니라.
그때 너희는 이미 너희끼리만 주고 받지는 못하게 되리라.
너희는 그 때 손을 합하고 마음을 모아 너희에게 손 내미는 뭇 중생에게 그것을 나누어야 하리라. 주고도 주고도 남을 것이니라.
받아도 받아도 모자라는 중생들에게는 호통을 치며 내 말을 일러라.
“받기만 하는 자들아. 너희도 이제부터 주는 자 되거라.”
“저희도 모자라는데 줄 것이 어디 있어요.”
하고 묻는 바보가 있거든 속삭이면서 내 말을 전해라.
“부처님이 그러시는데, 너희 속에도 부처님 만큼이나 무진장 보배 창고가 사람마다 다 있느니라.
또 너희가 책 두 상자를 보내고도 오히려 미안해 하는 것은, 겨우 몇 십만원 숫자 때문에 그렇더냐?
네, 이놈!
돈으로 부처를 사느냐?
눈감고 그냥 주어 보거라.
반가운 마음 있으면 값이 문제냐, 선물까지 보내리라.
너희 숫자가 일, 십, 백, 천, 만, 억, 조, 경, 해, … 항하사, 아승지, 무량수, 불가사의, 겨우 이거냐?
나의 수는 아승지부터 시작하여 무량, 무변, 무등, 불가수, 불가칭, 불가사, 불가량, 불가설, 그리고 불가설불가설이며(십대수),
크기만 하더냐, 작기도 이러하니 극미, 미, 미진, 금진, 수진이며 토모진, 양모진, 우모진, 극유진이며 백분, 천분, 백천구지나유타분, 가라분, 산분, 수분, 유분, 우파니사타분이니, 너희가 알거라. 너희 수학과 나의 산수가 이러한 줄을 말이니라.”
스님.
그 시계 끼고 가는 곳에 스님 마음 동행하고 부처님 모습 함께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저희 손목 이끄시고 부처님께서 저희 손 잡으십니다.
가자 하시는 대로 가겠습니다.
〈법보 587,588호 91.7.2, 7.27〉에 게재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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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륜스님, 법운스님, 효제스님께서 안강에 다녀가신 후의 어느 일요일, 청도 운문사에서 운문불교학생회의 창립기념법회가 있어서, 건천, 금천, 산내 등의 학생회가 동참했다. 마침 포항제철 불교신행회에서도 이 법회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스님은 종무소 마이크로 `12시부터 대웅전에서 법회가 있으니 동참'하라고 방송했다. 앰프 소리는 운문 계곡 전체에 울려 퍼졌고, 소풍 나왔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운문사 승가대학에서 공부하시는 200여분의 비구니 스님들이 동참하여 청중은 법당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나는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운문사 창건 이루 1천 수백년 이래 대웅전 법당에서 하모니카 연주는 처음 있는 일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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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봄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은 이 날들 사이로, 꽃이 핍니다. 그리고 따뜻한 바람도 불어오네요... 건강하세요.._()_
활짝 핀 개나리를 볼 날이 머지않아보입니다. 황사 조심하시옵고 감기두 조심하셔서 건강한 봄 ... 맞으시길 바라옵니다. _()()()_
법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언젠가 염화실에서도 법사님의 하모니카 연주가 울려퍼질 날이 있겠지요.
늘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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