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후서 13장 11~13절
오늘 주제인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들어가기 전 지난번에 다루었던 “죄와 구원”의 내용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처음에 죄의 정의에 대해서 했습니다. 죄의 뜻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상태, 뜻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심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신 명령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우리 인간들에게 죄가 생겼습니다.
이 죄의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며 기도, 예배를 하나님께 직접 드릴 수 없었으며 심지어 천국에 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시 구원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시켜주시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예수님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기도와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천국에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구원을 주실 때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시지 않고 값없이 사랑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지난번에 다룬 ‘죄와 구원’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오늘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지시는 속성, 특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아니하는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뜻으로 모든 곳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잘 아는 말과 생각하면 좋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영원하다”라는 말을 생각했을 때 우리는 미래형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알파와 오메가”는 처음과 끝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하나님은 과거로도 영원히 계셨고 미래로도 영원히 계실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셋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현재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공간과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에 따라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는 동시적인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로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고, 그 영화를 보는 동안 지나간 장면을 과거에 봤다고 말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인생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는 하나의 시간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정의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신학이 연구되고 발달하고 있다 하여도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특징을 다 알 수 있다고는 말 못 할 것입니다. 1차원이 2차원을 이해 못 하고 2차원이 3차원을 이해 못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일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일까요? 이 이유는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우리에게 가장 알맞고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알맞고 좋은 길을 아시는 이유는 바로 다음의 세 가지 특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자,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자 스스로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사람이 기계를 만들 때, 기계의 용도와 작동 원리 등 그 기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그 기계보다 상위적인 존재가 되며 기계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시니 이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니 가장 권위 있고 높으시며 ‘전지’라는 단어가 가장 합당한 분이실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지’라는 단어 뒤에는 항상 ‘전능’이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실생활에서도 느끼고 있습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라는 말을 다이어트의 예시와 함께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지, 살을 찌게 만드는지, 또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만, 막상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는 것을 실행할 힘과 절제력, 결정력 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실뿐더러 그 모든 것을 실천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까지 모두 갖추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수 있고 우리 역시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듯이 우리가 아는 것을 우리의 신앙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말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이 가장 좋다고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며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시고, 어째서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말씀하실까에 대한 답변은 우리의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음은 예수님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떠한 것을 해주셨는지, 예수님의 역할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서부터 어떠한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배고픔, 피로, 감정을 모두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도 있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완벽히 가르쳐주시기 위해 오셨다고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보다 신의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였다면, 우리는 핑계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어째서 예수님은 구원의 사역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을 통해서 직접 우리에게 보여주신 걸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내용들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분의 사역이 연결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앞선 내용들을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알고 계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기에 가장 권위 있고 높으신 분이십니다. 더불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행할 능력도 있으시기에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우리가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오셔서 구원의 사역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직접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뒤이어 성령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다뤘던 ‘구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일하심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예수님 덕분에 그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여기서 회복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되돌아갔다는 뜻이 아닌, 하나님과 나와의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 덕분에 구원받았다는 사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파괴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성령님을 통해 다시 회복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완벽한 계획을 세우십니다. 이는 곧 각 사람에게 가장 알맞고 좋은 길 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계획을 세우실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창조주, 스스로 계시는 분,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예수님을 보내심으로써 끊어졌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이어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구원의 사역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앞서서, 저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역이 연결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태복음 13장 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결실을 하였느니라”를 원어로 살펴보면, 미완료 과거 시제로 적혀있습니다. 다시 말해, 결실이 어떤 한계점에 도달할 만큼 겨우 이뤄진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생명력 넘치게 결실을 내고, 복음의 씨앗이 그 사람 안에 심겨지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복음의 씨앗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자라나도록 우리 안에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시는 삶을 보여주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서 그 구원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 지를, 어떻게 복음의 씨앗이 자라나게 하는지 가르쳐주셨으며,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오신 뒤에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세 분 중 어느 한 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구원을 통해 세 분의 일하심을 보았듯, 중요한 사실은 이 원리가 현재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각 사람에게 가장 알맞고 좋은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며,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그 인도하심을 이루어 가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우리도 반대로 성령님의 감동과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함께’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세 분의 일하심을 요약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릴 향한 인도하심을 계획하시고, 예수님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편지를 끝맺는 인사 부분으로 “그동안 평안하시고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와 같은 구절입니다. 가볍게 마무리하는 부분이지만, 오늘의 본문을 한 절로 요약하자면 13절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를 인도해 가시며 성령님의 교통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