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된장....(모셔온 글)

[권기창]

* 후회 * 

집에서 칼부림을 하고 말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후회는 아무리 간절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 더구나 사내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결코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집은 아내와의 2인 가구이니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자명하겠지요.

눈이 뒤집히고 머리가 돌아버렸던 모양입니다.

지지리도 못난 놈이라고 아무리 자학을 해봐도 돌이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늘을 쳐다보기도 두려워졌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되었는지…… 눈물이 납니다.

* 칼 *

칼이 화근이었습니다.

평소 칼을 한번 휘둘러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검(劍)이 되었든, 도(刀)가 되었든, 세상을 향해 나의 날선 칼을 휘둘러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나의 각오였습니다. 쾌도난마를 상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는 쾌도난마가 아닌 사시미 칼을 휘두르고 말았습니다.

변명이 통하거나 용서를 받을 수 있으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명검도 보검도 아닌 사시미 칼이라니.

두 달쯤 전 대형마트에 갔습니다. 칼이 눈에 띄었습니다. 회칼이었습니다.

그 칼은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칼을 집어 들자 오싹한 살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칼을 샀습니다. 집에 오고 나니 마땅히 칼을 둘 곳이 없었습니다.

회칼은 아무래도 집안에 보관하기에는 위협적인 생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 속에 칼을 넣어 두었습니다.

그때부터 집을 나설 때마다 그 회칼은 나와 함께했습니다.

* 생일 *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아내의 회사는 요즘 월급도 밀리면서 주말에도 출근을 강요했습니다.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아내의 주둥이는 학꽁치 만큼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러 들으라는 듯이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휴, 박복한 년,

자식복도 없는데 서방복도 없어서 생일날 미역국도 못 얻어먹고 출근해야 하는 내 신세,

어휴 박복한 년"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아내의 한탄은 듣기 거북했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생일을 크리스마스나 부처님 오신 날과 동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아내의 생일이 국경일로 지정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입니까? 그리고 생일이 뭐 그리 축하할 일이란 말입니까?

나는 나의 생일도 거북하게 여깁니다. 나의 출생에 대해 그리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출생에 동의해 준 적이 없습니다. 나의 동의 없이 자행된 출생에 대해 감사를 강요합니다.

고발이라도 해야 할까요?

* 미역국 * 

나는 여태 생일상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뽕씨네 집에서는 부모님의 생일만 존재하지 자식들의 생일은 없었습니다.

미역국이 무엇이기에 아내의 마음이 그리 상했단 말입니까?

하긴 아내가 생일이라 해서 대단한 선물을 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그릇의 미역국에 그리 마음이 상했던 것입니다.

이왕 생일 아침 미역국은 놓쳤으니 저녁에라도 한 그릇 끓여 주려 마음먹었습니다.

그깟 미역국 한 그릇. 

오후에 시장에 나갔습니다. 사내들은 걸음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이지요.

푸줏간에서 쇠고기 한 토막을 끊었습니다. 돼지갈비도 조금 샀습니다.

어물전에 가서는 물 좋은 생태(우리나라에 생태란 것인 존재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마리와 가자미 두어 마리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조개도 한 움큼 담았습니다. 그날따라 조개들이 유난히 음란해 보였습니다.

푸성귀도 사야합니다. 뉴스로만 보던 배추 값을 확인하고 나니 경악할 노릇이었습니다.

시들시들한 배추 한포기, 무 하나, 대파 한단을 사니 2만원이 사라졌습니다.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부지런히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았습니다. 기분도 낼 겸 와인도 한 병 담았습니다.

장바구니는 생각보다 가벼웠지만 주머니에선 벌써 10만원이 빠져나갔습니다.

* 칼부림 *

가방에서 회칼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숫돌에 칼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농사를 지을 때부터 숫돌을 사용했던 터라 칼을 가는 데는 제법 소질이 있습니다.

낫과 대패를 갈던 솜씨로 회칼의 날을 세웠습니다.

시퍼렇게 날 선 회칼을 보니 또 살기가 전해집니다.

부엌칼도 갈았습니다. 쇠가 갈리는 소리를 들으니 또 흥분됩니다.

그리고 탈선,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그곳은 주방이었습니다. 사내가 주방 출입이라니, 지하에 계신 아버지께서 돌아누울 일입니다.

드디어 칼부림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쇠고기, 가로세로 2센티 크기로 썰어나갔습니다.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돼지갈비에 칼집을 넣었습니다.

부엌칼은 고기와 각종 채소들 그리고 마늘, 고추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태를 꺼냈습니다. 생태 앞에서는 칼을 든 내가 망나니가 따로 없었습니다.

나의 잔인함이 어디까지인지 그 끝을 가늠할 길이 없었습니다.

먼저 칼로 명태의 온몸을 긁어냅니다. 그리곤 온몸의 지느러미를 잘라냈습니다.

주둥이 부분을 잘라냈습니다. 대가리도 댕강 잘랐습니다.

아가미를 헤집고 뜯어냈습니다. 몸통을 삼등분으로 토막 쳤습니다.

내장을 발라냅니다. 알과 고니는 따로 솎아냅니다. 내가 원래 이런 놈이었습니다.

잠시 나의 잔혹한 행각에 희생된 명태를 향해 묵념을 올렸습니다.

가지미도 있었지요. 가자미는 더욱 서글픈 운명이었고 나는 더욱 잔인해졌습니다.

가자미를 도마에 올려두고는 드디어 회칼을 꺼냈습니다. 역시 먼저 온몸의 비늘을 긁어냅니다.

가자미의 비늘이 수북하게 쌓일수록 내 몸은 가려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곤 명태와 마찬가지로 대가리를 쳐냅니다.

몇 번만 더한다면 곧 닭대가리도 쳐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곤 몸통의 가장자리를 따라 칼집을 넣습니다. 드디어 회칼을 꼬리부분에 넣고 힘을 줍니다.

가자미는 금세 살과 뼈로 분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잔혹함의 절정이 남았습니다.

살점과 껍질 사이에 다시 회칼을 넣습니다.

꼬리부분의 껍질을 당기면 고기토막은 다시 살점과 껍질로 분해가 됩니다.

앞으로 나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날이 저물어서야 나의 칼부림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 아내의 퇴근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 생일상 *

상을 차렸습니다. 밥은 썩 잘되었습니다.

나는 새하얀 이밥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온갖 잡곡을 섞은 밥을 선호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나의 취향 따위는 개밥이 된지 오래입니다.

미역국도 꽤 잘되었습니다. 국간장과 참치액젓의 조합이 포인트입니다.

잡채도 괜찮았습니다. 계란 흰자 지단이 조금 두껍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로웠습니다.

잡채는 제가 꽤 자신 있는 품목입니다. 돼지갈비가 제일 잘된 것 같았습니다.

조리기 전 삶는 과정에서 넣은 월계수 잎의 위력은 강력했습니다.

양념이나 조리보다는 고기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생태찌개도 성공이었습니다. 가자미 버터구이는 별로였습니다.

딴에는 피시 미니엘이라고 만들었지만 볼품도 없고 먹기도 좋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밑반찬도 급히 만들었습니다.

두부조림, 계란장조림, 영양부추 무침, 멸치 볶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도 않고 조리도 쉬운 것들입니다.

도라지 무침도 했지만 만족스럽지가 않네요. 모든 채썰기는 2mm가 넘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시장에서 파는 대로 그대로 무쳤더니 굵직한 것이 볼품없었습니다. 

아내의 생일상을 준비하면서 둘이 먹기에는 양이 많은 것 같아 친구 피셔 놈을 불렀습니다.

드디어 아내가 퇴근을 했습니다. 주둥이는 아침에 출근하던 때의 학꽁치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차려놓은 생일상을 보자 환호와 함께 풍성한 지랄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 이런 된장 *

아내는 결혼해서 처음으로 신랑이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었습니다.

번거롭긴 했었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밥상을 물리고 술이 몇 순배 더 돌고나니 아내는 남편에게 교지를 내렸습니다.

  “짐은 그대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대가 오늘 차린 밥상을 받아보니 음식 솜씨는 그대가 나보다 나은 것 같다.

그리하여 짐은 금일부터 일체의 주방 업무를 그대에게 맡길 것이다.

그대는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날마다 풍성한 식탁이 되도록 성심을 다하라!”

지랄도 병인데 이정도면 아내는 불치병입니다. 실제로 그날이후 아내는 주방출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며칠이 지나자 나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 가랑이 사이의 방울이 거치적거려 미칠 지경입니다.

요즘은 온몸에 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아, 글쎄, 평판이던 내 젖이 부쩍 커져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짜 보았습니다. 이젠 서울우유 배달을 끊어도 될 것 같습니다.

어머 이를 어째. 호호호.

* 결혼식 날 스승님께서 하시는 말씀.. *

애 낳고 키우면서 밤에 애가 깨어 울면 혹 잠에서 깨어도 일어나 애 볼 생각하지 말고...

잠꼬대 하는 듯이 발을 움직여 옆에서 자고 있는 부인을 깨우라고 하셨습니다.. 

밤에 깨어 애기 보게 되면...  계속 보게 된다고...

*** 한번의 실수가 평생을 좌우한다 ***

[박통]

세상사 내일이 남의일이고 남의 기쁨이 내 기쁨이될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한 배려에 최선을 다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