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유적을 바라보는 가장 시적인 방법!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서
오래된 유적에는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는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흔적들을 찾아가는 책이다. 그리고 거기서 수천, 수만 년 전의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를 읽어낸다. 아주 오래된 신화나 전설에 감동한 적이 있다면, 먼 옛날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영혼 깊은 곳이 울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360만 년 전 고인류의 발자국 화석, 190만 년 전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집(혹은 베이스캠프) 흔적, 3만 년 전의 동굴 벽화, 7000년 전의 묘지, 둥글게 늘어선 3000년 전의 거석 기념물 등 고고학 유적은 대부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거나 눈에 띄게 화려하지 않아서 그냥 스쳐 지나가기 쉽다. 수만 년 전의 유적이라고 해도, 그런 숫자만으로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고고학 유적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이야기와 가치를 제대로 설명해줄 사람이다. 과거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 차가 있는 만큼, 그들의 삶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번역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닐 올리버는 BBC 텔레비전에서 20여 년 동안 굵직한 역사 다큐멘터리의 작가이자 메인 진행자로 활동해왔다. 세계 각지를 누비며 시청자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전달해온 그가 지구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고고학 이야기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인간성’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여정
수십만 년 전 지구에 살았던 고인류의 삶은 모질고 고달팠다. 먹을 것은 귀하고 잠잘 곳을 두고도 동물들과 경쟁해야 했다. 죽음은 가깝고 삶은 위태롭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인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라에톨리에 발자국을 남긴 이는 주위에 있을지도 모를 위험에 대비해 가족을 보호하려고 순간 걸음을 멈췄다. 저자가 인용한 메리 리키의 말 그대로 “이 움직임, 너무나 강렬하고도 인간적인 이 움직임은 시간을 초월한다. 360만 년 전, 당신 또는 나의 먼 조상이 의심의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선천적인 장애가 있었던 데다 한쪽 눈마저 멀었던 동료를 보살폈고, 그가 죽자 꽃을 바치며 죽음을 애도했던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에서는 돌봄과 사랑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만들자마자 강에 던져질 방패에도 최선을 다했던 수천 년 전 어느 예술가의 노력에서 숭고한 삶의 태도를 발견한다.
이 책이 고고학 유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진짜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되어온 ‘인간다움’의 비밀일 것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엄청난 풍요를 누리면서도 불안과 무기력, 허무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 가치를 느끼지 못해 겪게 되는 비극과 소외감을 해결해줄 실마리는 어쩌면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이들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흔적은, 수천만 년의 세월 동안 정제되어 우리에게 ‘고대의 지혜’로 전해진다.
고고학자는 무덤에서 무엇을 볼까?
‘잠자는 죽음을 깨워’ 우리가 던지는 질문들
고고학 유적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이면서 많은 사연이 응축되어 있는 것은 바로 무덤이다. 고고학은 죽은 이들의 무덤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산 사람에게 전해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덤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유골에 흔적으로 남은 죽음의 방식, 죽은 사람을 보내기 위해 산 사람들이 보인 정성은 갖가지 사연과 함께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에서 발견된 시체 주변에서는 데이지, 아킬레아, 무스카리, 노란수레국화, 접시꽃, 쇠뜨기 등 여러 종류의 꽃가루가 검출되었다. 막 꺾은 꽃다발을 시신 위에 놓은 것처럼 뭉텅이로 발견된 꽃가루도 있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해 국화꽃을 바치는 것처럼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도 죽은 이를 위해 꽃을 구해다 바쳤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약 5000년 전 덴마크 베드베크에서 발견된 어린아이의 유골은 백조 날개 깃털 위에 놓여 있었다. 바로 옆에는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의 유골이 조개껍질과 사슴, 물개 이빨과 함께 누워 있었다. 저자는 다정하게 다뤄진 유골을 보며 무덤을 만들었을 이들의 사랑과 애통함을 읽어낸다. 아기의 죽음은 당연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는 그때, 이들의 가족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모아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단장하고 기렸다.
스웨덴 비르카섬에서 발견된 8세기 소녀의 무덤은 유리구슬 목걸이, 진홍색 옷 등을 통해 그가 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두 눈 사이가 먼 유골은 그가 장애인이었음을 알려준다. 채 여섯 살이 되지 않은, 장애가 있는 소녀를 예우를 다해 장례를 치러준 그들이 과연 오늘날의 우리보다 야만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먼 옛날의 무덤들은 그들이 서로 나누었을 마음을 애틋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우리가 지금 잃어가고 있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떠올려보게 한다.
수만 년의 세월을 견디고 고요히 서 있는 유적에는
잊고 있던 생의 가치를 일깨우는 힘이 있다
이 책은 흔히 볼 수 있는 4대 문명 유적이나 왕가의 황금 유물 대신, 그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유적들에 집중한다. 저자는 자기 집 근처에서 발견한 신석기시대 암각화 이야기를 한다. 동심원 모양의 소박한 암각화지만, 당시 농부들은 어떤 염원을 담아 이 단단한 돌에 무늬를 새겼을 것이다. 저자는 거기서부터 동짓날 태양 빛이 무덤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어진 돌무덤, ‘신성한 땅’을 둥글게 에워싼 거석 기념물들로 이야기를 뻗어나간다.
모든 유적에서 장대한 주제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그 유적에 얽힌 어떤 사연을 읽어내거나 상상해보려 한다면, 어느 순간 그 유적을 만든 이들과 조우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수만 년 전 과거 인간들의 이야기는 결국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이어진다. 우리 발아래 층층이 쌓인 지층처럼, 인류의 역사가 층층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인류는 사납고 혹독한 세상에서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가족을 이루었고 집을 지었으며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돌보았다. 사랑하고 협력했으며 다른 종과 공존할 줄 알았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비추어 지금 이곳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인류애 상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삶의 방식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인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곱씹어 보게 된다.
저자는 우리에게 인류의 가장 오랜 흔적,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노래와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볼 것을 부드럽게 권한다. 거기엔 그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도 빛이 바래지 않은 인류의 지향점이 있다. 가족, 사랑, 집, 돌봄, 희생, 애도 같은 것들 말이다. 아마 그것을 우리는 ‘인류애’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