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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太極旗)
太極旗之陰陽基(태극기지음양기)-태극기는 음양(陰陽)을 바탕으로
四卦天地万物意(사괘천지만물의)-4괘(卦)로 천지 만물을 의미한다
互相融合和睦希(호상융합화목희)-서로 잘 어울려 화목 하라는 뜻이지만
太極旗祈切所望(태극기기절소망)-태극기가 바라는 깊은 소망만큼
国民相互不調和(국민상호불조화)-국민은 서로 조화롭지 못하고
南北東西如沙散(남북동서여사산)-남북 동서로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농월(弄月)
태극기의 홍색 청색 4괘의 의미를 국민은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가?
무더위 속에 무관심한 광복절이 지나갔다.
가로등 기둥에 걸린 태극기외 집집마다 태극기는 보기 어려웠다.
▲왜 국기가 그 나라를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을까?
하나의 깃발이 국기(國旗)로서 국가를 상징하게 된 것은 시민혁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때 사용한 “삼색기”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 속의 파랑·하양·빨강은 자유(自由)·평등(平等)·박애(博愛)를
상징하며 시민혁명을 대표하는 표상이었다고 한다.
이후 세계 곳곳에 근대국가가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기를 모방해 자국을
대표하는 국기(國旗)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태극기(太極旗)는 누가 언제 만들었을가?
태극기를 처음 누가 만들었느냐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들과 주장들이 있다.
19세기 말 열강의 군함들이 자국 국기를 게양하고 우리 영토를 침범한 후 이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국기의 필요성을 논의를 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국기 도안이나 제작 경위에 관한 공식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박영효가 만들었다는 주장
박영효의 1882년 9월 12일 부터 이듬해 1월 5일까지 외교사절로 일본에 파견될 때
기록한 일본 방문기 인 “사화기략(使和記略)”에 태극기가 고종(高宗)의 지시에
따라 제작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박영효(1861~1939)는 철종의 딸 영혜옹주와 결혼했으나 3개월도 못돼 사별했으며,
조선의 개화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1882년 9월 25일, 맑음. 새벽 4시 고베에 도착해 아침 8시에 숙소인
니시무라야(西村屋)에 여장을 풀고, 누각에 올라가 경치를 구경했음. (중략) 새로
제작한 국기를 누각에 달았음.
흰 바탕의 천을 네모나게 세로로 깃대에 걸었는데, 세로의 길이는 가로의 5분의
2를 넘지 않았음. 중앙에는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으로 메우고, 네 모서리에는
건(乾)·곤(坤)· 감(坎)·리(離)의 4괘를 그렸음.
이는 일찍이 상감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바임.”】
“일본 배를 타고 가던 중 국기 도안에 대해서 일본주재 영국영사에게 얘기하니,
각국 깃발에 대해서 잘 아는 영국인 선장과 의논해 보라고 했음. 선장은 태극과
팔괘(八卦)의 색깔은 뛰어나지만, 팔괘가 복잡하고 다른 나라에서 모방하기 불편하니 4괘만을 네 모퉁이에 그려 넣으면 좋겠다고 말했음.
선장에게 대·중·소 크기로 세 개를 만들도록 해서 작은 것을 첨부물로 보냄.
영국·미국·독일·일본 등이 우리 국기를 그려갔으므로, 우리도 세계에 홍보할 필요가
있음을 상부에 보고 바람.” (화기략(使和記略)책, 89~90페이지)
1883년 3월 6일자 승정원개수일기(承政院改修日記)에는 국기 반포에 관한 짤막한
고종(高宗)의 지시 내용이 실렸있다.
【이미 제정된 국기를 팔도사도(八道四都 : 8개 도의 관찰사와 개성·광주·수원·강화 등 4개 도시의 유수)에 널리 홍보하라.”
(<국사상의 제 문제> 제2집, 1959년, 201쪽)】
역사적인 태극기 실물과 삽화들을 근거로 다양한 추측이 제기됐다. 예컨대 박영효가 일본에 체류 중이던 1882년 10월 2일 일본 시사신보가 보도한 태극기를
원형이라고 하나, 4괘가 ‘사화기략’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혹자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1882년 11월 일본 외무성 직원이
주일영국공사에게 보낸 문서에 실린 태극기를, 혹자는 박영효를 수행했던 유길준의
문집에 실린 태극기를 제시하기도 한다.
조선왕조 고종실록(원명 高宗太皇帝實錄) 20권에는 태극기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종 20년 1월 27일 기유 1번째기사 1883년 조선 개국(開國) 492년
국기를 제정하였으므로 팔도와 사도에 행회하여 사용하도록 하다.
【二十七日 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啓:
“國旗今旣製造, 行會八道四都, 使之認驗擧行何如?”
允之。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에서 아뢰기를,
“국기(國旗)를 이미 제정하였으니 팔도(八道)와 사도(四都)에 행회(行會)하여 다 알고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은 해방되던 1945년까지 조선국기 사용을 금지
하였다. 1942년 3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처음으로 국기 이름을
“태극기(太極旗)”로 표현 하였다.
불행하게도 일제 침략 36년 동안 처절한 압박과 함께 여러 모양의 변형을 거치다가
1949년 10월 정부에서 현재 모습의 태극기를 제정하였다.
△국기보양회가 만들었다는 주장
태극기는 조선국기로 정식 반포된 여러 가지로 모형으로 변형되어 쓰이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태극과 4괘의 모형이
통일되지 않고 여러 형태로 쓰였다. 그러다가 뜻있는 인사들이 “국기보양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국기의 도식(圖式)과 규격을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1949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각계 대표 42명으로 구성된
“국기시정위원회”가 발족했다.
《대한제국 소장 국기》 《미군정 문교부가 제시한 도안》 《국기보양회가 제출한 도안》 《독립문 태극기 문양》 등의 시안을 놓고 논의했다. 최종적으로는 안재홍, 최현배, 이선근 등 12명으로 구성된 특별심사위원회가 국기보양회 도안을 결정했다.
문교부가 10월 15일 고시 제2호로 국기를 공포함으로써 태극기는 1883년 “조선국기”로선포된 지 66년 만에 단일 도안으로 통일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관 이응준이 조·미 수호통상조약때 만들었다는 주장
미국 국회도서관서 찾아낸 최초 태극기 도안
1882년 5월 태극기 제작 당시의 모습을 담은 현존 최고(最古)의 태극기 도안이
미국에서 발견됐다. 이태진(75)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미국 워싱턴 국회도서관
소장 슈펠트 문서 박스(The Papers of Robert W. Shufeldt Subject File, Box 24) 속
“한국 조약 항목(Korean Treaty Items) 1881~82”에 들어 있는 태극기 그림을
발견하고 8월 13일 본지에 공개했다.
미국 해군 제독 슈펠트(1822~1895)는 1882년 5월 조미(朝·美) 수호통상조약(한·미조약) 당시 미국 측 전권대사였다.
종이에 펜으로 그리고 채색한 가로 17㎝, 세로 8.5㎝ 크기의 이 태극기는 청색·적색
태극 무늬와 검은색 4괘(卦) 등 현재 태극기와 같은 원형을 갖추고 있지만, 태극의
형태와 괘의 좌우 위치는 차이가 있다. 그림 위에는 “코리아(Corea)”, 아래에는
“깃발(Ensign)”이란 글씨가 적혀 있다. 이 태극기는 1882년 7월 미국 해군부 항해국이 출간한 “해양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에 실린 태극기와 같은 형태로 이 태극기의 원(原)도안으로 보인다.
역관(譯官) 이응준이 제작해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열린 조·미 수호 통상조약
조인식에 성조기(星條旗)와 함께 걸렸던 조선 국기임이 확실시된다.
(이태진 명예교수)
이태진 교수는 “태극기 그림엔 작성 날짜가 없지만 이 도안이 들어 있는 항목이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이며 바로 뒤에 있는 문서는 같은 해 6월 11일 작성된
것으로 그 이전 자료가 분명하다”고 했다.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열린 조·미 수호통상조약 당시 역관 이응준이 만들어
게양했다는 조선 국기가 태극기였음이 확실해졌다”며
“이것이 최초의 태극기 모습”이라고 했고, 이태진 교수도 동의했다.
조약 당시 미국 관리가 조선 국기를 보고 그린 이 태극기 도안은 그해 9월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됐던 박영효가 그려 일본 숙소에 게양한 태극기보다 4개월 이상 앞선 것이다.
◇조·미 조약 당시 이응준이 제작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 주장
(2018.08.14. 조선일보)
▲데니 태극기로 불리는 태극기
구한말에 고종이 미국인 외교고문인 데니(O. N. Denny, 1838~1900)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다. (사진=문화재청)
감은사 주춧돌
△태극기는 제정 이후에도 태극기는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유는 태극(太極)이라는 말이 주역(周易)에 나오고 문양(紋樣)은 1070년 송(宋)나라 때 철학자 주돈이(周敦頤)이가 쓴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나오기 때문이다.
태극(太極)이나 역괘가 중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팽팽했다.
태극도설(太極圖說)보다 388년 앞선 682년 신라가 창건한 경주 감은사(感恩寺)의
주춧돌에도 태극문양(太極紋樣)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의 도안(圖案)과 문양(紋樣)의 의미
주역정의(周易正義)에서는 우주가 탄생했을 때를 혼돈(混沌)의 시기라 하였다.
이때를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서는 혼돈(混沌)의 시기를 만물(萬物)의
근본(根本)의 힘인 “원기(元氣)”의 시기로 보았다.
동양에서는 우주의 탄생 과정을 요약(要約)하면,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고 주역의 팔괘 성립에 대해 해석하고 있다.
우주의 탄생기→혼돈(混沌)의 시기→태극(太極 無極)→양의(兩儀-陰陽-天地)→4상(四象)→8괘(八卦)의 전개로 보고 있다.
여기에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을 가미하여 음(陰)과 양(陽)은 서로 보완(補完)관계임을 정의하고 있다.
“태극(太極)”이란 용어는 공자가 지었다는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상(上)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제십일장(第十一章)
是故,易有太極,是生兩儀,兩儀生四象,四象生八卦,八卦定吉凶,吉凶生大業。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고, 태극(太極)은 양의(兩儀음양)를 낳으며,
양의(兩儀음양)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을 팔괘(八卦)를 낳는다.
팔괘(八卦)가 길흉(吉凶)을 결정하며 길흉(吉凶)이 대업(大業)을 낳는다.
고 하였지만
태극문양(太極紋樣)은 필자는 보고 읽은 적이 없다.
(필자가 주역을 깊이 모르기 때문 일수도 있지만--)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의 설명은
도(圖)에서 첫째 맨 위층은 무극(無極)이며,
둘째 층은 음양(陰陽)을 품고 있는 태극(太極)으로, 검은 색은 음(陰)을, 흰색은 양(陽)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런데 현재 우리 태극기는 홍색을 양(陽) 청색을 음(陰)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팔괘(八卦)인
건(乾하늘)·태(兌못)·리(離불)·진(震우뢰)·손(巽바람)·감(坎물)·간(艮산)·곤(坤땅)등에서
건(乾하늘). 곤(坤땅). 감(坎물). 리(離불) 4괘를 따왔다.
결론적으로 태극(太極)의 홍(紅하늘) 청(靑땅)색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고
건(乾하늘). 곤(坤땅). 감(坎물). 리(離불) 역시 하늘,땅 물, 불을 의미하나
역시 4괘도 궁극적으로 하늘(陽)과 땅(陰)을 뜻한다고 본다.
태극(太極)의 궁극적(窮極的) 의미는 양(陽)속에 음(陰)이 있고 음(陰)속에 양(陽)이
있다고 주장하여 음양(陰陽)은 분리 된 것이 아니고 서로 보완(補完)관계의
조화(調和)를이룬다고 하였다.
양(陽)을 상징하는 홍색(紅色)의 머리 부분은 양(陽)의 기운이 가장 왕성(旺盛)함을 표시하고 점차 가늘어 져서 꼬리 부분에 가서는 양(陽)이 소멸(消滅)되어 음(陰)으로 변하는 모양이고,
음(陰)을 상징하는 청색(靑色)의 머리 부분은 청(靑)의 기운이 가장 왕성(旺盛)함을 표시하고 점차 가늘어 져서 꼬리 부분에 가서는 음(陰)이 소멸(消滅)되어 양(陽)으로 변하는 모양이라고 한다.
역시 4괘도 하늘과 땅을 의미하므로 음양이 서로 보완(補完)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태극기의 홍색(紅色)은 붉기 때문에 태양을 의미하는 하늘이라 할 수 있지만
청색(靑色)이 땅이라는 주역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는 홍색(紅色)은 하늘을 의미하고 땅은 황색(黃色)을 의미한다.물은 흑색(黑色)이다.
그런데 왜 땅인 음(陰)의 표시로 청색(靑色)을 사용했을까?
주돈이도 태극(太極)의 검은 색은 음(陰)을 뜻하고 흰색은 양(陽)을 뜻한다고 하였다.
한의학에서 간(肝)은 음(陰)이고 청색(靑色)이다.
심장(心臟)은 음(陰)이고 홍색(紅色)이다.
그러면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상생원리(相生原理)에 의하여
목생화(木生火)=청색은 홍색을 살리고---
이런 뜻일까?
이처럼 복잡한 의미로 만들어진 태극기 의미를 국민은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까?
태극기 가운데에 있는 태극문양은 조화로운 우주(宇宙)를 뜻한다.
네 곳 모서리에 있는 4괘는 하늘과 땅, 물과 불의 천지만물을 상징한다.
이정도의 의미도 주역과 음양오행의 기본을 알아야 말할 수 있다.
지난 광복절(8월15일) 마침 필자 손녀 생일에 아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태극기가 어떤 의미 인가?”를 물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태극기의 의미를 알려면 주역(周易)과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우리 국민 중에 몇 사람이나 될까?
필자는 간혹 지탄(指彈) 받을 망상(妄想)을 할 때가 있다.
태극기의 태극(太極→陰陽→하늘땅→남여)은 우리 국민은 조화(調和)를 바라지만
절대로 합쳐질 수 없고 융화(融化)될 수 없는 성격들이다.
태극(太極)인 양(陽하늘)과 음(陰땅)은 절대로 합쳐질 수 없다.
4괘인 건곤감리(乾坤坎離) 하늘과 땅, 물과 불은 절대로 합쳐질 수 없다.
이것이 태극기의 본질이다.
태극(太極)의 음양처럼 남(南)과 북(北)이 갈려져 있다.
4괘의 건곤감리(乾坤坎離)처럼 동서(東西)로 갈등하고
좌파(左派)와 우파(右派)의 낡은 이데올로기로 분열되어 있다.
이제는 국경일이나 “국가가 있음을 상징하는 날”에 태극기를 달지 않는 무관심을
넘어, 정권을 타도하는 태극기 집회는 “정의를 앞세운다”는 뜻에서 이해 할 수 있지만
태극기를 불태우고 밟고 찢는 것을 볼 때
“태극기의 의미” 만큼이나 복잡한 국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