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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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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대연캠퍼스의 워커하우스. 부경대 제공 |
- 6·25때 美 8군 사령관 워커 장군 임전무퇴로 방어선 사수 부산 지켜
- 지휘소로 사용된 건물, 워커하우스로 오롯이
- 1975년 베트남 난민들, 부산시민들이 껴안아
- 참전·의료 등 지원해 준 국제사회 도움 되갚아
- 서면 롯데百 왼편의 스웨덴 참전기념비, 대부분 있는지도 몰라
- 취객들 노상방뇨 등 수난 계속돼 안타까움
부산은 전쟁과 평화의 기억이 공존하는 도시다. 6·25전쟁 당시 전투는 없었지만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내 한복판인 부산진구 부전동 서면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인근 '스웨덴 참전기념비'에서부터 남구 부경대 대연캠퍼스 내 미8군 사령부 지휘소 '워커하우스'(일명 돌집)까지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 많다. 유엔기념공원은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 묘지이다.
■Stand or die(버티든지, 죽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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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대연동 대연오거리에 높이 12.05m의 '유엔 기념탑'이 있다. 이 탑은 1975년 건립됐다. 6·25전쟁 때 전투병을 파병한 16개국을 상징하는 기둥과 국기 및 총을 든 군인들 위로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의가 올려져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부경대 대연캠퍼스(옛 부산수산대) 종합강의동 동편 소나무 밭에 돌집이 한 채 있다. 면적 365㎡에 콘크리트 1층 건물이다. 지붕이 나지막하고 돌이 박힌 벽체는 70㎝로 '지상 벙커'그 자체이다. 이곳은 6·25전쟁 중 북한군에 밀려 낙동강방어선이 붕괴될 뻔한 가장 위태로운 시기, 1950년 9월 6일부터 18일간 미8군 사령부 지휘소로 사용됐던 '워커하우스'다. 학생들은 '돌집'이라고 부른다. 부경대 이승영 사학과 명예교수는 "미8군 사령부 지휘소를 대구에서 부산수산대로 옮긴 이유는 통신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통신 장비가 파괴되면 극동지역에서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신임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Stand or die(버티든지, 아니면 죽든지)'라는 첫 작전명령을 내렸다. 이 같은 필사의 각오가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린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냈다. 덕분에 1950년 9월 15일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연합군의 인천상륙 작전이 가능했다. 워커 장군의 각오는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에서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며 전사한 송상현 동래부사의 마음가짐과 비슷하다.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 24일 6·25전쟁에 함께 참전한 아들 샘 심스(당시 25세) 대위에게 은성무공훈장을 직접 달아주기 위해 식장으로 가는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서울 워커힐호텔도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붙어졌다.
1995년 당시 장선덕 총장은 1990년 화재로 지붕이 내려앉은 돌집을 복구해 워커 장군 기념관으로 꾸밀 계획이었지만 반미를 외치던 학생의 반발로 무산됐다. 부경대는 남구청이 추진하는 국제평화특구조성사업과 연계해 워커하우스를 워커 장군 기념관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취객만 찾는 스웨덴 참전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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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진구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인근의 스웨덴 참전기념비. 박수현 기자· |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정문 왼편 스웨덴 참전기념비는 6·25전쟁 때 스웨덴 야전병원이 있던 곳이다. 옛 부산상고(개성고)가 있었던 자리로 현재는 롯데백화점과 호텔이 들어서 있다.
국제신문 취재팀이 최근 스웨덴 참전기념비를 둘러본 결과, 기념비 주위에는 취객들이 노상방뇨하거나 구토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다. 참전비 위로는 커다란 지구본에 롯데백화점 캐릭터 '로티'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기념비를 짓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수많은 쇼핑객과 관광객이 롯데백화점·면세점·호텔을 이용하고 있지만 코 앞에 있는 스웨덴 참전기념비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 기념비가 있는지조자 모르는 부산 시민이 대부분이다. 영도구 태종대공원 입구 의료지원단(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참전기념비와 서구 암남공원 순환로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기념비(거북바위)의 존재를 아는 부산 시민도 그리 많지 않다.
■베트남 보트피플 껴안은 부산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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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 장군 |
진흙 속에 연꽃이 피듯 전란 속에 인류애가 자라났다. 독일은 6·25전쟁이 끝난 이듬해 1954년 5월 17일 부산 시민의 건강을 보살펴 주기 위해 서구 서대신동 부산여고 건물을 빌려 서독적십자병원을 개원했다. 서독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은 1958년 12월 31일 독일로 돌아가기까지 4년 7개월 동안 27만여 명을 진료하며 부산의 의학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 서독적십자병원이 철수한지 40년 가까이 지나고나서야 1997년 10월 24일 부산도시철도 1호선 동대신동역 인근에 '독일적십자병원터' 표지석이 세워졌다.
부산 시민들은 월맹에 패망해 나라를 잃은 월남(베트남) 난민의 슬픔을 달래주고 희망을 일굴 수 있도록 도왔다. 독일적십자병원이 있던 자리에 월남난민수용소를 설치한 것이다. 부산여고는 1975년 초 사하구 하단동으로 이전했다.
이들 베트남 난민 1557명은 1975년 5, 6월 두 차례 우리 해군 십자성함과 쌍용호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들 난민은 1년 4, 5개월간 부산 시민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뒤 1976년 10월 본인 의사에 따라 미국 캐나다 프랑스 대만 등지로 망명해 새 삶을 찾았다. 부산 시민들은 6·25전쟁 때 받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베트남 보트피플'에게 되갚은 셈이다.
# 우리가 잘 모르는 유엔기념공원 이야기
- 위트컴 장군…안치된 미군 유해 32기 중 유일한 장군
- 도은트 수로…희생 유엔군인 중 최연소 병사 이름 따
- 관리는 누가…11개국으로 구성 국제관리위원회 담당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은 6·25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16개 전투지원국과 5개 의료지원국 장병이 잠든 곳이다. 현재 11개국 2300명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해마다 백발의 노인이 된 참전 용사와 그 후손들이 찾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국가원수나 장관들이 찾는 필수 코스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몇년 전 이곳을 참배하고 인근 이기대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극찬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인, 부산 시민은 유엔기념공원의 의미를 잘 모른다. 유엔기념공원에 관해 우리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모아봤다.
■위트컴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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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미군 유해 32기 중 유일한 장군이 있다. 리차드 위트컴(준장·사진)부산 미군군수기지사령관은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 때 군법을 어기고 군수물자를 이재민에게 나눠줘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갔다. 그는 청문회에서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해 의원들의 기립박수와 함께 많은 구호금까지 받고서 부산으로 돌아왔다(본지 지난해 6월 11일 자 1면 등 보도). 위트컴 장군의 은혜를 입은 부산 시민들은 공덕비를 세웠다. 안타깝게도 현재 공덕비 사진만 남아있을 뿐 비석의 존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위트컴 장군은 퇴역 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인 한묘숙(여·87·서울 한남동) 씨와 결혼해 전쟁 고아를 돕는 일을 하다가 1982년 7월 한국에서 숨졌다.
■도은트 수로
2007년 유엔기념공원의 묘역과 녹지 사이에 너비 0.7m, 길이 110m의 조그만 수로가 생겼다. 이름은 '도은트 수로'. 수로는 죽음(묘역)과 삶(녹지)의 경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은트는 6·25전쟁 때 전사한 유엔 참전군인 중 가장 어린 호주 병사다. 그는 형을 대신해 입대했으나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관리주체는 유엔
대한민국 정부는 1951년 유엔묘지를 조성했고 국회는 1955년 11월 유엔에 영구 기증했다. 1974년부터 대한민국을 포함해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남아공 터키 영국 미국 등 이곳에 전사자가 안치된 11개국으로 이루어진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유엔기념공원의 관리를 맡고 있다. 매년 10월 24일 '유엔의 날'을 전후해 11개국의 주한대사들이 참석하는 정기총회가 열린다. 국제관리위원회 의장국과 의장은 위원국별 알파벳 순으로 정해지고 재임 기간은 11월 1일부터 다음 해 10월 31일까지다. 현재 의장국은 대한민국이며, 의장은 김봉현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조정관이다. 관리처장은 이광재 전 루마니아 대사가 맡고 있다.
국제신문·대안사회를 위한 일상생활연구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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