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6월 4일. 뉴스에는 37세의 한국계 입양아였던 한 여성이 친자 소송을 하여 부모를 찾았지만 거부당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친자 확인 소송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은 여성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부모로 확인되는 현재 85세의 부모는 만남을 거절한 상태에서 입양아였던 여성은 친자 소송을 법원에 제기한 상태이다.
현재 부모로 추정되는 사람은 강남에 거주 중인 사실이 확인 됐지만 85세의 고령으로서 잊고 싶었거나 지난날들을 다시금 떠올리기가 거북했거나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거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부모라는 사람은 만나기를 꺼려하는데 친자 소송을 제기하면서 까지 만나고 싶은 이유기 궁금해진다 이미 만나주지 않는 비정한 부모였다.라는 사실 확인을 했으면서도 왜 도대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는 걸까.
만약 부모라는 사람이 현재 강남이 아닌 어느 판자 촌에서 어렵게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면 그래도 친자 소송을 하였을까.라는 궁금증이 남는 대목이다. 여성은 자신이 버려진 날로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가슴 아픈 말들을 하면서 거기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모든 입양아가 그렇듯 여러 가지 사유로 버려진 날들로부터 고난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라면 뿌리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너무나 인간 적이지 않는 휴머니즘( humanism)에 모두의 가슴으로 날아드는 이율배반적인 칼끝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동안 전세계 입양아들이 보여 주었던 너무나 인간적인 순수함을 간직했던 휴머니즘이었다면 이번 입양인의 경우는 우리가 현재 이웃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살아가고 있는 리얼리즘( realism)의 한 단면을 또 보여주는 것도 같아 인간만이 지니고 있다는 내면의 절대적 순수함도 세월의 이기 앞에 잃어버린 것만 같아 아쉬움이 정말 많이도 남는 것 같다.
얼마전 한국의 독보적 트로트 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중견가수 진성이 어느 토크쇼에 출연하여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모든 시청자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는 계속해서 차라리 자신을 보육원에 보내졌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회상하는 진성이 당시에 얼마나 처절하고 힘들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비정한 부모는 옛날이나 지금도 마찬 가지로 얼마 전 뉴스에 나오는 어느 부모는 아이를 처음에는 큰 가방 안에 가두었다가 두 번째는 좀 더 작은 가방에 옮겨놓고 훈육을 하다가 아이가 가방 안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왜. 도대체 왜.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
모든 어휘를 총동원해도 어떻게 감히 설명 할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데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아니고서야 따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간과 해서는 안될 것이 또. 있다. 입양아로 보내져 그동안 고생 했다며 보상을 받으려는 뿌리녀와 차라리 보육원에 버려졌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뿌리녀 와는 또 다른 진성의 그때의 그런 생각과 마음들도. 스스로 인간 이기를 거부하고 가치관을 상실한 채 자식을 가방에 넣어 죽게 한 비정한 부모도. 사이코 패스가 되는 것도. 모두는 환경적 요인에 의한 사회적 현상 일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도 다양하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사회적 공감대를 갖고 이런 문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밝고 건전한 사회가 형성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국민이 평등하고 공정과 공평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하겠다.
그렇다 무엇 보다도 정부가 올바른 역사 인식과 더불어 편중되지 않는 보편적 삶의 정책과 참 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도 덧붙이고 싶다 모든 책임은 모두에게 있고 결국 국가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한국이 분단의 역사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독재 국가들에 싸여 있지만 70년 동안 모든 것을 극복하고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세계의 10대 부국으로 성장을 했다
역사에서도 증빙하듯 불안정한 시대적 상황을 만들곤 하는 숙명의 그늘에는 늘 무능한 성군이 등장하곤 했습니다만 지금의 시대적 상황은 그 옛날 사색당파 싸움으로 해가 저무는지 몰랐던 시절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시대인 만큼 문정권의 후유증을 빨리 극복하고 국민의 정부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Dust In The Wind - Kansas (바람속의 먼지- 캔사스)
Dust In The Wind
미국의 대표적인 심포니 록 그룹인 캔사스는 1970년대 초반 고등학교 동창생들로 구성되어
캔사스출신의 6인조 락그룹으로 캔사스에서 결성되었는데
이들은 처음부터 쾌조를 보여 첫 앨범이 골드를 기록하였다.
1975년 발표한 2집 앨범 <Song for America>에서도 동명의 싱글을 히트시킨 이들은
4집 <Leftoverture>에서 커트된 싱글<Carry on wayward Son>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는데
이 곡은 1977년에 발표한 <Point of know return>에 수록된 곡으로
1960년대 반전운동을 펼치며 평화와 자유를 주장한 미국 젊은이들에 대한 향수와
거대한 현실 앞에서 무력한 자신들의 모습을
흩날리는 먼지에 비유하여 노래하는 내용이다.
미국 캔사스 주의 토페카 웨스트 하이스쿨 동창생들로 구성된 캔사스는 1971년
멤버-로비 스테인하르트(Robby Steingardt : 바이올린, 보컬)
스티브 윌쉬(Steve Walsh : 키보드, 보컬
케리 리브그랜(Kerry Livgren : 기타)
리치 윌리엄스(Rich Williams : 기타)
데이브 호프(Dave Hope : 베이스)
필 에하트(Phil Ehart : 드럼)의 6인조로 출발하였다.
이들은 그후 클럽을 전전하다가 그룹 도어스(The Doors)의 리더인
짐 모리슨(Jim Morrison)의 마지막 공연장이었던 뉴올리언즈에서
오프닝 밴드로 출연하여 공식 데뷔 하였는데
이때 CBS레코드 계열의 거목 돈 커쉬너에게 발탁되어
커쉬너 레이블과 계약, 1974년 3월 데뷔 앨범 <Kansas>를 발표하면서
거기에 수록된 대 'Incomudro-Humn To The Atman' 이 극적 구성과
드럼의 스테레오 분리 등으로 화제를 모으며 골드를 획득하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데뷔 앨범으로 골드 LP를 기록한 이들은
이듬해 1975년 2월에 두번째 앨범인 'Song For America'를 내놓아
전미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환영을 받았고
동년 10월 세번째 앨범 'Masque'를 내놓아
당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그룹인 Yes나 Genesis와 유사한 스타일로 호평을 받는 동시에
나름대로 예술성을 가미하고 기본적인 하르록 사운드를 잃지 않아
계속적인 골드를 획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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