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 쌍쌍바는 누구를 기다렸을까 외 1편
김외숙
방 한가운데 세워진
일인용 분홍텐트
그녀만의 겨울왕국이었다
에어매트는 한껏 부풀어
첫 입주자의 두근거렸던 심장처럼 팽팽했다
그녀는 마음을 다독이는 몇 권의 책과
빨갛게 밑줄 그어진 문장 속에 걸터앉곤 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처참하게 그려진 토사물과
술병 속에 떨어진 별과 함께
짧았던
왕국은 검푸른 얼룩을 남기고 녹아버렸다
파란 폴리프로필렌 박스 몇 개가
카메라처럼 벽에 기대서서
그녀의 마지막을 찍고 있었을 것이다
텐트 속으로
눈치 없는 불빛이 불쑥 들어와
길게 드러눕는다
산딸나무
산딸나무에 까치가 앉아있다
어디로 갈까
세상의 집들도 잠시 흔들린다
무성했던 잎들의 입
소문처럼 순식간에 흩어지고
가려져 보이지 않던 시간이 드러난다
사방 풀어헤쳐지던 한 여름 밤
그늘 속으로 모여 들던 소리들
밤늦도록 쏟아내던 사내의 거친 욕지기 같은
그 어떤 밤도 잊을 수 없다
빈집은
마지막 한 입조차
사라져야
말문을 닫게 되지
말끔하게 비워낸
나무의 알몸
반쯤 부러진 햇살은
내 손가락을 따라다니며 희롱을 한다
김외숙; 2021년 애지로 등단
카페 게시글
애지의시인들
우리 젊은 시인들: 냉장고 속 쌍쌍바는 누구를 기다렸을까 외 1편
애지사랑
추천 0
조회 39
22.02.14 08:45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