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
하만으로 본 죄 2 (에 3:7-11)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10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이 시간에도 "하만으로 본 죄" 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하만은 아알렉 족속의 왕인 아각의 후예로 죄의 상징입니다. 죄의 불도 뜨겁다. 믿음을 대적하고, 겉과 속이 다르고, 멸절시켜야 하고, 약해지거나 조금만 틈만 있으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죄란 무엇일까요?
6. 죄란 예수 밖에서는 그 권세가 아주 큽니다.
예수 안에서 죄는 죽어 꼼짝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밖 인간 안에서는 그 권세란 끝이 없습니다. 에3:1에 “그 후에 아하수에로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이처럼 하만의 권세가 커진 것은 가장 큰 권력자 아하수에로 왕이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었으니 파사의 127도를 다스리는 총리입니다. “높이 올려”한 걸 보면 낮은 위치였는데 무슨 일로 갑자기 높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권세가 얼마나 크냐하면 수십만의 한 민족을 간단한 결재 하나로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했습니다.
10-11절을 보면 어느 민족이냐고도 물어보지도 않고 왕이 반지를 빼서 하만에게 주고 네 소견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하만에게 엎드리어 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만은 왕의 호출 없이도 왕 앞에 나갈 수 있는 왕후도 왕자도 갖지 못한 특권을 가졌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죄인의 모습입니다. 죄인은 죄악을 결재 없이 바로 통과시킵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럴 수가 없는데 믿음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없어도 양심이라도 있으면 그럴 수가 없는데 죄인의 양심이란 무딜 대로 무뎌져 있어 여과 및 축소하지 못합니다.
엡4:17-19에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천성의 문이 한 진주문이듯 마음의 문도 한 진주문으로 되어야 합니다. “한 진주”란 그만큼 크게 자랐음을 암시합니다. 진주가 고통 속에서 자라듯 마음에서 죄를 통과한 결과, 죄악이 주는 고통, 양심이 주는 고통,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고통 등 그 고통을 당하면서 지혜로워져서 죄를 통과시키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통 속에서 형성되는 마음의 진주문입니다.
아하수에로가 하만의 지위를 높인 이유에 대해서 1절에는 나오지 않지만 3:9을 참고하면 그와 비슷한 예일 것으로 추론됩니다. 왕이 로보트가 된 이유가 에3:9에 하만이 가져온 “은 일만 달란트” 뇌물 때문입니다. “은”은 팔고 사는 기능으로 마음을 사고 파는 의미라면, 1만 달란트는 수의 개념으로 볼 때 1000이 충만수인데 10배의 10.000이니 압도적인 의미입니다.
무게로 따져도 1만 달란트가 340.000kg이니까 340톤으로 당시 파사가 주변 속국과 백성들에게 거둬들인 총 수입의 65%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 금액을 받고 왕은 하만의 능력과 충성심에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만만 있으면 우리나라도 잘 살겠구나.’ 착각한 것입니다.
이처럼 죄의 힘도 뛰어납니다. 이처럼 죄란 호소력 미혹력 상상력 이 뛰어나 마음을 마음대로 사고팝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 것에 마음이 팔리고 물질 체면 명예 영혼 그 무엇까지 다 팔리면서도 죄의 길로 달려갑니다. 이것이 바로 666표를 받은 자에게 있는 현상입니다.
반면 성령의 인 맞은 사람은 믿음 때문에 세속적인 것을 마음으로라도 매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666표를 받아 세속화가 되면 전혀 그런 통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째 날에 짐승과 사람을 만들고 세상을 만드심과 같이 666은 본능적이고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죄를 상징하는 수입니다. 이 표를 인격의 상징인 이마에 맞고 행위의 상징인 오른 손에 맞는다는 것은 인격과 행위가 부패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666은 사탄이 주도하는 세속화 운동으로 '땅에서 올라온 짐승'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 즉 세상과 육신이 손을 잡고 만드는 세상따라 살아가는 육신적인 인격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예수 밖에서 죄는 우리 인격의 문을 열어젖힐 만큼 권세가 큽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성령의 인을 맞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할수록 죄의 힘은 약하지기 때문입니다.
7. 믿음 없는 것이 죄입니다.
에3:2-4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함께 성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나쁜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모르드개가 그들에게 유다인임을 고한 것은 유다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아말렉에게 절할 수 없으니 이해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해해 달라고 도움을 구했으나 동료인 그들은 도리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습니다. 여기 "어찌 되나 보고자" 란 알고싶어서라기보다 ‘미워서’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믿음도 없고 사랑도 없고 이해심도 동료의식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이럴 수가 없습니다. 사회생활할 때 주일성수도 허락하고 술자리도 빼주고 이런 신앙적 배려를 해주면 눈물나게 감사한데, 여기는 눈만 감아줘도 되는 일 아닙니까? ‘신앙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이런 이해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5-6절에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이처럼 믿음이 없는 것이 죄입니다. 요16:9에도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그랬습니다. 가장 큰 죄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살인자도 간음자도 도적도 예수 믿으면 천국 가지만 착하고 도덕적으로 문제 없어도 믿지 않으면 지옥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좌우편에 달린 강도처럼 둘 다 죄인이었지만 주님을 믿은 사람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부자가 음부에 떨어진 것도 믿지 않아서입니다. 성철 스님이 양심적으로 살고 불교의 잘못된 것을 뒤집어 엎을 만큼 정직했지만 자기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믿음 없는 말도 가장 악한 죄입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어 얼마나 자신과 남을 절망의 구렁에 빠뜨립니까? 눅17:1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말씀하시니까 5절에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부르짖었습니다.
8. 성령을 거스르는 것이 죄입니다.
화가 난 하만이 제비를 뽑아 12월을 얻어 모르드개와 유대인을 죽일 거사 일을 정하고 왕의 재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8-12절에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그러나 하만의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사실에다 거짓말을 섞으니 이처럼 파괴력 있는 말이 되었습니다. 악한 언론인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유다인이 하만에게만 절하지 않았지 파사의 법을 거역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진짜 충돌은 하만 자기와의 충돌이지 다른 충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도 그 법률이 아멜렉과 다른 것일 뿐 파사에서 무리 없이 살아왔습니다. 하만이 왕의 재가를 얻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 중요한 원리가 나타납니다.
이처럼 성령의 법과 충돌하는 것이 죄의 법입니다. 죄는 성령과 대립합니다. 갈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고, 엡4:30에도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갈5:9-20에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했습니다.
반면 갈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갈5:16에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했듯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성령을 사모하지 않는 것도 반성령적인 행동입니다. 렘2:19에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하나님을 경외하면 성령이 임하시는데 경외하지 않거나 사모하지 않다면 성령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듯 죄는 영혼을 지옥에까지 떨어뜨리는 원수 중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죄가 두렵습니다. 죄를 버리면 형통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알고 죄 두려운 줄 알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을 더 열심히 경외함으로 변화 받아 온전히 죄를 이기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