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세상에 둔 소망을 끊으시니
육적으로는 괴로우나
주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인 것을 믿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시는 주님의 조치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님을 섭섭하게 해 드린 말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의 부정성을 부추기는 비존재세력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믿사오니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본문 주해)
14~15절 : 바울 사도가 천지를 지으시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서 이름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16~19절 : 첫째 기도의 내용은 에베소 교인들의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이다.(16절)
속사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된 사람들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 즉 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으로서 그 마음이 강건하여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속사람의 강건함은 겉 사람이 추구하는 땅에 있는 것들에 대하여 책망을 하면서 나타난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책망하시면 성도 속에 있는 것들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이 드러날수록 자신의 죄인 됨을 알고 주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이 강건하여지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이다.(17a절)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지 않고 밖에 계시다면, 이것은 종교로 흐르는 것이다. 모든 종교란 자신보다 능력이 많은 신에게 정성을 바쳐서 자신이 원하는 힘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오시면 사귐이 일어나는데 그 사귐 자체가 기쁨이 되는 것이다.
셋째,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길 기도한다.(17b절)
세상에 뿌리내린 것이 잘려지고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통하여 성도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지는 것이다.
터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므로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그 터가 견고하여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집이기에 그 터가 영원하고 견고하다는 말씀이다.
넷째,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이다.(18~19절)
지식에 넘친다는 말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사랑을 말한다. 인간의 지식이란 선악과 이후의 지식이기에 어떤 사랑을 말하여도 자신이 신 되고자 한 그 선악과의 지식이 들어있는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세상의 수많은 사랑이라는 것은 다 자기를 위한 사랑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나타난 사랑은 이런 세상의 지식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랑 저런 사랑이 다 가짜임을 드러내면서 사랑은 여기에 있다고 하신 것이 바로 우리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 아들을 이 세상에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인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19절, 공동번역)
19절의 ‘충만함’이란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성도 안에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곧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하시고자 하시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의 충만함이란 인간이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사랑을 해체시키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 넣으시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20~21절 :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새번역)
이 부분은 송영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20절)이란 이 땅의 썩어질 것들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리킨다.
(나의 묵상)
바울 사도의 기도를 통해 내가 주님께 구할 것과 또 지체들을 위해 중보할 내용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구하는 것이 항상 땅의 것이 될 수밖에 없고, 자연상태로는 스스로 위의 것을 절대 구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모태 신앙을 자랑하는 어떤 사람을 안다. 그는 지금 자신이 꼭 이루고 싶은 것을 기도하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듣기로는 그의 소원이라는 것이 정말 땅에 철썩 붙은 마음인데 그 마음을 표현하기를 ‘나는 정말 하나님밖에 믿을 분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과는 교제도 없는데, 단지 자신의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믿음이 어느 정도는 된다고 착각하는 모습이었다.
너무도 들뜬 어조로 비장한 결심을 하는 모습인지라, 찬물을 끼얹을 수가 없어 그냥 듣고만 있었다. 주님께서 이 인생을 긍휼히 여겨주시기만을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언젠가는 우리들이 주님께 무엇을 구할 것인가에 대해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기도하였다.
복음을 듣고 알게 된 직후에 참 당황스러운 일이 내게 벌어졌다.
그것은 갑자기 기도할 내용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때까지 구한 것들이 다 땅의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개인적으로 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교회 사역도, 선교하는 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자기의와 욕심이 깔려 있었으니.....주님께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
기도할 것이 없어진 이상한 크리스찬이 된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자 지금까지 기도하던 내용을 뒤집어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즉 세상 것을 간절히 구했던 그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기도였다.
구한 것이 많으니 십자가에 못 박을 내용도 많다.
거기다 말씀을 통하여 옛 사람의 본성과 부정성이 가득한 내 모습을 매일 보게 되니 그것을 주님께 아뢰고 보혈을 구하는 기도 시간이 늘어난다. 그 기도는 정말 순간마다 이어지는 기도이다.
그리고 지체들을 위한 중보기도도 (그들을 위해 육적인 필요를 간구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의 영혼을 위해 하는 기도가 더 많아졌다.
기도의 시간을 회복시켜 주신 성령님께 감사를 드린다.
오늘 바울 사도가 기도한 내용이 내게도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바울 사도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의 마음에서 떠나시지 않고 주인이 되시고, 성도들 안에 사랑이 충만해질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더 넘치도록 역사하실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한 기도이다.
내가 거듭난 자로서 내 마음이 온전히 십자가에 연합되기를 바란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고,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집을 지은 자로서, 상황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길 소원한다. 그러한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난다 하였으니,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충만하여져서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복음을 몰랐을 때 내가 주님께 간구했던 기도 제목들은 저 멀리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죄의 세력은 그것들을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다듬어 부지런히 내 눈앞에 가져다 둔다. 그러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부추기고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탐하는 마음이 부글거리기도 한다.
또 수없이 많은 상황적 어려움이 생기고 그로 인해 내 안에 분심이 일기도 한다. 그것들은 나를 실망과 낙심의 자리로 밀어넣는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끈질기게 잡았던 믿었던 것들, 세상의 소망을 끊어버리시고 주님만 바라게 하시는 주님의 작업임을 생각한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한다. 그분이 십자가로 나를 인도하여 잠잠히 순종하게 하시는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통하여 나의 속사람을 강건해지고,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게도 충만하게 하실 주님을 점점 더 기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쭈뼛거릴 것이 없다.
내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나의 주님을 기대한다.
(묵상 기도)
주님,
전에는 바울 사도의 이런 기도 내용에 시큰둥했습니다.
속사람, 주님의 주인 되심, 십자가 사랑.....
이런 것들 말고 현실적으로 내 마음에 만족을 주는 것들 좀 주시지....했습니다.
이제는 바울 사도의 기도가 저에게 이루어지고
저 또한 그와 같은 기도로 중보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또 원합니다.
참으로,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시는 주님을 경험하고 또 알아가며
이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또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령님의 일하심을 기뻐하며
더욱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