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의 류기윤님께서 주장하신, KTX 영등포 통과가 오히려 지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가설에 대해 흥미를 느껴서, 이에 맞춰 영등포역 정차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안을 하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지할 점은, 이 포스트는 KTX 영등포 정차와 관련하여 분란을 일으키기 위해 쓴 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이야기, 이를테면 '광명역 따위' '철도대란' '당장 영등포 세워라' '닥치고 자동 개집표기부터' '세금이 아깝다' 수준의 담론은 사절합니다. 또한 저는 기본적으로 영등포 정차를 반대하고 있으며, 이 대안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직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중에도 전개할 이야기지만, 영등포역과 광명역의 존재는 서로의 영역을 빼어먹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영등포역 가지고 싸우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을지는 몰라도, 여기에 광명역 건까지 끼어드는 건 정말 사절합니다.
1. KTX의 영등포역 통과로 인하여 지연이 가중된다?
분명 얼마 전까지 영등포역에 KTX를 세우면 지연이 늘어날 것이라는 데 특별한 이론이 없었던 듯한데, 최근에 영등포역 통과가 오히려 지연을 부추긴다는 주장이 일부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주장을 먼저 검증하고 가려 합니다.
영등포역에 운행하는 여객열차는 하루 (11월 20일) 334편입니다. (물론 출처는 로지스) 이를 속성별로 보면:
하행 통과(KTX) 81편, 정차(새마을, 무궁화) 86편
상행 - 하행과 같음 (따라서 통과 162, 정차 172)
이는 다른 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많은 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할 수 있는 대전(231편) 동대구(269편) 밀양(195편)에 비해 훨씬 많으며, 한국 내에서 가장 많은 열차가 지나가는 역으로 의심할 바 없습니다. (실제로는 용산역 종착 열차가 서울역을 지나 수색에 다녀오긴 합니다만)
여기서 해당 주장을 검증하기 위한 한 가지 가설을 세웠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영등포역 KTX 통과로 인해 일반 열차의 지연이 가중될 경우, 하행에 비해 상행의 지연이 더 클 것이다.' 이 가설의 논리적 근거는 타 선구의 지연 발생 가능성이 상/하행선이 같을 경우, 시종착역인 서울/용산에 가까운 영등포에서는 하행 열차의 경우 비교적 다이어그램이 엉킬 가능성이 적으므로 KTX의 영등포 통과에 따른 지연 기여가 적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KTX 통과와 일반열차 정차에 따른 소요시간 차이를 염두에 두고 출발 시간을 정할 것이며, 실제로 11월 20일 영등포에서 KTX에 추월당하는 일반열차는 상행이 17회인데 비해 하행은 2회임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상행은 복합열차 병합에 따른 추가지연 요인이 있을 수 있으나 하루 3왕복에 불과하므로 이는 무시해도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따라 11월 20일의 여객열차 자료를 계산해 본 결과는 다소간 의외였습니다. 일반열차 중 (영등포역 정차 시각 기준으로) KTX 운행시간 중에 운행하는 상행 72개 열차의 총 지연시간은 244분이었는데, 이는 같은 기준의 하행 82개 열차의 343분에 비해 작은 수치라는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KTX 81왕복의 총 지연은 하행 160분, 상행 117분)
11월 20일 하루의 자료만을 근거로 보았기에 아직 충분한 확증은 얻을 수 없으나, 이로 볼 때 일반 열차의 지연 발생에 KTX의 통과가 미치는 영향은 별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덧붙여 영등포역의 통상 정차를 1분 30초 선으로 보고, 3분 이상 정차하는 경우가 하루에 하행 2회, 상행 19회가 나타나는데, 상행 19회 중 KTX 통과에 따른 대기는 12회로 나머지 6회가 (아마도 하차객 과다로 인한) 영등포역 자체 요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1회는 새마을의 무궁화 추월) 만약 영등포역에 일부 KTX가 서고 이에 따라 열차당 400명선의 승하차가 발생할 경우 의외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2. 광명역의 승객은 어디에서 왔나
광명역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해 놓고 광명역 건을 꺼내는 이유는, KTX 개통 이후 영등포역 이용객 층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데이터 중에 광명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2004년 4~12월 9개월간 광명역에서 끈 승객은 KTX 단종으로만 161만명으로, 전체 KTX 이용객 1900만명선의 8%에 해당합니다. 해당 기간 서울역의 KTX 이용객이 1220만, 용산역이 251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만만찮은 수치이고, 근래에는 이 2배에 가깝다고도 합니다.
해당 기간 영등포역 실적의 변화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총 이용객 1401만 -> 1209만 (-13.7%)
새마을 251만 -> 229만 (-8.7%)
무궁화 1087만 -> 976만 (-10.3%)
지역별 (영등포발)
대전 105만 -> 72만 (-31.2%)
동대구 63만 -> 34만 (-44.9%)
부산 69만 -> 28만 (-60.0%)
익산 22만 -> 16만 (-25.2%)
광주 및 송정리 26만 -> 16만 (-38.5%)
(말은 이리 썼지만, 9개월만 쳐서 이제 영등포에서 대구, 부산 가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해당 기간 서울/용산발 수송실적 증가는 동대구의 경우 2배가 넘었고 심지어 광주, 목포조차 40% 가까이 늘었습니다.)
우선 이용대상 열차가 줄어들었음에도 이용객 수는 그다지 줄지 않은 점을 볼 수 있으며, 또한 그 중에서도 통근에서 무궁화, 무궁화에서 새마을로의 이전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는 KTX 개통 이후 통근이 사라지고 새마을과 무궁화가 사실상 한단계씩 격하된 점 탓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예전부터 영등포역의 이용권은 북으로는 한강, 동으로는 현충원이라는 '자연적 경계'로 한정되어 왔습니다. 호남선의 시종착이 용산으로 이전되었다고 해도 그 차이는 크게 나타나지 않으며, 다만 상위 열차인 KTX를 서울/용산에서 독점함에 따라 영등포역 상위 열차 이용자 중 일부가 서울/용산으로 빨려갔으며, 그 수는 위에서 언급된 변화, 총 120만명 (연간으로 할 경우 160만명) 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중에서 광명으로 이전된 수가 어느 정도인가인데, 기간중 광명발 이용객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전 15만, 동대구 25만, 부산 23만, 익산 2.3만, 광주 및 송정리 3.4만
(서울/용산발 실적 증대는 각 59만, 142만, 125만, 11만, 27만)
기간중 경기남부의 수요를 대표하는 수원역과 안양역의 이용객이 각각 보합, 그리고 17만에서 33만으로 급증한 점을 두고 볼 때 i)영등포역의 무궁화호 수요 감소 중 (호남/장항선 위주) 15만은 안양역으로 이전하였다 ii)광명역 수요의 30% 정도 (영등포역 감소 200만 중 1/5 수준) 는 영등포역에서 직접 이전된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정도는 수요층이 넓어지고 있는 광명역에서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역이 없던 곳에 광명역이 생긴지라 그 새로운 비교우위는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KTX 이용객은 1900만명선으로, 이 중 순수한 수요 창출은 위에서 언급된 서울/용산/광명발 실적 증대에서 영등포 감소를 합한 900~1000만명 정도로 봅니다. (나머지는 새마을에서의 이전 등) 이를 그대로 대입할 경우 영등포역은 KTX 승객을 서울/용산에서 150만명, 광명에서 20만명 정도 끌어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상위열차 수요기반이 낮은 영등포의 열차를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아마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듯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무궁화에서 상위 이전되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서울역의 새마을 수요가 빠르게 KTX로 이전된 데 비해 영등포의 새마을 수요는 90% 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타 지역으로 가 KTX를 타지 않고 새마을에 머무르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3. 다 그렇다 치고, 영등포역에 차를 세워 보자면.
위에서 '별로 근거가 없다'고 정리한 영등포역 지연의 KTX 통과 원인설입니다만, 이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 보면 기존의 정차 반대와 일부 정차 주장과 조금 다른 대안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에 요구되는 전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많지만 일단은)
i) 영등포역 KTX 통과로 인해 열차 지연이 가중되며 이는 상행에 더 심하다.
ii) 영등포역의 새마을 실적이 서울/용산에 비해 37% (03년) 57% (04년; 서울/용산 KTX 포함시 12%) 선인 점을 보아 (광명역 신설로 인한 이전까지 포함) 영등포 Full 정차시 예상되는 영등포의 KTX 수요는 서울/용산의 20~25% 정도이며 (위의 '신규창출' 부분의 식까지 포함해서 계산) 이는 경부:호남선에 3:1~4:1 정도로 나타난다. 상하위열차 수요의 분포는 여기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iii) 영등포역의 이용객 시설은 서울/용산의 20% 정도이다.
iv) 영등포역의 최소정차간격은 4분 정도로 잡혀야 한다.
v) 이용객이 원하는 정차 빈도는 가급적 (편도) 시간당 1회, 정 안될 경우 하루 6회 정도이다. (KTX의 주말 편도운행은 총 81회)
여기에 통계에서 나타나는 근거
- 영등포역은 강차보다 승차 수요가 크며 (단 2004년에는 매우 완화) 강차 증대는 수용이 수월하다.
이를 통해 한가지 안을 내 보자면 이렇습니다. 상행선 KTX 중 광명에서 서는 것을 제외하고 가급적 많은 수 (일 최대 25회 정도) 를 영등포에서 세웁니다. 하행선은 주중과 주말을 달리하여 4~8회 정도를 세웁니다. (6회라면 경부선 4회, 호남선 2회) 이는 영등포의 역무시설이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많은 KTX를 세울 수 없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위의 '최소정차간격 4분'에 주의하시길) 이 경우 영등포는 walk-in은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껏해야 KTX 수요 중 서울/용산의 5% 정도를 끌어갈 수 있을 뿐입니다. 약간의 꼼수가 있다면 행신 발착 KTX를 영등포 정차로 하여, 서울/용산에 세우지 않고 (즉 서울/용산의 매시 발차와 무관하게) 그 이하에서는 비교적 완행으로 운행시키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광명에 세우는 건 무방하겠죠. 혹은 부산행 KTX (현재 시간당 4회) 중 20분이나 35분에 발차하는 엄한 물건 위주로 세우는 건 비교적 저항감이 덜할 수 있겠습니다.
반대로 강차만이 이루어지는 상행은 비교적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건 영등포역 지상역사의 도시철도 시설이 개선된다는 전제 하에 꽤 많은 정차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다만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대량 승하차에 따른 지연'이 대부분 상행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p.s. 마지막으로 주지합니다만 결코 제가 이 안을 강하게 건의하는 건 아닙니다. 밑에서 별달리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KTX로 인한 지연 가중'을 생각해 보시라는 게 가장 중요한 논점입니다.
첫댓글 여수행관광열차님의 정확한 통계를 기반으로 한 예리한 분석과 통찰에 매우 놀랐습니다.^^ 그런데, 열차 지연에 대한 결과가 다소 의외네요. 병목현상이 가중되는 상행선이 기본적으로 하행보다 더 많이 지연 또는 정체하는게 일반적인 상식이니까요. 고속도로도 막히는 시간대면 상행이 더 많이 밀리는 걸 볼 수 있죠.
더군다나 영등포에서 KTX의 일반열차 추월횟수가 2회인데 비해, 상행은 17회나 되다니... 그런데도 불구하고 총 지연시간은 적다는 결과를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일반열차 지연요인중에 KTX의 영등포통과로 인한 요인은 별로 효과를 못미치는 건가요....
좋은 분석입니다.^^다소 새로운 논점을 제시하셨네요.철도공사측에서도 "KTX영등포역 통과로 인한 지연 효과"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위와 같은 방법이라면 상당히 매력있어보입니다.
그리고 영등포역 정차 찬반을 떠나서 영등포역 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좁으니 질서를 지켜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을 정도로 역 용량에 비해서 승객들이 과포화 된 역이 영등포역 입니다. 그런데 영등포역 증축도 L사의 반대로 안 되고 있지요.
영등포역 KTX 통과로 인한 열차 지연설에 관한 논란이 앞으로 계속될 듯한 생각이 드는군요. 철공에서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어떨지....
일단 건교부에서 영등포정차 KIN이란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더이상의 논쟁은 소모에 불과 할듯합니다...-_-
저는 그걸 현 정부의 "서울 죽이기"의 일부로 보고 있습니다 -_-;
'서울 죽이기' 동감입니다.^^;;
글세..죽이기란 단어가 과연 합당한지 모르겠네요. 억제라면 모를까. 이미 서울역이 있고 용산역이있는데 영등포역에 안세운다고 죽이기라는건 좀 난감하네요.
반대로 저는 서울시의 광명역 죽이기가 더 심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만. -_-;; 광명역에서 70% 열차를 시종착시키기로 한 6공 정권이야말로 서울 죽이기의 극치가 아닌지? -_-;;
아무래도 광명시는 경기도이다 보니까 -_-;;
저도 이제는 서울이 부피 팽창을 그만하고 있는거 좀 정리좀 했음 좋겠습니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