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채동석회장님제공]
[ 아버지 제사 ]
추억을 되살리는 아들의 감사
글 / 엄상익 변호사
내가 어렸던 시절
아버지는 가는 붓으로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돌아가신 조상의 지방을 쓰고
그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신이 찾아온다는 새벽 한시경
상 앞에서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가느다란 향 연기를 타고
머나먼 곳에서
조상의 영이 찾아와
음식을 드시는 것 같았다.
문을 조금 열어둔 채
우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조상이 흠향하시도록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지방문을 태워
그 재를 날렸다.
거기 담겼던 조상이
다시 밤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우리 가족은 크리스찬이 됐다.
조상의 기일이 되면
꽃과 십자가를 상 위에 올려놓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
한식과 추석이 되면 공원묘지에 있는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아가
그 앞에 꽃을 놓고 기도했다.
세월이 지나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다.
아이들은 조상을 위해 하는 추도식을
마지못해 따라 하는 것 같았다.
이년 전 나는 집안의 모든 식을
다 접기로 했다.
진정한 애정이 없이 의무로 형식으로
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었다.
기억에 없는 조상을 위해
먼 묘지까지 아이들이 가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걱정이 생겼다.
내가 죽고 나면 평생 내가 돌보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의 무덤이
잡초 속에 버려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풀이 수북이 자라난 버려진
남들의 묘들을 보면 마음이 애잔했다.
특히 공원묘지는
관리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묘를 없애버리는 것 같았다.
공원묘지에 묻힌
유명한 코미디언의 묘지가
파헤쳐 없어지고 비석만 창고에
나뒹구는 장면을 한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내가 죽고 난후 공원묘지의 관리비를
자식들이 흔쾌히 낼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모든 걸 정리하고 가기로 했다.
지난해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의 무덤을
파헤쳐 유골을 상자에 담았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의 유골을
내 차의 좌석에 올려놓고
오랫만에 바뀐 서울 구경을 시켜 드렸다.
오십삼년,
삼십년 만에
다시보는 서울풍경에 놀랄 것 같았다.
나는 유골을 집으로 모셔 와
얼마간 쉬시게 했다.
손자와 아들이 사는 집구경을 하고
얼마간 묵으시는 셈이다.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의 나무 밑에
묻어드릴 예정이다.
정리하는 길에
야산 기슭의 남의 땅에 방치 되어 있는
외증조할머니의 무덤도 파서
그 유골을 그 할머니가
젊은 시절 사셨다는 마을의 뒷산에
뿌려드렸다.
가족이 북에 있어서
관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의 제사는 뭘까.
형식보다 함께 한 즐거웠던
추억을 되살리면서 하는
아들의 감사는 아닐까.
기억의 동영상을 끝까지 뒤로 감아
재생시켜 본다.
희미한 장면들이 머리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한다.
기억들이 우글거리며
흑백영화 속의 동영상같이 나타난다.
나는 기억의 동영상을
십육배속으로 앞으로 앞으로 돌리다
재생시켜 보았다.
세 살 정도 된 내가
아버지에게 안겨있다.
아버지의 높은 어깨 위에서
차들이 오가는 길이 보인다.
다시 영상의 한 부분을 재생했다.
다섯 살쯤무렵이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나를
아버지가 깨웠다.
세발자전거가 보였다.
나는 너무 좋아서
잠도 깨지 않은 채 그 위에 올라
페달을 밟고 방안을 돌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차에 태워 학교로 갔다.
‘시발택시’라는 걸 처음 타본 날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받은 교과서들을
꼼꼼하게 은박을 한 종이로 싸줬다.
아버지의 젊음과 고뇌
그리고
늙음과 병 죽음의 장면들이
내 기억의 동영상 속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것 같았다.
부모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닌 것 같다.
그 자식들의 추억으로 녹화되어 있다.
이번에는
추억의 동영상 마지막 부분을
재생시켜 보았다.
쌀쌀한 봄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하루 전이다.
중환자실로 간 내게 병상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난밤 아주 좋은 곳으로 갔다.
아름다웠어.
그런데 병원에서 주사를 놓고
괴롭히는 바람에 가지 못했어.”
아버지의 말이 신기하게 들렸다.
저세상이 있다는 말과 글은
수없이 많이 듣고 봤지만
경험해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들인 내가 믿는 바람에
아픈 몸으로 뒤늦게 세례를 받았다.
그런 아버지의 말이었다.
세뇌된 관념이나 이론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
정말 다른 세상이 있는 것 같아?”
“응, 있어 내가 봤어.”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믿는다.
내 아버지니까.
나는 그 말이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
============================
🍎 92세 할머니의
뼈 있는 인생 조언.
얘야! 너 늙으면
젤루 억울한게 뭔지 아니?
돈, 주름? 그거 좋지
근데 그것도 아녀.
이 할미가 진짜 억울한 건
나는 언제쯤이면 재밋고
신나게 한번 놀아 보나
그것만 보고 살았는디..
지랄맞게 이제 좀 놀아 볼라고 했더니만 다 늙어 부렀어!
얘야!
나는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는디..
근데, 그게 아니라 자주
웃는 놈이 제일 좋은 인생이더라!
젊은 사람들 말맹키로
인생은 타이밍인 것이여...
인생!
너무 아끼고 살지 말어.
언제 하늘소풍갈지 몰라..
꽃놀이도 빼먹지 말고
꼬박꼬박 댕기고~
이제 보니께 웃는 것은
미루면 돈처럼 쌓이는게 아니라 다 사라지고 없더란 말이여.
사람들은 행복을 적금 처럼 나중에 쓸거라 생각하는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니께
그냥 하루 하루를 닥치는 대로, 즐겁고 행복하게
웃으며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란 말이여!
훗날 후회하지 말고~
=============================
🌹까마귀의 행복🌹
옛날에 삶에 만족하며 살던 까마귀가 있었다.
까마귀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어디든 마음껏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연못가에서 백조를 보게 되었다. 백조의 눈부시게 흰 깃털과
우아한 자태를 본 까마귀는 문득 자신을 돌아보며 회의감에 빠졌다.
까마귀는 백조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카맣게 생겼는데, 당신은 저토록 아름답고 곱게 생겼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자 백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겉모습만 보고 그렇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사실 나는 늘 앵무새가 부럽습니다. 나에게는 흰색 하나뿐이지만, 앵무새는 두 가지 색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까마귀는 앵무새를 찾아가 같은 말을 건넸다. 그러나 앵무새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한때는 행복했지요. 하지만 공작을 본 순간, 내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나는 고작 두 가지 색뿐이지만, 공작은 수십 가지 화려한 빛깔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이 말을 들은 까마귀는 공작을 찾아 동물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공작을 보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까마귀는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린 끝에야 공작을 만날 수 있었다.
까마귀는 감탄하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보기 위해 모여드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는 분명 당신일 겁니다. 나는 사람들이 보면 쫓아버리려 하지만, 당신은 늘 환영받고 있잖습니까?”
그러자 공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나를 아름답다고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자유를 잃고 이 좁은 새장 속에 갇혀 있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하늘을 마음껏 날아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하지요. ‘만약 내가 까마귀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든 마음껏 다닐 수 있을 텐데.’”
그제야 까마귀는 깨달았다. 행복은 외부의 화려함이나 남의 시선에 있지 않다는 것을.
💎철학적 성찰
이 짧은 우화는 인간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모습을 투영한다. 심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은 이를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 설명한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때, 더 많은 돈이 반드시 더 큰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은 절대적 조건보다 상대적 비교에 더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비교는 인간 사회의 불행을 낳는 씨앗”이라 말했다.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잊고 남이 가진 것만 보게 된다. 결국 행복은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누릴 줄 아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불교에서도 이를 “족함을 아는 자(知足者)”라 했다. “지족 지락(知足之樂)”, 즉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라는 가르침이다. 반대로 끝없는 비교와 욕망은 불행의 근원, 곧 “무명(無明)”의 사슬이 된다.
공작은 아름다움 때문에 감옥에 갇혔고, 까마귀는 ‘평범함’ 덕분에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조건이 때로는 단점처럼 보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마무리
행복은 남과 비교할 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만족할 때 생겨난다. 비교는 끝이 없지만, 감사와 만족은 지금 이 자리에서 완성된다. 진정한 행복이란,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누리는 삶이다.
=======================
♡ 오늘에만 집중♡
어느 날 조그마한 서점에 간판 대신에
'내일은 책을 무료로 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책을 사기 위해 서점을 들렀던 사람들이
그 현수막을 발견하고는 내일 다시 오겠다며
책을 사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현수막을 보고 돌아갔던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서점으로 나갔다.
서점은 공짜로 책을 받아 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한 권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벌였다.
욕심껏 책을 가지고 사람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서점을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출입구 쪽의 계산대에서는
여전히 돈을 받고 있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서점 주인에게 따졌다.
"여보쇼, 오늘 책을 무료로 준다고 해 놓고서는
왜 돈을 받는 것이요?"
그때 주인은 조용히 대답해 주었다.
"아, 현수막을 보시고 그러시는 것 같은데,
그 현수막에는 내일 무료로 드린다고 했지
오늘 무료로 드린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돈을 내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손님들은 책을 내려놓고
우르르 몰려나가 현수막을 다시 바라보았다.
현수막은 여전히
'내일은 책을 무료로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오늘을 사는 것은 내일을 사는 것보다 절박하다.
내일은 시간이 흐르면 계속해서 다가오지만
오늘은 이 순간이 지나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에 온 힘을 다하기 위해서는
내일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고,
그 간격은 그 어떤 수단에 의해서도 좁힐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은 노련한 사기꾼이다.
그 사기는 언제나 그럴싸하다.
그래서 나는 내일을 믿지 않는다. 오늘에만 집중할 뿐...
즐거운 주말 되시고
행복하세요.
오늘에만 집중하시고요....
====================
🌺女僧은
품어보지 못했소🌺
윤 참판은
그럴듯한 허우대에 인물 준수하고
언변 또한 좋아
자유자재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재주를 가졌다.
열두 살에 초시에 붙고
열여섯에 급제를 한
빼어난 문필에
영특하기는
조선천지 둘째가라면 서럽다.
성품도 너그러워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데다,
선대로부터
재산도 넉넉하게 물려받아
나랏일을 하면서
일전 한 닢 부정하는 일이 없으니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본다.
한겨울에 맨발로 다니는 거지에게
자기 신발을 벗어주고
땟거리가 없는 집엔
곡식 자루를 보낸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처자식에게 자상하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하나의 티가 있다.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노소 미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치마만 둘렀다 하면
사족을 못 쓰는 것이다.
수많은 여자들을 섭렵했지만
말썽 일으켜
봉변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남녀관계란
이불속에서는 한 몸이지만
헤어지면 원수가 되는 법,
그러나 윤 참판을 거쳐 간
무수한 여자들은
어느 누구 하나 그를 욕하는 법이 없다.
윤 참판이
명월관 춘심에게 싫증이 날 즈음,
서당골 오 과부댁과 눈이 맞아
날만 어두워지면 그 집으로 갔다가
닭이 울 즈음
남의눈을 피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도 밤새도록
육덕이 푸짐한 오과부를 끼고
운우의 정을 만끽하다가
감나무 가지에 걸린 그믐달을 보며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라, 이게 무슨 변고인고?
안방에서 난데없이
목탁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헛기침을 하고 안방 문을 열었더니
여승(女僧)이 촛불을 켜놓고
눈물을 흘리며
불경을 외고 목탁을 치는 것이다.
“대감, 소저는
오늘 아침 입산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여자 구해서
안방을 차지하도록 하고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부인이
삭발을 하고 여승(女僧)이 된 것이다.
“부인!” 윤 참판이
침을 꿀꺽 삼키며 정적을 깼다.
“가만히 생각하니
부인 속을 많이도 태웠구려.
친구 부인, 하인 마누라,
술집 작부, 과부, 방물장수..
온갖 여인 다 접해봤지만
아직 여승(女僧)은
내 품에 품어보지 못했소.”
하도 어이없어
입만 벌리고 있는 부인을
윤 참판이 쓰러뜨렸다.
부인이 발버둥 쳐보았지만
이내 발가락을 오므리고
윤 참판의 등을 움켜잡았다.
땀범벅이 된 부인이
옷 매무새를 고치고
“못 말리는 대감”
눈을 흘기며
싸 놓았던 보따리를 풀었다. 한다. 💕
글 : 카톡 글 옮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