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2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유다 왕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여호람 그리고 에돔 왕이 함께 모압을 치러 올라가다가 군사들과 가축을 먹일 물이 다 떨어져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선지자 엘리사를 불러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이 때 엘리사가 말하기를 내가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나는 그 앞에서 당신(여호람)을 보지도 향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왕하 3:14).
여호사밧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나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어찌 볼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들 예수만 바라보시고 그만을 끌어당기십니다.
따라서 그 아들에게 붙어 있는 자만 함께 건짐을 받습니다(고전 15:23).
하나님 다른 그 무엇에 조금 마음을 두고 믿는다고 하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것이오니 오직 우리 주님만을 온전히 믿을 수 있도록 나를 강하게 붙잡아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 주일입니다.
공동체로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되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엡 4:1-6
제목 : 겸손과 온유의 모양이 아니라 그 능력이신 예수로 살게 하소서.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 나의 묵상
창세전, 하나님은 아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셔서 태어나게 하셨다(요 5:26).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나신 아들은 항상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다(요 14:31, 15:10).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창세전의 세계에서뿐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 땅에서도 철저히 창세전에 보고 들었던 것을 말씀하시고 행하셨다.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함이니라.
아들은 또한 이 땅에 오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셨다.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었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철저하게 아버지의 명령대로 행하신 것이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의 권세도 받으셨다.
(요 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 권한을 가지고 마지막 종말에 행하실 그 심판은 의로우시다.
왜냐하면 그 심판 역시 예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기 때문이다.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이처럼 아들 그리스도는 창세전의 세계에서나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후나 공히 아버지의 아들답게 사셨다.
그분은 항상 겸손과 온유 그리고 우리를 용납하고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시기까지 오래 참으셨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겸손과 복종의 삶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또한 성령 하나님과 한 몸이 되셔서 삼위일체로 사시고 행하셨다.
삼위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고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며 다른 위격의 하나님을 드러내신다.
자기를 부인하고 상대를 돋보이게 할 때 그 공동체는 온전히 한 몸이 될 수 있다.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창세전, 즉 만물 위에도 계시며 만물 안에도 계시고 만물을 통일하시는 하나님, 즉 만물을 꿰뚫어서 편재하시는 하나님으로써 한 분이시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였다.
아들은 철저히 아버지의 뜻대로 말하고 행하고 사셨는데, 나는 아들의 생명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육신의 생각과 세상적 가치관 그리고 정욕대로 살아 왔던 자임을 고백한다.
겸손과 온유의 모양만 있었지 그 능력은 나에게 없었다.
겸손과 온유의 능력은 사람의 됨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내가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나의 생명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겸손한 척, 온유한 척 경건의 모양은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 결과는 언제나 환난과 곤고이다.
사도 바울이 자기 의로 율법을 지켜 흠이 없는 자로 살았지만 그 안에 환난과 곤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그는 선을 행한다고 열심히 하였지만, 그의 육신 안에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달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롬 7:19-20)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은 자기가 율법을 지켜 선을 행하려는 그것조차 자기주장의지로 행하는 것이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 다름 아님을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죄의 세력에 철저히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다.
나 역시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 내 안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
그것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질 영적 전쟁이다.
끊임없이 경건의 모양만 나타내려는 나의 육신은 경건의 능력으로 행하려는 주님의 뜻과 대치하고 부딪힐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것으로 인하여 고민하였고, 현재도 고민 중이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본다.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하라고 나를 꼬드긴다.
말씀 묵상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영생의 삶으로 살려고 하면 죄의 세력은 나를 가만 두지 않고 죄지을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많이 그 꼬임에 넘어가 자빠졌는지 모른다.
“오~ 주님 나는 정말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해 내겠습니까?”(롬 7:24).
이 탄식은 바로 오늘 나의 탄식이다.
깊은 절망의 자리, 체념의 자리로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오늘 다시 일어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과 한 몸이다.
성령 안에서 주님과 하나의 끈으로 묶어져 있는 영생의 공동체이다.
주님과 나만 아니라 말씀으로 서로 교제하며 사귐을 갖는 이들이 주님과 함께 성령 안에서 하나로 묶어져 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한 소망 안에서 나를 부르시고 당신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을 믿는다.
나는 그렇게 성령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래서 주님은 성전된 우리 안에서 두루 행하여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된다.
이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그의 자녀이다.
나의 삶으로는 도무지 성전이 될 자격이 없지만, 아들이 지신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나의 죄가 정결케 되고 나는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이것은 나의 자랑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의 일하심이다.
다만 주님을 힘입어 담대함(파레시아)으로 아버지 품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겸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온유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이 날 바라보시며 오래 참으셨기에 이제 아들의 생명을 가진 나는 고난의 싸움이 닥치고 비방과 환난이 몰아쳐 올지라도 물러날 수 없다.
나의 모든 소유를 다 빼앗기는 재산 몰수의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오직 한 가지는 빼앗길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담대함, 즉 파레시아이다.
이것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다 빼앗길지라도 파레시아만 빼앗기지 않으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이신 아들은 지체하지 않고 오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겸손과 온유의 모양만 나타내며 살았던 나의 인생을 이제는 던져버리나이다.
그리고 이제 참된 겸손과 온유의 능력이신 예수로만 살게 하옵소서.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이신 아들의 생명 안에서만 가능하오니 아들의 생명을 얻은 내가 그 생명을 자원으로 행하기 원하나이다.
이 죄인된 나를 주님과 한 몸 되게 하셨음을 감사하나이다.
이제는 내 안에서 죄와 싸워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주의 은혜로 덮어 주옵소서.
내 마음이 가난하게 하시어 날마다 예수로만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정말 주가 필요하오니 아들의 생명이 나를 이끄소서.
나를 주장하시고 장악하시고 지배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오니 나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