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질적에 미사일기지와 비행장 사이의 중간정도의 동네에 살았다
먹을것이 귀해 학교를 다녀도 도시락없는 친구들이 반이 넘는 시절이었다
궁여지책으로 학교측에서 도시락을 못가져오는 학생들을 위해 집에서 빈 양은도시락을
가져오게 하고 옥수수즉을 쑤어 각 반에 나누어 주며 주번들이 선생님과 함께 나누어 주었다
철없던 시절 주번 날 되면 흥분을 했다
옥수수 죽이 참으로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농사를 짓은 학생 집은 도시락을 싸오게 했다
비록 도시락은 가지고 다녔지만 보리밥 도시락이었으니 달콤하고 부드로운 옥수수 죽 맛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일등 간식이었다
빈 도시락 가져오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가끔 사정사정하여 도시락과 바꿔먹기로
약속한 날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날이었다
하교길 아침저녁으로만 버스가 다시는 시골.
버스를 탄다는것은 아주 특별히 시내를 가는것외는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리 먼 거리도 걸어서 다녔다
비행장 쪽으로 집을 향해 가다보면 가끔 미군차가 태워다 주곤했는데
영어란것은 몰랐지만 어려서 부터 " 헬로" "기브 미" 땡큐" "오케이" " 찡금(껌을말함)"
전래동화 처럼 언니. 오빠들에게서 배웠다
하교길에서 지나던 미군 군용차만 보면 우리들은 마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 헬로! 기브미" "찡금" 어린 우리들은 습관처럼 연신 달라며 큰 목소리로 말을 했고
미군들은 재미있는지 가끔은 컴. 통조림 같은것을 던져주곤 했다.
그런 행동들이 구걸이란걸 깨닳지 못하고 당연한 것 처럼 요구를 했던것이다
약소국가의 비참함을 길거리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배고품 때문에 우리가 보여준 꼴이 되고 말았던것이다
고 학년이 되었을 쯤 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조회 시간에 말씀하시기 시작되었고
절대로 미군차가 지나가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않된다며 아침 조회 시간만 되면 교장선생님은
목줄기에 핏대를 세우시며 연설을 하셨다
그리고 어느 날 부터 등하교 시간이 되면 6학년부터 1학년까지 애향단 깃발을 든 선배들의 뒤를 따르며
우측통행과 한줄로 서서 다니라는 학교 지시가 떨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어느덧 우리도 모르는 사이 미군군용 차량이 지나가도 손 흔들며 그런 언어들을
쓰면 이름 석자를 선배들이 적어 선생님께 제출하고 혼나는 것이 무서워 하지않았다
나라에서 약소국가의 배고품은 있었을지라도 어린이들에게 비굴함과 굴욕적인 마음을 없애기 위해
각각 동네마다 애향단 단장을 세우고 아침마다 일렬로 학교를 다니게끔 교육청이 지시했던 것이다
지금 고향에 가면 여전히 학교길이 포장되어 동네마다 시골일지라도 너무나 잘 가꾸어 놓고 산다
지금 초등학생들은 버스가 자주다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한다.
어릴적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미군 군용차는 가끔 그 길를 지나간다.
아무것도 모르고 "헬로." " 기브미." " 탱큐" 소리지르는 아이들은 없지만
길가던 어린 여학생들을 군용차로 치고도 뻔뻔스런 행동을 하는 그들이다.
그 뻔뻔스런 태도는 아마도 강대국이란 우월주의와 교만함이 자신도 모르게 베어있어
예의없는 무지함에서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지는것 같다
대한민국은 교육. 정치. 경제 모든것에서 앞서야만이 적은 나라의 서러움을 벗어나지 않겠는가?
거짓없는 정치.
엘리트적인 교육.
위축되지 않는 경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같다.
대한민국이여! 자존심을 가지고 화이팅!
2010년 7월 2일 수희
첫댓글 옛날 생각이 납니다 '
미군에게 얻어 먹던 사탕과 껌 '
천주교회서 나누어 주던 꿀꿀이 죽 '
그땐 최고의 별미이었지요 '
그러나 이젠 도움을 받던 나라가 이젠 도와 주는 나라로
큰 발전을 하게 된것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정치가가 제발 싸우지만 말고 공무원들 도둑 질 하지 않는 다면
우리 나라 정말 살만한 나라가 될텐데요
예예!! 그래요 ....
반듯한 정치를 한다면 아름답고 살만한 나라가 될텐데....쯧쯧 정말 걱정입니다
갑자기 옥수수의 구수한 죽 생각이 나네여~~~ㅎㅎ
기쁜 주말 되시길....
아련한 지난시절이 떠오릅니다
먹을것이 부족하던 시절...미군만 지나가면 초코렛과 과자를 얻어먹기 위해
미군 찜차를 따라 다니던 그 시절~ 먹고 살기위해 몸부림 치던 가난한 시절에
약소 국가의 서러움~아직까지도 군사대국 경제대국의 눈치를 살피며....
전시 작전권마져 환원하지 못한 약소국의 서러움...자주국방 ,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진입하는 강대국이 빨리되어야 겠지요?
들판민들레님~지난 추억을 되돌아 보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아마도 부대 근방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이런저런 추억이
많이도 있을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추억도 되지만 슬픔이 더 많은 추억이지요~~
우리와 같은 세대겠네요~~~중년이 넘어선 세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민들레님 옛날 생각이 나네요
그래도 님은 미군부대 주위에 사셔서 그런 추억도 있으시네요
십여리 길을 걸어 초중학교를 마치고 시내로 고등하교에 갔을때
이런 좋은세상도 있구나 했지요
지금은 문화 혜택이나 교통편에 불편함을 모르고 생활하고 있지만
가끔은 그시절이 그립답니다
즐~건 주말되세요
예 저도 시골에서 학교에 다녔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40~50분씩 걸어서 추우나 더우나 검정고무신 신고 다녔지요
추운겨울은 눈보라가 치면 눈을 뜰수없어도 어떻게 다녔는지 .....
그리고 고등학교를 시내로 가니까~~
구경할것이 참으로 많데여~~~
또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 언니집으로 올라오고 ...직장 잡고
어디를 갈때마다 마음이 벌렁벌렁 했답니다....ㅎㅎㅎㅎ
그러면서 촌년 때깔벗고 멋있어 졌는데 ....
그래도 역시나 제가 시골 촌년이거든요~~
아름다운 주말 되세여~~
들판민들레님 어릴적 학교 다니던 생각이 나네요, 삼사십분거이 걸아다니고, 도시락은 꽁당 보리밥을 싸가지고 다니곤 했지요, 옥수수 죽도 많이 먹었고 그때 그시절은 옥수수죽은 왜 그리 맛이 있었던지 가끔 그립기도 하지요, 어릴적 구수한 글 잘 보았도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안녕하세요 ...초록장미님
시골에서 옥수수죽과 옥수수빵은 아마도 중년이 넘은 사람들이나
추억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여~~~
들판민들레님 덕분에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울님들이 추억속을 거니시네요...정말 구수한 글 잘 봤습니다...
그렇죠! 바둑이친구님 추억이 거시기 하지요~~~ㅎㅎㅎ
즐거운 주말 되세요~~
친정 동네가 군산이라고 했죠?
지금도 미군 주둔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예 지금도 군산 어은동이라는 곳에 미사일기지가 있고...
군산 비행장에도 미군들이 두준하고 있지요~~~
주을향님 군산에 한번 놀러가 보세요~~
뱃터 항구가 옴겨지고 부안 군산간 도로도 바다라 가르며 생겼다고 하니
바람한번 쐬어보세요~~~
한번도 못먹어봐서 서운하답니다...특히 우유과자...ㅎㅎㅎ
저도 어린시절 미군부대근처에서 살았죠,,,우리동네는 두집건너 예말로 양색시들이 살았고,,,,한반에 혼열아가 여러명,,,,
흑인들이 지나가면 깜둥이라고 수군거리고,,,그래도 미군부데덕분에,,,직장이 미군부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부자동네였죠,,,,
동네에 못사는 사람들은 지금말하면 군인 잔밥~~~<꿀꿀이죽> 그걸사서 드시곤하던동네~~잠깐추억에 잠겨보네요~~
10살 많은 오빠는 먹었다고 합니다. 가난~ 추억이기보다는 아픔인것 같습니다. 다행히 사람들은 좋은것을 더 많이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시절이 그리운가봅니다. 눈이 시릴만큼 하늘이 고운날들입니다. 아름다운날들되시길 빕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옥수수 죽을 먹었고, 그다음 옥수수빵, 건빵, 그렇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모든것이 부족한 시절이었지만 하늘이 맑았고 인정에 행복지수는 높았던 것 같아요 ^^~~~
약소국가 시절, 도움을 받던 시절,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어키에 큰지진이 있었던 때가 있습니다. 국가에서 도와준 것이 약소했구요, 동아일보에서 민간차원으로 돕자는 보도가 있었고, 대가족도 부주를 했습니다. 이름이 올라갔었지요, "전완하 금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