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향기를 안고 가는 여인/ 고광선
불혹이 내려 앉은 짙은 눈썹
갈색 머릿결 춤을 추는 오후 한나절
먹자골목* 24시 마트에는 저녁 준비를 하는 여인들이
찬거리를 주섬주섬 담는다
여덟조각 장바구니에 식구들을 담는다
카드와 지갑의 블랙홀 앞,
청과물 코너 향기만 가득 담고 미소 띈 여인의
장바구니에서 향기가 날린다
숫처녀 수줍움 딸꾹달꾹 물고 가는 산비탈 산딸기
어린시절 첫사랑 키우던 담장 위 설렘으로 입술이 붉어진 앵두
앞으로 걸어도 뒤로 굴러도 땅을 달려도 하늘을 날아도 항상 똑같은 토마토
남자는 뭐니뭐니 해도 오강을 녹이는 힘이다 침 튀기는 복분자
투명한 겸손을 이파리로 배우는 누에의 검은 슬픔이 오디 열리는지
뙤약볕 아래 골이 파인 등짝 아픔 참다 배꼽 뒤틀린 참외
떨이요. 떨이 박수치는 총각의 푸른 입담이 물결치는 수박
수험생 눈 비비며 쫓는 잠, 자꾸 자꾸 자두 졸리는지
삼복더위 고열에 지친 몸 회복 시켜주는 천도복숭아
송이송이 맺힌 사은품 스티커의 완성을 꿈꾸는 포도
여린 속살의 밀애 가을밤 만삭되어 호수에 뜬 배
사춘기 열병 앓던 풋사랑 탐스럽게 익은 사과
안식과 휴식이 있어 너무 너무 좋은 밤
꽃을 피우지 않고도 신념으로 열매를 맺는 천상의 무화과
밤새 초록 이불 적셔 소금 얻으러 새벽에 쓴 키위
은회색 바바리 코트 걸치고 개구쟁이 마냥 혀 낼름거리는 멜론
잣의 고고함과 솔의 그윽한 향기 담으려 고민 고민하다 마음 상한 파인애플
선후배 투터운 정! 야자 타임으로 단단해진 아자! 아자! 야자
마음에 매일 쓰는 편지로 친구 만난지 너무 오렌지
노란 옷을 벗으면 뽀얀 살결 숫처녀에 반한 바나나
주부 이십 단, 이제야 알뜰 쇼핑하는
감, 잡았는 감
향기를 먹는 여인,
익으면 농후한 향이 풀풀날린다
*먹자골목: 안산시 본오동 소재 한양아파트와 신안아파트 사이에 맛집이 밀집된 상가지역
첫댓글 아꿍~ㅎㅎㅎ
정말 맛있게도 글을 표현해주셨네요~~
억새꽃님 고맙습니다~
잘 읽어보고 갑니다
상큼하고한 과일향이 음아사삭 한입 베어물고 싶네여
콤함에 입안이 행복하다 환호 하네요
우리 삶도 과일만큼의 향기로 살아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