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거실 구석에는 태국의 곤충들 수십마리가 박제되어 두꺼운 유리에 박힌 보기드문 제품이 있다. 무겁기도 한데 이것은 15년전 75세로 별세한 큰형이 건강할때 태국관광가서 사온 기념품으로 뉴욕에 사는 손자가 한국에 오면 주려고 사온 것이다. 당시 열세살이였던 손자는 한국을 방문하여 할아버지가 사온 박제된 곤충을 갖고 집에 가려다 반출불허로 결국 못갖고 나갔다. 그대신 우리집에 있던 브라질 아마존강에 서식하는 식인 물고기인 피라냐 박제한 것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것은 갖고 갔다.
지지난주 목요일 뉴욕 어린이는 28세 청년이 되어 엄마,아빠랑 2주간 휴가를 얻어 한국에 왔다. 온 이유는 요양원에 3년째 있는 할머니를 만나 뵈러 왔다. 내게는 큰형수다. 일주일간 내내 비원앞 레지던스에서 지내며 오전에는 세검정 요양원에 가서 할머니를 만나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와는 일주일이 지나 같이 식사를 했는데 의젓해졌고 헬스 트레이너같이 변한 체격인데도 얼굴은 동안이다. 남동생은 의대를 다녀 같이 못왔다고 했다. 막내고모와 고모부. 우리집식구. 미국조카의 고모등 8명이 동네 한정식에서 식사를 했는데 2차로 우리집으로 이동하여 수박과 떡을 먹었다.
28세 청년의 직업은 미국 연방정부 스콧 베센트 재무부장관의 비서란다. 미국 재무부장관은 매스컴을 가끔 타서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이지만 비서역할은 무얼하는지 궁금했지만 비밀도 있을터이니 묻지는 않았다. 먼저 바이든 때는 여성분이 재무부 장관이였고 그때도 비서를 해서 같이 사진찍은 것을 본적이 있다. 이런저런 것을 물어 보며 애인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단다. 그래서 고모가 되도록 연상은 사귀지 말라고 했더니 의아한 얼굴을 하며 <연상이 뭐예요?> 해서 다같이 웃었다.
우리집만해도 미국으로 이민간지 58년된 작은형의 가족. 둘째누이의 두딸 가족이 잘살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중 해외에 사는 재외국민이 25년말 현재 181개국에 700만 6천명이고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258만명이다. 700만명중 미국이 255만7천명이고 일본이 184만 8천명이다. 정말로 지금은 글로벌한 세상이고 실시간 문자를 주고 받는 동시간에 연결되는 거리감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오지에도 한국인이 살고 있고 알라스카에서 비행기로 한시간 가는 미국령 섬에는 교통수단이 택시인데 그곳 택시기사들이 모두 한국인이다.
해외에 구석구석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열심히 사는 재외국민들은 오로지 한국의 위상이 변하고 높아지길 늘 바라고 있다. 한국의 위상변화에 따라 그들도 같이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마련이다. 보다 잘사는 나라. 화합하고 단결하는 나라 모습이 늘 절실한게 우리의 현실이다.
첫댓글
멀리 해외에서
훌륭하게 잘 커준 효손 손자 만나
뿌듯 하셨겠습니다
아들 손자 없는
저는 마냥 부럽습니다
올해 87세인 형수가 건강할때는 미국에 손자보러 자주 갔었죠.. 어려서 느낀 할머니의 따뜻한 정을 커서도 간직하고 있나 봅니다. 55년을 살던 세검정 형수집은 3년전 뉴욕서 조카가 와서 2달간 재택근무하며 어머니짐을 전부 공예가 협회장에게 무료로 넘겼죠.
언덕저편님 큰형님의 손자가,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뵙기 위하여 한국을 방문 함에...
28세의 나이에 미연방국 재무부 장관의 비서라 하니
놀라울 정도입니다.
어쩌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여럿 아들들을 잘 키워내신
언덕저편님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어느 집이던, 그 집의 안주인이 후덕하고
지혜로운 여성이라면, 후손들이 잘 성장하고
출세도 하는 것 같아요.
자랑스러운 집안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좋은 DNA를 타고나서 공부도 잘하고 열심히 산 결과로
후세대가 좋은 세상을 만난 것 같습니다.
언덕저편님, 자랑할 만 하네요.^^
그리고 행복하려면,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우선입니다.^^
글 감사합니다.^^
이글을 쓰면서 어머니생각도 나고 특히 시집와서 다섯명의 시동생을 공부시키고 결혼시킨 큰형수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돈들여 미국에서 엄마보러 오는 조카도 고맙구요..
정말 글로벌릭 한 가족사입니다.
대개는 상류층에 들지 못한 채
경제활동에 급급한 실정들이 많다는데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미국에 이민간지 58년된 작은형, 둘째 누이의 67년생인 두 사위들까지 한국에서 가정이 어려워 청운의 꿈을 갖고 미국을 간거였죠... 각고의 노력끝에 얻은 자수성가형이죠..
그집은 집안이 공부를 잘하는 집안인가 봅니다
부럽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큰형은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 다섯을 건사한게 고대 행정학과 다닐때 학원강사하며 밤낮없이 돈을 번 결과였습니다. 미국사는 작은 형은 선린상고 야간을 나와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오고 월남서 돈을 벌다 미국으로 갔죠..
나만 공부를 못해 대접을 못받았죠.. 옛날 얘기입니다.
가족들이 모두 국내외에서 당당하게 자리잡으신거 같습니다
연상의 뜻을 물으신건 농담이시겠지만 10여년전 미국에 이민간
처형의 둘째아들 이름이 연상이라 얼른 그생각이 났습니다 ^^
처형의 아들 둘다 연방공무원이 되어 한국나오면 저희집에 꼭 들러서
국내 하나뿐인 친척인 이모와 이모부를 만나고 갑니다
처형의 자녀들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겁니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연상이 뭐예요?” 한마디에 세대와 언어,
그리고 이민 가족의 시간이 한꺼번에 느껴집니다.
멀리 살아도 가족의 뿌리는 이어지고,
한국의 위상이 곧 해외에 사는 이들의 자부심이 된다는 말이 오래 남네요.
오늘 조카네 식구는 미국으로 갔고 중간에 부산으로 2박3일 다녀 왔답니다. 부산역에 있는 우리조상 동상앞에서 사진도 찍고 미국 시민권자에게 조상이 이런분이다. 하고 알려주고 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