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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러니까 9월 8일 토요일이군요...
홍대 놀이터에서 게릴라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클래식 음악과 관현악에 대한 무관심과는 별도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놀이터 주변에 모여서 이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를 감상하였습니다.
이들의 레퍼토리는 제 기억으로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피아졸라의 탱고곡, 그 밖에 탱고곡과 하차투리안의 <가면 무도회> 중 <왈츠>, 그리고 마지막 곡은 하이든이었습니다. 제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곡 2곡이 공교롭게도 둘 다 발레음악이네요...
고전 예술은 실제로 공연을 보는 것과 그렇지 않고 음반이나 영상으로 접하는 것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어제 홍대에 모인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홍대의 클럽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을 테니까요... (물론 이들의 공연을 일부러 보기 위해 온 아마츄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지인들도 있을 것이겠지만요)
우선 이들의 연주 퀄리티는 그다지 훌륭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아마츄어 오케스트라에게 프로급의, 나아가 음반을 통해 귀에 익숙한 세계 최고 수준의 교향악단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연주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즉, 클래시컬한 레퍼토리를 모르거나,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거꾸로 그러한 실력을 지녀야 아마든 프로든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될 수 있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넘어서 진정으로 즐겼습니다. 제 뒤에 있던 커플은
여: "이거 정말 많이 들어본 건데... 너무 좋다"
남: "난 처음들어봐! 근데 진짜 좋다."
여: "이거 엄청 유명한건데, 첨 들어보냐? ㅡ_-;; 나도 제목은 모르지만"
남: "나 클래식 모르잖아"
라는 대화를 하더군요. 그 곡은 차선생의 <백조의 호수> 2막이었습니다.
이들이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식별할(individuate) 능력과 지식이 없고, 더군다나 발레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더욱 더 없을 것이겠지만, 예술의 위대함은 바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감동을 줄 수 있는 그 '직관성'과 '직접적임'에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위의 커플을 포함하여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에게 클래식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것을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더 소중하고, 또 즐거운 경험이었겠지요...
발레배우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왠 음악 타령이냐구요? ㅋㅋㅋ
사실 발레와 관련해서도 정확하게 이러한 상황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발레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관심하며,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와 같은 공연물이 발레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은,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오늘날... 발레가 어려운 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그리고 사람들이 무식하거나 얄팍해서라기 보다는(개인적으로는 실제로는 이 요인도 크다고 생각하지만 ㅡ_-), 어찌되었건 가장 중요한 것은 (대개의 경우) 발레가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고, 또 사람들은 발레를 접할 수만 있다면, 발레에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다른 의미에서 또 음악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처음에 음악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일단 다음 영상에서 음악을 들어봅시다! 이 영상은 제가 실제로 이 아마츄어 오케스트라의 홍대 놀이터 공연을 디카로 촬영한 것입니다.
* 디카로 촬영한 영상이라 퀄리티가 형편없습니다. 옆에서 캠코더 촬영하는 사람이 있던데, 어찌나 부럽던지... ㅡ_-;; 더군다나 동영상 촬영 중 줌 인과 줌 아웃을 하면 사운드가 입력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영상 올리면서 알았습니다.
** 연주를 잘 들어보면, 바이올린이 반음 정도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것은 기계 문제 아닙니다. ㅋㅋㅋ 실제로 공연을 보았을 때도, 음이 좀 떨어지더군요.
*** 심벌... 무지 시끄럽습니다. ㅡ_-;; 제 위치의 문제도 있었겠지요...
****이러한 이유로 하차투리안의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은 분은 고맙게도 블로그에 포스팅 하신 분이 있더군요... 그곳에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ciaconna/150013537776
이 곡은, 서두에 밝혔던 레퍼토리 중, 아람 하차투리안의 발레 음악 모음곡 중 하나인 <가면무도회> 중 왈츠입니다.
하차투리안은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스파르타쿠스>의 작곡가로 유명합니다만,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와 함께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작곡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을 갖게 됩니다. 어떤 느낌이냐하면, 바로 이 음악을 들으신 당신이 느낀 그 느낌입니다! ^^;;
그리고 아마도 작곡가는 우리가 '그 느낌'을 갖도록 작곡을 했을 것이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작곡가의 그 '의도'를 청중에게 '정확하고 적절하게' 전달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우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서 그 '의도'를 '해석'하게 됩니다. 미묘하게 어긋날 수 있는 이 해석의 연속에서, 무엇인가 진정하고 참된 것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바로 음악을 어렵지만 숭고하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구요.
그런데 이 음악은 왈츠입니다. 거기에다 발레곡입니다. 하나 둘 셋, 둘 둘 셋 하는 세 박자의 왈츠... 홍대에서 클러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힙합 음악에 고개를 아래 위로 리듬에 맞춰 흔들거나, 하우스 뮤직에 맞추어 발을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것과 같이... 발레곡은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발레에 적합한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도록 합니다. 춤을 즐긴다는 것은 이런 것이지요...
힙합을 추기 좋아하는 사람이 힙합 음악을 싫어할 수 없습니다. 힙합에 열광하면 열광할 수록, 힙합 음악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더욱 늘어나고 깊어지겠죠. 발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춤으로서의 발레에 열광하면 열광할 수록, 클래식 혹은 더 나아가 발레 음악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더욱 늘어나고 깊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런 점에서 발레를 배우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발레를 즐기기 위해서는 바로 음악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발레를 추는 것은 좋지만 발레 음악을 싫어할 수 없다면, 발레 음악 혹은 클래식이 좋지 않지만 발레는 좋다고 말하는 것은... 만일 이러한 주장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발레'라는 말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경우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 때 '발레'는 다이어트의 수단, 요가와 비슷한 체조, 혹은 운동과 같은 체육활동과 보다 더 유사할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오케스트라의 홍대 놀이터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어 춤 공연도 포함되었습니다. 피아졸라의 음악과 다른 하나는 잘 모르는 어쨌든 탱고 음악에 맞추어, 남녀 무용수 두 분이서 탱고를 공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군요...
* 이 탱고 동영상은 이 글의 윗글에 동영상을 게시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공연에는 발레곡이 두 곡이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레곡 중 <백조의 호수>는 위대한 차선생님의 위대한 곡이라서, 그리고 하차투리안의 곡은 이 공연의 컨셉인 <가면무도회>와 같은 이름의 곡이라서 선택된 것 같습니다. 아... 비본질적입니다. 아예 오케스트라 공연이면 모를까, 만일 춤 공연이 포함된다면, 그것이 발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뭐 탱고로도 좋지 않은가? 춤과 음악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제 이야기에 따르면, 탱고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남미의 음악, 최근 클래식의 반열에까지 오르는 (사실 음악학적 관점이라기 보다는, 연주와 관련된 실천적 측면에서 그렇게 된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음악을 연주하고, 그 음악에 맞춰 탱고를 추는 것도 발레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ㅡ_-;;
그런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 공연을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합니다. 제가 탱고보다 발레를 좋아해서라구요? 물론 저는 탱고보다 발레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탱고 말고 발레가 공연되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제가 처음 이야기한 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얼마전 제가 카페에 '발레 뮤지컬 심청' 공연을 보고 올린 글에서도 썼듯이, 많은 사람들이 "발레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발레가 지금보다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는 그럴듯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이 중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배워야 더 유용하다고 해서 수학이 쉬워질 수는 없습니다. 수학을 보다 쉽고 흥미롭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학적 방법이 개발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수학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발레가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발레가 해야하는 일은... 공연 예술 발레가 뮤지컬이 되는 것도, 발레음악이 힙합이 되는 것도, 춤으로서의 발레가 레이브 댄스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발레와 관련된 정책, 발레와 관련된 홍보, 교육학적 방법론 등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아주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상당부분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 면에서 이대 무용과 모 교수에 반대합니다. 그 교수는 발레가 대중에게 다가가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식을 갖고 계시며, 이 때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은 진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발레를 변화시키는 것, 대중들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기획한 공연에서는 음악도 대중음악으로 바꾸고, 발레의 형태도 많이 수정하고, 힙합 댄서들도 등장시켰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과연 대중들이 힙합 댄스를 좋아한다는 것이 대중들이 발레가 힙합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함축할까요? 저는 던킨 도너츠에서 후리터를 가장 좋아하지만, 다른 것들이 전부 후리터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발레를 안 보는게, 발레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정말로 생각하는 분들 때문에 나는 홍대 놀이터 공연을 갖고 이리 길게 이야기합니다!
클래식을 즐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주말에 방음 시설과 하이파이 오디오와 음향시설이 갖추어진 카페에 모여서 베토벤과 말러를 감상하는 사람의 수와 주말에 클럽에서 팝뮤직에, 힙합음악에, 혹은 하우스 음악에 혹은 트랜스 뮤직에 몸을 맡기고 몸을 흔드는 사람과 비교하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놀이터까지 나와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감동받습니다. 오케스트라 자체에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고에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주에 감동받는 것입니다. 그들의 연주 레퍼토리를 몰라도 그들은 감동받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클럽에 가서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출 것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 클래식도 좋구나!"
그러면 발레 역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자발적으로 그들은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 가서 10만원이 넘는 표값을 지불하고 혹은 보이지도 않는 자리에 앉아서 발레 공연을 관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놀이터에 나온 오케스트라처럼... 놀이터에서 공연하는 발레 공연은 반드시 볼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오케스트라는 놀이터에 나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도 탱고는 놀이터에 나온 오케스트라와 함께 춤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발레는?
서울시향이나 부천필, 혹은 KBS 관현악단이 홍대 놀이터에서 공연할 수는 없습니다. 이분들이야 기껏해야 시행사나 국가 행사에서 시민들 혹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공연할 수는 있겠지요... 어쨌든 홍대 놀이터는 아닙니다. 그들의 역할도 아니구요. 마찬가지로 국립발레단이나 UBC가 홍대 놀이터에서 공연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역할도 아니구요. 그렇다면 대중에게 다가는 역할은, 그리고 그 때의 '대중'이 정말로 홍대에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젊은이들과 같은 실체적인 의미에서의 대중이라면,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 아마츄어들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이 아마츄어 오케스트라처럼 말이죠.
발레가 얼마나 멋진지 다들 아시지 않나요? 초급반 클라쓰의 센터워크만 구경해도 웃음과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경험 모두 있지 않나요? 아니 김민경 선생님의 쉬운 초급 센터 시간만 해도 감동입니다. 정말로...
그래서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탱고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발레를 했더라면, 사람들은 비보이의 윈드밀이나, 나인틴, 헤드 스핀을 보고 내뱉는 탄성이 아닌, 정말로 눈물 글썽이는 감동을 받았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실제로 고전에 관심이 전혀 없는 제 동생도 <백조의 호수> 3막의 그랑파드되 코다부분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그래서 오케스트라가 부러웠고, 그래서 탱고가 부러웠습니다. 우리 카페에 (저 외에도) 발레가 좋아서 죽겠어요... 발레가 너무 재미있어요... 발레 클라쓰가 기다려져요... 하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이 분들이 모두 아마츄어 오케스트라처럼... 훌륭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완결성을 지니고 작품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 우리가 '대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예술 행정을 하시는 분이나, 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치시는 분, 그리고 무용을 하는 dancer들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첫댓글 그 밤에 이정도의 화질과 음향이면 굳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언제나 고민하고 있는거랍니다. 문제는 그놈의 슈즈랑 바닥입니다. 그래서 클래식은 약간 무대라는 공간에 한계가 있고 맨발이나 다른 슈즈를 신고하는 공연을 생각해보아야지요
시간이 없어 다 읽지는 못했지만 좋은 글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