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雲岳山) - 온 몸으로 더듬다
마라가미스님을 붙잡은 병풍바위
‘경기금강(京畿金剛)’이라 일컫는 운악산 (雲岳山,懸燈山 934.7m)을 비로써 오늘 얼싸 안았다. 교통편이 안 좋아 여태 망설이다 해 더 짧아지기 전에 가보자고 아침7시에 집을 나섰다. 청량리역환승장에서 현등사행 8시버스(1330-44)를 탄다는 게 8시25분 해리행버스(1330-4)를 탔다. 코로나19탓에 손님이 없단 핑계로 8시차를 9시로 배차수를 줄였단다. 반시간을 더 기다리려니 해리에 가서 군내버스라도 타자는 속셈이었다.
형제비위
그래 해리에 도착했는데 알량한 기대는 맹탕이었다. 현등산행 버스는 1330-44번 뿐이라 9시발 버스를 기다려야만 했다. 촐삭대다 버스비만 곱배기로 내야했다. 해리버스터미널이란 게 사거리 방향 따라 네 곳에 흩어져 있는 정거장이라 궁뎅이 걸칠 곳도 마땅찮다. 문 닫은 주점입구에 서서 한적한 시골읍내를 샅샅이 기웃대는 초가을햇살에 내 시선을 보탰다. 간식용 햄소시지를 꺼내 도둑질해먹듯이 오물오물 씹어 삼키면서.
일주문
11시20분에야 1330-44버스는 거만하게 나타났다. 어디다 내려놨는지 손님은 딱 두 사람이 타고있었다. 버스는 11시 반을 넘겨서 나를 현등사입구에 내려줬다. 조종천 냇물이 가을햇살에 몸 씻느라 물비늘을 수 없이 튕기고 있다. 집 나선지 4시간 반 만에 운악산자락을 밟은 셈이다. 현등사를 향하는 시멘트경사길이 벌써 숨을 할딱거리게 한다. 뱁새 한 쌍이 자발을 떨뿐 동물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눈썹바위
청룡능선에서 백호능선을 밟는 종주산행시간이 5~6시간은 짱짱하다는 산행기를 접했던지라 조급한 마음이 더 숨차게 한지도 모른다. 10여분 후 청룡능선에 들었다. 가파른 계단이 버티고 서있다. 능선에 오르자 하늘은 더 없이 푸르고 숲길은 적막하다. 참나무이파리들이 부르르 떨면서 속살댄다. 한 떼의 바람결이 이파리를 타고 소리의 파장을 높인다. 한 옥타브를 올린 바람소리가 마음까지 시원하게 관장을 한다.
아! 초록 숲 바람소리! 햇살에 뒤척거리는 이파리들의 춤사위! 아름다운 자연은 천상의 오케스트라까지 연주하는 거였다. 운악산이 오직 산님들만을 위하여! 눈썹바위가 가로막는다. 눈썹치곤 넘 우람하다. 선녀 기다리다 지친 총각이 화딱지가 얼마나 났기에 저렇게 눈꺼풀이 퉁퉁 부었단 말인가. 목욕하는 선녀 치마 감춘다고 지 짝 될 거라고 생각한 총각은 순진무구 바보천치다. 선녀의 간청대로 치마를 건내자 선녀는 옷 입고 승천한 후 오리무중이었다. 선녀가 미쳤다고 되돌아 오겠냐?
운악정상이 살짝 선뵌다
된비알바위코스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을햇빛속의 바위얼굴들이 참으로 멋있다. 그 멋들어진 바위에 철봉을 박고 밧줄을 꿰어 놨다. 나는 바위에 박아놓은 U철심을 밟으며 밧줄을 잡고 바위 타길 한다. 튼실한 밧줄만 꽉 잡으면 하늘까지 올라가도 떨어지지 않을 테다. 나를 떠받들고 있는 철심을 가슴에 박힌 바위가 아프고 힘들 테지만. 하드래도 데크계단에 깔린 바위들보단 훨씬 좋을 것이다. 하늘도 구름도 햇살도 없는 데크계단 밑의 바윈 팔자에 없는 감옥살이 아니던가.
석문바위
그렇게 바위 타길 끝내면 초록숲길이 이어진다. 어디선가 쏴~~소리가 들린다. 숲이 흔들린다. 이파리위에서 햇살이 춤을 춘다.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휘감는다. 아! 시원하다. 후드득 후드득, 도토리가 숲길에서 나뒹군다. 금년에 도토리풍년이란다. 산짐승들은 호시절 났다. 사람들만 코로나19로 가슴 아파하고 있다. 산도 산님들 발길이 뜸해져서 편해졌을 테다. 입산한지 한 시간을 넘겼지만 여태 산님 한 분을 조우했다.
스텐봉과 U철심으로 암벽등반로를 만든 지자체의 자연사랑이 흐뭇했다
하산하는 산님께 “여기서부터 정상에 올라 백호능선 타고 현등사쪽으로 하산하려는데 5시간이면 충분합니까?”라고 물었다. 충분하니까 천천히 조심하여 가란다. 청량리행1330-44버스가 오후5시와 6시 반에 있어서다. 반가웠다. 안심이 됐다. 다시 바위타기를 시작한다. 바위에 박힌 철심이 햇빛에 유난히 반짝거린다. 철심을 붙잡고 멋진 풍경 한 컷도 빠뜨리지 않는다. 파란 하늘 아래서 매혹적인 암송의 연애질을 엿보는 재미야말로 산행의 별미다.
하늘로 승천한 선녀의 응뎅이 바위(?), 가늘고 잘룩한 허리에 도드라진 응뎅이살!
나는 암송의 연애질 훔쳐보는 재미에 빠져 산행을 한다 해도 무방하다. 오늘 운악산은 그 별미에 푹 빠지게 할 듯싶다. 암송들의 연애마을을 나오면 숲길이 나타나 긴장을 푼다. 그러길 네댓 번 했을 테다. 이따금씩 숲 사이로 선뵀던 병풍바위와 미륵바위가 내 앞에 펼쳐졌다. 촘촘히 솟은 주상절리 하얀 바위 숲에 박힌 소나무들의 장관은 장막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병풍바위
숨이 막힐 판이다. 저길 넘어가야 하능가? 아찔하기도 하고~. 신통, 도통 다 부린다는 마라가미스님도 못 넘어간 저 바위절벽을 어찌 간디야? 신라법흥왕(514년) 때 인도에서 온 스님 마라가미가 여기까지 와서 병풍처럼 펼쳐진 채 막아 선 바위에 정신이 아찔 몽롱하여 포기하려다,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코 바위 오르길 시도했으나 번번이 미끄러졌다.
운악산정상이 저만치 다가선다
해도 죽기 살기로 도전하는 고행 중에 기진하여 운명했다. 오늘날 병풍바윌 거뜬히 넘는 신통술을 즐기는 산님들은 바위에 박은 철봉과 철심과 밧줄 덕이지만, 그 아찔한 현기증을 즐긴다는 모험은 운악산의 선물이라. 담대한 용기와 지구력배양은 도전정신의 의지가 된다. 산이 주는 은전일 것이다. 미륵바위에 옷깃을 스치며 병풍바위허리를 보듬고 만경대를 오른다.
미륵바위
시인 이영환이 읊은 <운악산 미륵 바위> 한 구절을 옮긴다.
“세상에 인심이 있다면 / 미륵 마음입니다
세상에 기도가 있다면 / 미륵보살 기도로 넘칩니다.
천리 절벽에 자라는 푸른 솔 / 미륵 사랑으로 푸릅니다.
지금 까지 / 우리 마음은
소나무 한 그루 /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 절벽이 아니었나요.
운악산 미륵님을 바라보며 / 하산길 우리 마음 속에
구름과 바람이 바둑 뒤는 / 정자 한 채는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 -후략- ”
되돌아 본 청룡능선, 많이 왔다
다시 바윌 보듬고 네 발로 씨름하면서 암송의 은밀한 연애질 사이를 비집고 만경대에 오른다. 널따란 바위마당가에 소나무 두 그루를 건사하고 있는 만경대는 운악산의 천의 얼굴을 관조하기 딱 인 곳이다. 구름 위로 삐죽이 솟구친 영봉들을 빗대어 운악산이라 한 까닭을 새김질하게 한다. 만경대엔 궁예의 성곽터도 있었단다.
태봉국의 왕 궁예는 철원일대에 웅지를 틀고 운악산에 성곽을 쌓고 추적해 오는 왕건과 일전을 도모한다. 면경대(무지개폭포)에 (운악)산성을 쌓은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운악산성의 둘레는 3km쯤 됐단다. 한 때는 자기 부하였던 왕건의 군대와 반 년 간을 대치했던 거였다. 궁지에 몰린 궁예가 산촌을 지나갈 때 황소가 큰 소리로 울자 버릇없다고 소의 주인을 죽이는 등 악행을 저질르는 등 민심도 잃게 된다.
멋진 소나무 두 그루를 건사하느라 만경대바위는 주름살도 닳았다
왕건이 부하들에 의해 왕위에 추대되자 쫓기다시피 도망쳐 운악산에 숨어든 궁예는 농부가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무지개폭포수에 핏물을 씻으며 최후를 맞았다고 1957년판「경기도지」에 기록됐다. 그 핏물이 홍건하여 무지개폭포를 ‘홍폭(紅瀑)’이라고도 불렀던가? 만경대에 서면 사방이 험준한 산들로 빙 둘러있어 난공불락의 요새인 건 틀림없다.
자연친화적인 철재 암벽등로는 전국의 산에 설치된 데크계단을 대체하는 롤모델이 됐음 좋겠다
궁예가 민심을 헤아려 선정을 했다면 왕건이 반기를 들지 안했을지도 모른다. 인심은 천심이라 천심을 잃으면 권력도 사라진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작금 대권을 향하는 자들은 절대 거짓말로 민심을 현혹시키지 말지어다. 영원한 거짓은 없다. 궁예는 아름다운 운해속의 장엄한 운악산에서 불행하게도 사악(邪惡)을 놓을 줄 몰랐지 싶다.
산록의 가평 해리방면
비록 운악정상께만 데크사다릴 설치했지만 운악산은 철봉과 밧줄, U철심으로 최대한 자연친화적인 등산로를 텄다.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귀감 삼아도 될 자연보호행정이라. 산은 산님들이 네발로 기고 보듬으면서 온 몸을 부딪치며 날것과 교감하는, 짜릿한 흥분과 전율속에서 매력을 느끼고 의미를 찾을 테다. 정상엔 두 개의 표지석이 어리둥절케 한다.
포천과 가평군이 세운 정상 표지석. '세상에 이런 일도~?'
산정수리도 꼭 분할하여 표지석을 세워야만 하는가? 찢어서 편 가르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보는 어찌 생겼을꼬? 한참을 내려오면 남근석이 숲속에 모습을 내미는데 어째 남근석 같지가 않다. 남자아이를 잉태케 해달라고 기도하는 바위가 남근석인데 저렇게 우락부락해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가? 그 밑의 코끼리바위는 영판 코끼리 닮았다. 현등사를 향하는 하산길도 급살 맞은 벼랑길이라 여간 조심해야했다.
남근바위, 못 생겨야 사랑 받는다는 속설도 있다지만~ 뒤에 붙어 있는 노인은 뭐꼬?
경기도 3대기도처인기도 한 현등사(懸燈寺)는 보수공사 중이었다. 운악산의 거칠고 험악한 바위산세를 지진탑이 골짝으로 모아 진정시키는 곳이 현등사라 할 것이다. 사찰에 모여 정화된 순하고 따스한 기운은 운악 골짝을 신령스럽게 하나싶다. 탑에서 전망한 운악산은 병풍처럼 현등사를 감싸고 있다. 현등사는 법흥왕 때 인도에서 마라가미(摩羅呵彌)라는 중이 신라에 들어오자 그를 위해 세웠다는 설이 전해온다.
코끼리바위, 나뭇가짓잎 뜯는 폼이 늠름하다
세종임금은 현등사에 주석 중인 함허(涵虛)국사의 상수 혜각존자 신미(信眉)에게 <석보상절>을 편찬케 했다. 사찰을 빠져나오니 오후4시였다. 점심도 행식(行食)으로 때우며 한참도 쉬지 않은 탓에 5시발 청량리행 버스시간은 여유가 있다. 민영환바위와 무우폭포(霧雨瀑布)와 백년(百年)폭포를 훑고 조종천에서 족욕(足浴)까지 한 후 버스에 올랐다. 피곤이 슬슬 눈까풀에 얹혀졌다. 다시 가고 싶은 산 - 가을 단풍 물든 운악산은 어떤 매력을 뿜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