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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화 가사전문 변호사
# 의뢰인의 아픔도 충분히 어루만져야...
가사전문변호사로 명성이 자자한 김삼화 변호사는 며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로부터 개업 20년 기념패를 받았다. 김 변호사는 “별로 한 것도 없고 변호사 개업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며 “세월이 빠름을 알겠다”고 겸손해 했다.
그녀는 단지 이혼을 잘 할 수 있게 또는 이혼을 당하지 않게 도움을 주는 변호사를 떠나서 진심으로 의뢰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며 때론 자녀를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조언하고 때론 인생의 상담자가 돼 주기 때문에 인지도가 확고하다.
또한 그녀가 여성으로서 의뢰인들의 결혼생활의 애환 등 갖가지 어려움을 속 시원히 하소연할 수 있게 이끌어 내기 때문에 많은 여성 의뢰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김 변호사는 동아TV와 MBC 아침프로 아주 특별한 아침 등 여성들을 위한 채널에도 익히 얼굴을 알려왔고 지난 2003년에는 개그우먼 이경실씨의 변론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법무부 가족법개정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민법 개정안에 대해 협의이혼에 따른 숙려기간도입, 이혼시 재산분할을 균등하게 할 것 등 개정안 작업에 적극 관여했다.
가사사건의 경우 이혼, 위자료, 재산분할, 자녀양육, 상속 등 가족관계와 관련해 다양한 사례들을 다룰 수 있는데 민사사건과 달리 당사자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인간적인 변호사가 필요하다.
김 변호사는 가사사건에서 이혼 관련 소송이 많은데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성, 아내의 부정으로 힘든 남성 등 여러 상황을 보게 된다고 전했다.
특히 부부관계가 안 좋아지다 보면 남편들이 여러 소송을 제기해서 아내를 괴롭히거나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재판 진행 중 최소한 아이들의 양육비라도 미리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김 변호사는 “남편의 부정과 폭행으로 아내가 이혼소송을 제기했었는데 오히려 남편이 아내 명의의 재산에 대해 명의신탁 소송을 제기해서 가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다”며 “남편은 아내가 간통과 폭행으로 고소했다고 지속적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혀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결국 대법원까지 간 사건이었는데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 잘 해결됐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의뢰인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고 조언하며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여 당사자가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그저 사건처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인생의 상담자가 되어줄 필요도 있다”며 “특히 자녀들의 양육권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조언을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대우받는 직업 가져야
김 변호사는 아침 7시 30분경에 일어나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남편이 출근하는 것을 도와주고 9시 20분이면 사무실로 들어선다. 하루에 어려 건의 재판이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어서 일과는 매일 다르나 보통 법정에 가거나 재판준비에 필요한 상담, 기록검토, 서면 작성 등을 한다. 퇴근은 주로 오후 7시에서 9시 사이가 되고 자정이 넘어 1시경 잠에 든다.
주말에는 등산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에는 주말농장을 하느라 가족들과 1시간 정도는 밭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 1990년에 결혼해 두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겠지만 전문가로서의 일이 있어서 더 많은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은 분명히 있다.
김 변호사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남편도 많이 도와주고 있는데다 집안 일을 도와주시는 분도 있어 집안 일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면에서 행운이지만 가사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공부할 때는 그저 나만 혼자 열심히 하면 되지만 생활, 특히 결혼생활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라며 주변 사람들과의 조화를 통해 행복한 생활을 꾸린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대학에서 행정학과에 입학해 자연스럽게 고시를 접하게 되면서 여성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직업을 생각했다. 행정고시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자격을 가진 전문가로서 나름대로 뜻을 펼치기에는 사법시험이 나을 것으로 판단,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됐다.
그가 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여자는 시집 잘 가서 살림 잘하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던 시절로 여성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특히 사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이 사실상 거의 어려웠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아버지께서는 어릴 때부터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고 자연히 그도 일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결혼해서 가정에만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을 뿐더러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김 변호사는 요즘 변호사 수가 많아지는 추세에서 자신의 특화된 전문분야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법조인이 된 후에도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를 꾸준히 공부한다면 충분히 그 분야에서 전문변호사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합격은 또 다른 시작임을 명심해야
김 변호사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아침 6시경부터 밤 11시, 도서관 문을 닫을 때까지 공부했다. 간간이 식사 후 20~30분 정도 공부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당시 법대나 경영대 등에는 여학생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라 여학생 고시반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김 변호사와 일부 고시준비를 하는 여학생들이 학장을 찾아가 여학생 고시반을 따로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해서 여학생 고시반이 생기게 됐다는 일화도 있었다.
김 변호사는 23년 전 자신이 공부했던 방법이 지금은 의미가 있을까 라며 의문을 던졌지만 교재는 달라졌을지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호평 받는 교재를 기본서로 하고 다른 교재를 보고 부족한 부분을 첨가하는 단권화 방법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수험생 시절 힘이 들 때면 합격기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던 모습도 변함이 없었다.
수험생들에게 젊은 시절 품었던 뜻을 이룬다는 점에서 기왕에 시작한 공부라면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루기를 바란다며 주변의 여러 유혹이 공부를 방해할 수 있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고 공부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더 빠른 합격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끝으로 김 변호사는 합격으로 모든 것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또 다른 시작임을 명심하고 겸손하고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성실하게 임한다면 성공적인 법조인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충고했다.
이아름 기자 desk@le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