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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아시아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말을 종종 하는데…. 자기네는 언제 민주주의를 했었나? 미국은 1960년대까지 흑인들이 투표를 할 수 없는 주가 많았다. 오늘날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도 1971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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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얘기를 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바로 시장이 정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정치 논리, 경제 논리를 분리해서 얘기하려는 사람들은 경제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막으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사람이다. 정치가 곧 경제고, 경제가 곧 정치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아는 게 중요하다. ..... 정치와 분리된 '자유' 시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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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초기 이름도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 아니었나? 이랬던 경제학에서 가치를 배제해야 한다면서 등장한 것이 오늘의 주류 경제학이다. 그러나 정작 가치 판단을 배제한다는 그 주류 경제학이야말로 특정한 가치로 무장했다.
'개인은 사회와 관계가 없는 원자로 존재한다', '개인은 이기심만으로 움직인다' 등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전제가 되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가치 판단 아닌가? 세상이 개인의 이기심만으로 움직인다면 왜 우리말에 '사랑' '믿음' '연대'와 같은 단어가 있겠나. '이기심'과 같은 단어로만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의도가 주류 경제학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자신의 가치를 감추면서 '주류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게 더 위험하다.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가치들을 은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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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통합'도 경제학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남아메리카 국가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의 소득 불평등이 상상을 초월한다. 사회 통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한 나라의 부가 늘어나는 데만 초점을 맞출 뿐, 이런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 갈등 같은 것은 도외시한다.
또 '노동 시간'도 중요하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노동 시간은 세계 최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할 때다. 이렇게 경제학이 경제 현상을 설명하면서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가치가 있다. 특별히 한 가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것을 다 염두에 두고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경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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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발 독재 과정을 보면, 정부가 강압적 수단을 써서 노동과 자본을 동시에 탄압하면서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비민주적인 일도 많이 했다. 특히 힘없는 농민,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생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컸다. 그런 점에서 개발 독재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제대로 평가를 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첫째, 우선 한국 개발 독재의 특이한 점은 그 기간 동안에 자본가도 적지 않은 통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투자를 하는지조차 일일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까. 이것은 남아메리카 나라들과 같은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부분이다.
남아메리카 부자들은 외국에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으며 외국에서 돈을 물 쓰듯 썼었다. 그런데 한국의 부자들은 외국 여행도 마음 놓고 못하지 않았나? 심지어 양담배를 피워도 잡아갔다. (물론 숨어서 호의호식하는 이들도 많았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부자, 자본가까지 다잡아서 모은 돈을 경제 발전에 집중 투입했으니까.
둘째, 이런 개발 독재를 통해서 이룬 경제 성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1980년대 말에 노동자의 힘이 사회 전체적으로 강화되는데, 그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경제 성장이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노동자의 지위가 올라간 것이다.
경제 성장을 해서 소득이 늘어나는 게 단순히 집에 TV, 세탁기 들여 놓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덜 힘든 일을 하고, 노동 시간이 줄고, 더 따뜻한 집에서 잘 먹고, 병원을 더 자주 가는 등 삶의 질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이다. 제일 좋은 예가 평균수명이다.
내가 1963년생인데,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한국의 평균수명이 53세였다. 2010년에 대지진이 있었던 아이티의 평균수명이 54세였다. 50년 전에 아이티보다 더 못했던 나라가 지금처럼 성장한 것을 가지고, '한국의 경제 성장 별 것 없었어!' 이런 식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런 개발 독재 과정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그래 '위대한 박정희의 독재가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성공했어?' 이건 아니다. 그 경험을 이런 영웅사관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런 발전을 위해서 '박정희'가 꼭 필요했었던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18년 동안 권력을 쥐어서 그런 경제 성장이 된 게 아니다. 그건 명백히 잘못된 일이었다.
다만 그 때 한국의 상황에서 자본과 노동을 동시에 통제하는 방식이 빠른 경제 성장의 조건이었다. 바로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적 독재/정치적 독재의 효과를 나눠서 살피면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경제적 통제가 정치적 자유의 조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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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에 한국의 군부가 개발 독재를 하고 있을 때, 그와 유사한 산업 정책을 하는 나라들이 많았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프랑스, 핀란드 등. 이런 나라들이 독재 국가인가? 모두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들인데도 한국의 개발 독재와 유사한 정부 개입을 하면서 경제 성장을 꾀했다. '정부 개입=개발 독재=反민주주의' 이런 인식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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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한국도 국민이 민주주의에 의해서 정부를 통제하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선출한 민주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소수의 경제 관료, 경제학자 등이 중앙은행을 좌지우지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가? 아니면 국민이 선출한 정부가 통제하는 게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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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으로 통제만 된다면 관치 금융이 맞다. 군부 독재 때야 민주적으로 통제를 받지 않는 몇몇 관리들이 제멋대로 은행을 좌지우지해서 문제였지만, 민주 정부가 은행을 통제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그게 바로 민주주의 아닌가?
자꾸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런 말을 되뇐다. "정치 논리를 배제하자!" 그 속내는 바로 이거다. "우리 마음대로 할 테니, 너희들은 입 닥치고 있어!" 사실상 그들이 국민의 간섭을 받지 않고 '시장 독재'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런 진실을 명확히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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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너희 말 그대로 따라서 그 논리에 충실해 보자. 재벌 총수가 지배 주주냐? 겨우 5% 정도 가지고 황제 경영을 하는데 이게 맞느냐" 이렇게 반박하면서 소액 주주 운동을 전개했다. 처음에 호되게 당한 게 아이러니하게도 최종현 회장의 아들 최태원 씨다.
그렇다면, 이런 주주 자본주의의 발상은 맞는가? 기업이 법적으로는 주주의 것이라고 회사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주주만의 것이 아니라 노동자, 납품 업체, 지역 공동체 등 모두의 것이다. 바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이익을 다 무시하고 주주만 보호하겠다는 발상을 사회운동이 옹호하는 게 맞는가?
주주는 주식을 쉽게 팔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참을성이 없다. 노동자, 납품 업체, 지역 공동체 등과 같은 다른 이해 당사자(stakeholder)는 그에 비해 유동성이 낮다. 주주가 자신의 이익만 내세우면 노동자를 해고하고,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지역 공동체에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게 낫다.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는 주주와 재벌들이 짝짜꿍을 해서 노동자, 소비자 또 다른 이해 당사자를 착취한다. 재벌들과 주주들 간의 싸움은 누가 많이 먹느냐는 것인데, 그 둘 사이에 보통 노동자, 소비자 등을 벗겨 먹어야 한다는 합의가 있다. 지금 노동자, 소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이 몇몇 재벌을 망신 준 것으로 뿌듯해 하지만 결국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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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재벌 체제가 장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그 단점을 어떻게 규제하느냐가 아닐까? 대기업 중심의 경제 체질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위권 재벌의 주력 기업이 흥하느냐 망하느냐에 따라서 국민 경제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미국처럼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득세하는 나라에서도 (망하더라도 정부 개입은 없다고 하더니) 결국은 GM을 국유화해버리지 않았나? 그러니 우리도 이제는 재벌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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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일단 노동조합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런 기본적인 것부터 안 하면서 몇 천억 원 사회에 헌납한다고 자신에 대한 여론이 바뀌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 인정과 같은 가장 하기 쉬운 일을 해서, 일단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다. 그것조차 안 하면서….
방금, 삼성과 같은 재벌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세습 물론 나쁘다. 그런데 그렇게 기어이 아들딸한테 물려주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고 대신 받을 걸 받자, 이런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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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이런 요구가 가능할 것이다. 경영권 세습을 용인할 테니 노동조합을 인정하라. 또 비리 사학 재단 임시이사를 정부가 임명하는 것처럼 이사회의 40% 정도를 정부,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에 할당해 사회의 감시를 받아라. 그리고 이런 체제 속에서 10년 후에 그 경영권 세습의 결과를 평가하자.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삼성이라는 기업을 어떻게 하면 사회가 통제하면서 장기적으로 국민 경제에 득이 되는 기업으로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삼성의 경영권 세습이 못마땅하다고 주주 자본주의 식으로 접근하면, 결국 삼성은 국제 금융 자본의 소유물이 된다. 그 금융 자본 뒤에 무슨 자본이 숨어 있을까?
지금이야 우리는 이 씨家, 정 씨家의 이름도 알고, 얼굴도 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압력을 넣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 펀드' 뒤에 마약 밀매 조직이 숨어 있는지, 아프리카의 독재자가 숨어 있는지 알게 뭔가? 그러면 삼성을 통제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게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인가?
수십 년간 온 국민이 나쁜 물건 써가며, 아버지 삼촌 형 오빠가 노동조합도 못 만들고 피땀 흘려서 일군 기업을 왜 외국 금융 자본한테 내주냐는 말이다. 사실 그 금융 자본도 거슬러 올라가면 삼성과 비교할 수 없이 온갖 악행을 저질렀는데…. 예를 들어, HSBC는 아편 무역으로 성장했다.
차라리 그렇게 삼성이 못 마땅하면 주주 자본주의 이런 얘기를 할 게 아니라 국유화를 주장하자. 그게 차라리 일관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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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영국에서 대처 정부가 집권했을 때, 당시 실업자가 100만 명이 넘었다. 그걸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의 실패라고 비판하며 보수당 대처 정부가 등장했다. 그런데 대처 정부 집권 3년 만에 실업자가 300만 명이 되었다. 진짜 실패한 경제 정책은 어느 쪽인가?
<23가지>에서 누누이 얘기했지만, 1960~70년대와 그 이후의 경제 성과-경제 성장, 금융 안정, 소득 분배 등-를 비교해보면 어느 것 하나 나아진 게 없다. 1970년대 들어서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이 어느 정도 위기에 맞은 게 사실이지만, 그게 파산했다는 것은 1980년대의 대처, 레이건 정부와 같은 우파 정부의 부당한 공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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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대처 정부가 집권을 하지 못해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이 좀 더 유지가 되었더라면 30년이 지난 지금 유럽 경제의 성적표가 훨씬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물론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또 그 나름대로 위기를 극복할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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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예전에는 1년에 6~7% 성장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4% 성장에도 굉장히 기뻐한다. 그러면서 경제가 성숙했으니 성장률이 떨어진 건 당연하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경제가 성숙해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이라면, 서서히 떨어져야지 어떻게 그렇게 급격히 떨어지는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꾸 세계화 등의 개방 경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에 동참한 덕분에 우리가 예전보다 잘 살게 되었다." 외환 위기 이후 개방해서 소득이 몇 만 달러로 늘었다고 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는 비교다. 왜냐하면, 천천히 조심스럽게 개방을 했더라면 외환 위기도 없었을 테고 지금까지 훨씬 더 많이 또 빨리 성장을 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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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에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그런 얘기가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후진국에서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산업의 제품을 수출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네 마리 용보다 몇 십 배 큰 중국이 지금 그런 걸 하고 있다.
더구나 그런 산업의 제품에 대한 잠재 시장은 여전히 넓다. 지금까지 전 세계의 약 10억 명 정도가 그런 산업의 혜택을 보았다. 그런 혜택을 보지 못한 수십억 명이 전 세계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 앞으로도 그런 산업의 제품에 대한 수요가 엄청날 것이다.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변수는 과학기술이다. 1980년대까지 컴퓨터 산업을 주도하던 IBM의 사장이 1950년대 말에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내가 예상할 때, 연간 컴퓨터 수요는 한 다섯 대 정도야!" 그 때만 하더라도 미국의 해군, 공군, 육군, 국방부가 사면 끝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 대수가 몇 대인가?..........이처럼 과학기술은 산업의 지평을 바꾼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자동차 등의 산업도 이제 포화 상태다' 이런 생각을 하겠지만 앞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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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된다면…. 그 경계선이 1인당 소득 1만 달러인지, 2만 달러인지 이런 걸 놓고 싸우기는 하지만, 사실 그 이상이 되면 소득 수준과 국민 행복이 상관관계가 없다. 그 수준부터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 어떤 좋은 사회를 만드는가, 이런 게 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최소한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가 될 때까지의 경제 성장 없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 물론 경제 성장의 과실이 편중되게 배분되면 효과가 없지만, 기본적으로 소득이 늘어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이런 걸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인도의 케랄라 주가 있다.
케랄라 주는 성장 없이도 사람들이 잘 사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곳 인구의 15% 정도가 서남아시아의 두바이 같은 곳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송금한다. 바로 이 송금하는 돈으로 비교적 윤택한 삶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정도의 부는 기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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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유통, 소비와 같은 경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류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 제도, 심리학도 알아야 한다. 또 철학, 도덕도 공부를 해서 아까 얘기했듯이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지를 놓고 나름의 세계관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최대한 광범위한 공부를 했을 때, 비로소 경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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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자가 생명 현상을 연구할 때, 그것이 워낙에 복잡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 DNA 분석도 필요하고, 실험실에서 온갖 실험도 하고, 생물을 해부도 하고, 고릴라 침팬지 옆에서 몇 달을 앉아 있기도 한다. 또 동물 행태를 가지고 수학 모델을 만들어서 시뮬레이션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이 모아져야 생명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경제 현상이 워낙에 복잡하지 않나? 인간의 심리를 이해해야 갑자기 주식 시장이 거품이 확 일었다 꺼지는 것도 알 수 있고, 또 하드웨어를 이해해야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할 수 있고, 수요-공급의 원리도 알아야 하고, 어떤 경제 체제를 지향하느냐를 놓고 무엇이 정의인지 판단하는 기준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경제학은 종합 학문이 되어야 하고 또 경제학자는 그런 여러 분야의 공부를 통해서 경제 현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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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주의자의 거시 경제 분석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주로 단기적인 거시 경제 분석을 하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 기술 발전, 제도 발전 이런 변수에 대한 분석이 없다. 나는 반대로 그런 변수에 관심이 많다........단기적인 거시 경제를 분석하는 틀은 케인스주의자의 것이 맞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데 부족하다. 그들이 강조하지 않는 역사, 제도 등에 초점을 맞춰서 볼 때 경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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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로는 마르크스부터 우로는 하이에크까지 그 사이의 많은 경제학자의 책을 읽고 배울 게 있으면 다 배우는 사람이다. 어떤 학파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고.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언급한 경제학자는 한 명, 한 명 다 배울 게 있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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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노동자의 힘이 아무리 세다고 해서 미국, 스웨덴 수준으로 임금을 받을 수는 없다. 반면에 미국, 스웨덴은 같은 선진국이지만 미국 노동자와 스웨덴 노동자가 누리는 삶이 얼마나 다른가? 나는 <23가지>에서 선진국(미국, 스웨덴)과 후진국(아이티)의 소득 수준 차이가 기술적, 제도적 조건에 따른 생산성, 이민 제한 정책에 따라서 규정을 받는다는 걸 설명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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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사태는 과장된 것이다. 미국 측에서도 이제는 '그런 결정적인 결함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꼬리를 내리는 상황이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면서 일부에서 도요타 자동차의 결함을 과장하고, 그것이 리콜 사태로 이어진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물론 도요타가 천사 기업은 아니다. 원래 도요타의 구호가 이것 아닌가. '마른 수건도 다시 짜라.' 도요타 공장을 둘러보고 온 현대자동차 관계자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도요타 공장에 가봤더니 노동자가 뛰어다니면서 일하더라." 도요타 공장의 노동 강도가 얼마나 센지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23가지>에서 강조했듯이 노동자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각 개인을 도덕적 주체로 신뢰함으로써 결정권, 주도권을 준다는 점에서는 도요타 방식이 과거의 전형적인 대량 생산 방식과는 달라서 의미가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대안 생산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도요타 방식을 예로 든 것뿐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2&aid=0001968574
P.S
얼마 전, 국회 TV로 중계된 공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열렬하게 반론을 펼쳤는데, 대부분 쉽게 퇴치할만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인터뷰와는 달리, 장하준은 다소 얼버무리고 뒷걸음질 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신중한 학자의 자세라고 볼 수도 있으나, 기왕에 돌 깨는 작업을 시작했다면, 맑스를 좀 더 따라해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여하튼 근래에는 경제학 책들을 거의 손놓은 상태였는데, 1~2권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