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작 외젠 스크리브의 오페라 대본 <미약 Le Philtre>
대본 펠리체 로마니
초연 1832년 밀라노 테아트로 델라 카노비아나
배경 19세기 초엽 이탈리아의 어느 농촌(다른 곳도 무방하다)
<2023 로열 오페라 / 139분 / 한글자막>
로열 오페라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세스토 콰트리니 지휘 / 로랑 펠리 연출
네모리노..............농부...................리파리트 아베티샨(레제로 테너)
아디나.................부유한 농장주.....나딘 시에라(레제로 소프라노)
벨코레.................하사....................보리스 핀하소비치(바리톤)
둘카마라 박사.....돌팔이 의사........브린 터펠(베이스, 바소 부포)
자네타.................농촌 처녀...........Sarah Dufresne(소프라노)
--------------------------------------------------------------------------------------------------------------------
=== 프로덕션 노트 ===
도니체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2023년 로열 오페라 실황
대세 소프라노 나딘 시에라와 희극 역에 물이 오른 브린 터펠의 환상적 만남
'짚단 위의 아디나와 네모리노'라는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로랑 펠리 연출의 <사랑의 묘약>은 꽤 오래된 프로덕션이다. 2006년 파리 오페라 실황이 한글자막 없이 발매된 바 있고, 이번 로열 오페라 실황이 두 번째 영상이다. 그동안 호평을 받았다는 증거다. 빼어난 연출과 더불어 로열 오페라 실황은 출연진까지 호화판이다.
우리 시대 벨칸토의 여왕으로 등극한 미국 소프라노 나딘 시에라(아디나), 유럽 각지의 오페라하우스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아르메니아 테너 리파리트 아베티샨(네모리노), 희가극까지 영역을 넓힌 웨일스의 베이스바리톤 브린 터펠(둘카마라)까지 빈구석을 찾을 수 없다. 로랑 펠리의 장기인 아름다운 무대, 치밀한 배치와 동선은 물론 로열 오페라에서 처음 지휘한 세스토 콰트리니의 간결한 지휘도 인상적이다.
<사랑의 묘약>은 오페라 부파의 일반적 공식(두 젊은이의 결혼을 방해하는 희극적인 베이스의 부친이나 후견인, 대부분의 이야기가 집안에서 일어난다는 등등)을 잘 지키지 않는다. 부친도, 후견인도 없고 시종 야외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전원극(파스토랄)에 가깝다. 남녀의 전통적 역할도 뒤바뀌었다. 신분 차이가 있는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맺어지는 현대극의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데, 남녀 역할이 전도되어 잘난 여자와 별 볼일 없는 남자가 만나 여인의 포용으로 감싼다는 점에서 마치 다른 유형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결국 '순수'가 승리한다. 대부분의 희가극에서 남녀 주인공은 꾀를 내어 방해자들을 속이고 결혼에 골인하지만, 네모리노는 약장수에게 사기 당하고도 사랑의 묘약을 끝내 믿는다. 그런데 계산 밝고 까칠해 보이던 아디나가 자신보다 한참이나 모자란 네모리노의 빈 공간을 채워주기로 결심하고 사랑을 고백할 때 우리는 기뻐하면서 감동의 눈물 한 방울을 훔쳐낸다. 우리 마음 속 순수에 대한 동경을 살짝 자극한 것이 성공비결인 것이다.
로랑 펠리(1962-)는 프랑스 연출가다. 18세에 자신의 연극단을 창단할 정도로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다. 오페라 연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인데,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희가극에서 최고의 솜씨를 발휘해왔다. 시각적으로나 연극적으로나 대단히 치밀하며, 상업용 영상도 열 손가락으로는 모자랄 만큼 풍부하다.
나딘 시에라(1988-)는 10대 중반에 이미 무대 경력을 시작한 미국 오페라계의 신동이다. 엄청나게 긴 호흡과 풍요로운 음색을 장착해 리릭 콜로라추라 소프라노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며, 비주얼까지 훌륭해서 이 시대 최고의 벨칸토 소프라노로 떠오르고 있다. 조역으로 출연한 <팔스타프>, <장미의 기사>에 이어 주역 영상으로는 라 페니체의 <라 트라비아타>에 이어 이 <사랑의 묘약>이 두 번째다.
=== 작품해설 === <다음클래식백과 / 최진영 글>
사랑의 묘약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
도니체티가 1832년 완성한 2막짜리 오페라이다. 프랑스 작곡가 다니엘 오베르(Daniel Auber)의 오페라 〈미약〉(Le philtre)을 위해 외젠 스크리브(Eugène Scribe)가 썼던 대본을 바탕으로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가 이탈리아어 대본을 썼다.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작품 중 하나인 〈사랑의 묘약〉은 새로운 아리아와 아름다운 듀엣을 더해 로맨틱함을 강조하고 있다.
도니체티의 가장 사랑받는 수작
속필이었던 도니체티는 이 작품을 단 6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초연은 밀라노의 카노비아나 극장에서 1832년 5월 12일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 1838년부터 1848년 사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작품은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에서 여전히 주요 레퍼토리로서 사랑받으며 가장 자주 상연되는 도니체티의 오페라가 되었다.
원작에 로맨틱과 재미를 더하다
도니체티는 이 오페라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스크리브의 원래 대본에 많은 수정을 가하고 몇 개의 아리아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작품을 좀 더 로맨틱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의 극대화를 위하여 아름다운 듀엣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도니체티가 새로 넣은 아리아들은 흥미롭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들로 꼽히고 있다. 2막에서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나 1막에서 아디나가 부르는 ‘산들바람에게 물어보세요’(Chiedi all'aura lusinghiera)가 그것이다. 또한 1막 마지막 부분에서 둘카마라가 아디나의 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부르는 노래 ‘나는 부자이고 당신은 아름다워요’(Io son ricco e tu sei bella)가 있던 부분의 원래 내용은 둘카마라가 아디나와 벨코레의 결혼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거짓 묘약과 진실한 사랑
1막
19세기 이탈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농장주의 딸 아디나는 젊고 예쁜 아가씨로 두 젊은이로부터 동시에 구애를 받는다. 순진한 농부 네모리노와 하사관 벨코레가 그들이다. 그러나 아디나는 어느 쪽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떠난 후 네모리노가 다시 한 번 구애를 하지만 아디나는 또 다시 거절한다.
그때 마을 광장에서 자신이 유명한 의사라고 뻐기는 약장수 둘카마라가 나타난다. 순진한 네모리노는 사랑의 묘약도 있냐고 물어보고, 둘카마라는 싸구려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이라고 거짓말을 해 큰돈을 받아낸다. 네모리노는 그 약을 단숨에 마시고 내일이면 약효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마침 그곳에 아디나가 나타나고, 네모리노는 약효를 믿고 자신만만하게 행동하는데, 그에 기분이 상한 아디나는 내일 출정하는 벨코레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당장 저녁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네모리노는 절망하여 하루만 기다려달라고 애원한다.
2막
2막의 배경은 아디나의 집으로, 결혼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이다. 네모리노는 마음이 급해져 사랑의 묘약을 한 병 더 사려고 하지만 돈이 없는데, 벨코레가 입대를 하면 당장 현금으로 돈을 준다고 알려준다. 네모리노는 곧 입대 계약서를 쓰고 돈을 받아 묘약을 한 병 더 사서 마신다. 그때 동네 처녀 자네타가 네모리노가 곧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소문을 다른 여자들에게 몰래 전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동네 처녀들은 모두 네모리노에게 달라붙는다. 네모리노는 드디어 묘약의 효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하고 기뻐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디나는 네모리노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만 이제 영영 멀어졌다고 생각하고 눈물을 흘린다.
한편 아디나는 약장수로부터 네모리노의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신의 혼인서약을 취소한다. 그녀는 네모리노와 결혼을 하려 하지만 벨코레는 네모리노가 입대 상여금을 모두 썼다는 이유로 군에서 내보내주지 않고, 아디나는 네모리노의 입대 신분증을 다시 사서 해결한다. 벨코레는 아디나의 변심에 놀라면서도 체면을 차리며 네모리노를 보내준다. 두 연인은 사랑을 맹세하고 네모리노는 이 모든 것이 사랑의 묘약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약장수에게 감사를 표한다. 약장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 거짓 사랑의 묘약을 절찬리에 판매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속은 것도 모르고 약장수를 기쁘게 떠나보내며 작품은 막을 내린다.
아 어쩌면 저토록 아름다운가(Quanto e bella)
1막에서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로, 매우 감미로운 선율의 노래이다. 부자에 교양 있는 아디나에 비해서 자신은 너무 가진 것이 없음을 한탄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찬양과 자신의 마음을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
네모리노가 2막에서 부르는 로만차로, 아디나가 네모리노를 사랑하는 것을 깨닫고 눈물 흘리는 것을 네모리노가 발견하고 벅찬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다. 네모리노가 아디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는 감격적인 장면이지만, 노래의 분위기는 매우 서글프다. 앞뒤의 희극적 느낌과는 매우 단절된 느낌인 것이다. 작품의 대본을 쓴 로마니는 이 곡이 중간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깨질 것이라고 만류했으나 도니체티는 고집을 부려 이 아리아를 원하는 대목에 넣게 되었다. 대본가의 걱정대로 초연 당시 관객들은 이 아리아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날 이 아리아는 남자주인공의 진실한 마음을 담은 절절한 노래로 이 작품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리아가 되었다. 가장 유명한 아리아가 테너의 아리아인데다가 테너가 극 전반을 이끄는 주인공이 때문에 이 오페라를 흔히 ‘테너의 오페라’라고 부르곤 한다.
--------------------------------------------------------------------------------------------------------------------------------------
=== 작품해설 === <2011년 3월 9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32년 밀라노 카노비아나 극장 초연
중세 기사문학 [트리스탄]을 토대로 만든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에는 ‘사랑의 묘약 Liebestrank’이라 불리는 신기한 마법의 약이 등장합니다. 명예를 위해 사랑을 포기했던 남자 주인공 트리스탄과 그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자살을 결심했던 여주인공 이졸데는 함께 이 약을 마시는 순간 세상의 의무를 잊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들지요. 중세 문학작품은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는 말로 이 묘약의 강력한 효과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묘약을 마시게 해 그가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시면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게 되는 약’이라는 비과학적 특성입니다.
바그너의 이 걸작이 탄생하기도 전에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는 희극성과 진지함이 뒤섞인 멜로 드라마 [사랑의 묘약]으로 이 중세의 트리스탄 전설을 패러디했습니다. 묘약으로 인한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만든 것이죠. 마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의 이야기인 만큼, 묘약 역시 마법의 효력이 없는 돌팔이 약사의 사기행각으로 풀이됩니다.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 유명한 바로 그 작품인데요, 도니체티 오페라의 대본은 원래 프랑스 작곡가 다니엘 오베르가 작곡했던 외젠 스크리브의 대본 [미약Le Philtre]을 토대로 삼았다고 합니다.
하루만 못 만나도 병들게 만드는 약
들판에서 일하던 농부들과 처녀들이 잠시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지주의 딸인 여주인공 아디나는 다른 쪽 그늘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디나를 흠모하는 네모리노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는 얼마나 예쁜지 Quanto e bella’라는 아리아를 부릅니다. 마침 이 마을에 주둔하게 된 군대의 미남 장교 벨코레가 나타나, 아디나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꽃다발을 바치며 ‘그 옛날 파리스처럼 Come Paride vezzoso’을 노래합니다. 벨코레의 자신만만한 구애에 아디나는 “난 급할 거 없어요” 하며 여유를 부리지만, 정작 다급해진 건 네모리노 쪽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아디나에게 다시 사랑을 애걸해보지만 아디나는 제발 희망을 버리라고 충고하며 클라리넷과 함께 ‘산들바람에게 물어봐 Chiedi all'aura...’라고 노래합니다. 그러자 네모리노는 ‘시냇물에게 물어봐’라는 아리아로, 아디나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이때 이 마을에 약장수의 마차가 도착합니다. 19세기 초 유럽의 약장수란 신약을 개발한 의학박사나 약학박사 또는 사기꾼으로, 우리나라 약장수와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만병통치약을 판매했습니다. 피가로 같은 이발사처럼 ‘만능해결사’이며 시민사회의 새로운 오페라 주인공이죠.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모든 병을 고쳐주는 만병통치약’을 내놓는 약장수 둘카마라(‘시골양반들, 내 말 좀 들어봐요Udite, udite, o rustici’)는 ‘혹시 옛 이야기에 나오는 것 같은 사랑의 묘약도 파느냐’고 묻는 순진한 네모리노에게 싸구려 포도주를 묘약이라고 속여 비싼 값에 팝니다.
가짜 묘약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네모리노는 아디나를 보고도 “내일이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부대와 함께 다음날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벨코레가 급히 청혼하자 아디나는 건방져진 네모리노를 골려주려고 그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이에 절망한 네모리노는 ‘아디나, 내 말을 믿어줘Adina, credimi’라며 아디나에게 결혼날짜를 하루만 늦춰달라고 애원합니다.
아디나와 벨코레의 혼인잔치가 시작됩니다. 네모리노는 얼른 약효를 얻어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사랑의 묘약을 한 병 더 사려고 하지만, 이미 가진 돈을 약 사는 데 다 써버린 처지입니다. 입대하면 당장 현찰로 20스쿠디를 받는다는 벨코레의 말에 네모리노는 입대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돈을 받아 묘약 한 병을 더 사 마십니다. 그때 동네 처녀 자네타는 네모리노가 거액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소문을 다른 처녀들에게 몰래 전해줍니다. 그 얘기를 듣고 동네 처녀들이 다들 네모리노에게 달려들어 아양을 떨자, 이 사실을 모르는 네모리노는 드디어 묘약의 효과가 나타나는 줄 알고 무척 기뻐합니다.
한편 약장수에게서 ‘묘약’ 얘기와 네모리노의 입대 동기를 전해들은 아디나는 그 절실한 사랑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이때까지 아디나와 네모리노는 네모리노가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죠. 한결같은 진심과 정열에 감동 받은 아디나의 눈에 후회의 눈물이 고이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며 네모리노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을 벅찬 마음으로 부릅니다. "이제 아디나도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해. 저 눈물을 보면 알아. 아디나의 뛰는 가슴을 한 순간이라도 느껴볼 수만 있다면, 내 한숨을 그 숨결에 섞을 수만 있다면. 그때는 죽어도 좋아. 더는 바랄게 없어.” 벨코레에게 돈을 주고 입대 계약서를 되찾아 온 아디나는 네모리노에게 그 계약서와 함께 자유를 되돌려줍니다(‘받아, 너는 이제 자유야 Prendi, per me sei libero’). 사랑이 이루어지자 네모리노는 묘약의 힘을 더욱 믿게 됩니다. 약장수는 모두의 감사와 환호 속에 마을을 떠납니다.
세속적 행복을 선사받는 희극의 주인공
마침내 사랑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벅찬 감격을 담은 노래지만, 이 로만차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바순의 서글픈 선율에 실려 나오면서 이제까지 진행된 극과 음악의 희극적이고 들뜬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그래서 [사랑의 묘약]의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는 ‘이 장면에 이 아리아가 들어가면 극의 흥이 갑자기 깨진다’며 도니체티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작곡가는 이 아리아를 꼭 이 대목에 넣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대본가가 걱정한 대로 1832년 밀라노 카노비아나 극장 초연 때 관객들은 이 아리아에 전혀 열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생뚱맞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관객들은 차츰 이 아리아의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선율과 절절한 표현력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노래는 [사랑의 묘약]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공연시간 내내 기다리고 기대하는 최고의 아리아가 되었답니다.
테너 주인공이 가장 유명한 아리아를 부르는 데다 극 전체의 스토리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이 오페라는 흔히 ‘테너의 오페라’라고 불립니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자신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불렀던 30개가 넘는 배역 가운데 가장 사랑했던 배역으로 네모리노 역을 꼽았습니다. 그러나 소프라노 주인공 아디나 역시 고난도의 벨칸토 기교를 소화하면서 동시에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해야 하죠. 배경이 ‘19세기 이탈리아 시골 마을’로 설정되어 있지만, 이 오페라는 시대적, 지역적인 배경을 바꾸기가 수월한 편이어서 종종 현대적인 배경으로 연출됩니다. 이 경우 아디나는 시골 처녀가 아니라 요염하고 세련된 술집 여주인이나 도회적인 커리어우먼 또는 부잣집 딸로 등장하기도 하죠. 네모리노 역시 설정에 따라 피자 배달원, 실직한 청년, 환경미화원 등 다양한 모습입니다.
장조와 단조가 빠르게 교차하며 활기찬 음악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번갈아 나타나는 [사랑의 묘약]은 오케스트레이션의 약점은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한 부분이 한 순간도 없을 정도로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 오페라입니다. 외모와 부, 총명함 등 외적으로는 모든 것을 갖춘 듯하지만 자존심 강하고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지닌 아디나는 입으로는 사랑을 비웃지만 마음으로는 네모리노 못지않게 가장 진실한 사랑을 갈망하는 주인공입니다. 비극이라면 이 두 사람이 죽음으로 결합하겠지만, 희극의 결말은 언제나 평범한 주인공이 사랑, 재산, 고귀한 신분 등의 세속적인 행복을 통째로 얻는 것이죠. [사랑의 묘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 작품 해설 === <2010년 1월 28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남 몰래 흘리는 눈물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오페라 붓화(오페라부파, Opera Buffa=희가극)의 시작이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연극 코메디아 델라르테(comedia dell'arte=즉흥 희극)이며, 도니제띠(가에타노 도니제티, Gaetano Donizetti,1797-1848)가 [사랑의 묘약]라고 이름 붙인 이 작품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속에 서정적인 달콤한 맛을 섞어 전원적인 서정극을 만들었다. 각본은 로마니(Felice Romani)이다.
가짜 '사랑의 묘약'이 진짜 효력을 발휘한 이야기
제2막에 나오는 유명한 이 아리아는 한 젊은 사나이의 서투른 연애 솜씨, 그 우스꽝스러움, 그리고 답답한 안타까움이 다 담긴 내용이다.
네모리노는 별로 넉넉지 않은 시골 청년이지만 대지주의 딸 아디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한 그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동리 처녀들에게 읽어주는 아디나에게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고 한숨만 쉬고 있을 뿐. 이런 때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사랑의 묘약’이나 있었으면 하고 망상하고 있을 때 마침 엉터리 장돌뱅이 약장수 둘까마라가 나타난다. 한편 군인인 벨꼬레 상사도 그녀에게 청혼한다. 급히 입대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는 급히 결혼식을 올리자고 서둔다. 하는 수 없이 네모리노는 약 장수의 꼬임에 빠져 '사랑의 묘약(실은 포도주)'을 사기 위해 군대에 들어갈 결심을 한다. 상사가 군에 입대하면 보상금을 준다는 권유를 따라 입대 약속을 하고 돈을 받아 신통한 약을 사 먹는다.
때마침 마을에 네모리노의 삼촌이 죽어 막대한 재산이 굴러든다는 소문이 돈다. 마을 처녀들이 그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아디나도 불안해져 약장수에게 의논하고 드디어 네모리노의 참마음을 알고 그 사랑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이제 정말 약 효력이 나타났다고 기뻐하면서 그는 하프의 분산 화음을 타고 울려 퍼지는 화고트의 우아한 가락을 따라 이 서정적인 로만짜를 부른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
남 몰래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눈에 맺혔다.
쾌활한 아가씨들 부러워하고 있네.
이 이상 무엇을 알 필요가 있을까?
이 이상 무엇을 알 필요가 있을까?
사랑하고 있어, 나를. 그녀가 나를. 알 수 있지, 나는.
한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의 두근거림이 들리고,
내 한숨이 잠시 동안,
그녀의 한숨과 섞이는 것이.
그녀의 가슴의 두근거림이 들리고,
내 한숨이 그녀의 한숨과 섞이는 것이.
하느님 죽어도 좋습니다.
이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아 하느님 죽어도 좋습니다.
이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사랑으로 죽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된 네모리노의 해피 엔딩
아디나는 네모리노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위해 자진 입대를 한 것을 알고 크게 감동하여 굳게 결심 한다. 곧 그녀는 네모리노의 입대 계약서를 다시 찾아오고 둘은 맺어진다. 벨꼬레 상사는 이 세상에 여자가 아디나 뿐이냐며 허풍을 떨지만 그녀를 빼앗긴 사실을 아쉬워하면서 그 자리를 얼버무린다. 보라는 듯이 ‘내 약은 만능(萬能)이야’라고 자랑 하며 느긋해 하는 약장수 둘까마라. 떠들썩한 마을 사람들의 잔치 분위기 속에 막이 내린다.
1920년 12월 카루소(Enrico Caruso)는 뉴욕에서 네모리노 역을 맡아 출연 중 갑자기 기침을 하고 피를 토했다. 관중의 열렬한 박수갈채 속에 오페라는 끝났으나 그로부터 9개월 후에 그는 죽었다.
들을 만한 음반과 DVD
[CD] F. 몰리나리-프라델리 지휘, 휘렌쩨 5월 음악제 관현악단/합창단(1955) 디 스테화노(T) DECCA
모노 녹음이지만 젊은 디 스테화노와 코레나(Fernando Corena)는 목소리에 눈부신 힘과 여유가 있다. 특히 디 스테화노의 서정적인 노래에 일관하는 뛰어난 아리아는 듣는 이를 황홀경에 몰아넣는다. 한편 둘까마라 역의 코레나(Bs)는 싱싱하고 힘찬 노래로 드라마에 활기를 불어 넣고 벨꼬레 역(Bs)을 맡은 카페키(Renato Capecchi)는 단정하게 노래하여 붓화 가수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다. 리릭 소프라노의 매혹적인 미성을 발휘하여 빈 음악계의 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궤덴(Hilde Gueden)의 아디나 역(S)도 절묘한 노래를 들려준다. 몰리나리-프라델리의 폭 넓은 스케일과 넉넉한 템포 속에 경쾌하고 활달하게 진행하는 이 오페라는 다시 없이 흐뭇하고 도취적인 ‘악흥(樂興)의 한때’를 마련해 준다.
[CD]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89) 파바로티(T) DG
매혹적인 아디나 역의 배틀(Kathleen Battle), 연기력이 뛰어난 둘카마라 역의 다라(Enzo Dara), 전성기 파바로티의 순진한 네모리노 역 등 최상의 배역이다. 지난날 네모리노 역 하면 탈리아비니였으나 파바로티가 그에 못지않은 노래를 과시한다. 그 행동, 표정은 호인이며 약간 멍청하고 고지식한 네모리노 그대로이다. 벨꼬레 역의 누찌(Leo Nucci)도 노련한 역할이 돋보인다.
[DVD]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92) 파바로티(T) DG
3년 후 메트로폴리탄에서의 실황연주이다. CD 때와 달라진 가수는 누찌가 후안 폰스(Juan Pons)로 바뀐 것뿐이다. 연출은 코풀리(John Copley)이며 무대에 그림을 많이 매달아 전원 풍경을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다. 연주는 CD와 같으나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생동하는 화면과 메트로폴리탄의 시원한 무대가 훨씬 오페라를 감상하는 데 실감이 난다.
[DVD] 알후레드 에슈베 지휘, 빈 국립 오페라단 관현악단/합창단(2005) 비아존(T) 오토 쉔크 연출, EMI/Virgin
러시아 출신의 소프라노 네트레브코(안나 네트렙코, Anna Netrebko)와 멕시코 출신의 테너 비아존의 잘쯔부르크(잘츠부르크) 축제의[라 트라비아타](2005년 8월)는 온 유럽에 공전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이었으나 이 보다 4개월 먼저(2005년 4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있은 이 공연 실황도 화제 거리였다. 네트레브코의 빼어난 미모와 연기력은 어느 명배우와도 비길 만하고 둘의 목소리는 가슴이 후련해질 정도이며 고음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는 창법은 노련한 대가를 능가할 만하다. 네트레브코는 비아존을 “그의 노래와 연기력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는 목소리에 극적 긴장감을 싣고 메짜 보체를 훌륭히 소화하지요. 그렇게 높은 음을 그와 같이 아름답게 부를 사람은 없어요.”라고 높이 평가한다. 이 칭찬은 그녀에게도 고스란히 돌릴 수 있는 표현이다. 여기에 누찌(Leo Nucci)의 노련한 벨꼬레 상사, [돈 죠반니]에서 레포렐로 역으로 이름을 떨친 다르칸젤로(Ildebrando D'Arcangelo)가 조역을 맡아 드라마를 한층 빛내 주고 있다. 이 공연 실황에는 비아존이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을 불렀을 때 감동한 관중의 박수가 그치지 않아 다시 한 번 부르는 광경을 직접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 몰래 흘리는 눈물 -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내 마음의 아리아)
|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1.23 14:0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1.26 12:2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2.13 11:0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2.25 11:2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3.18 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