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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궐을 닮은 절집, 수락산 흥국사(興國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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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丁亥年) 12월의 끝무렵, 친한 후배와 함께 수락산(水落山) 흥국사를 찾았다.
흥국사는 1990년 이후, 여러 번 발걸음을 했던 곳이라 그리 낯선 곳은 아니다. 하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절의 모습이 크게 바뀐 것도 아닌데도, 절이 늘 새롭게 와 닿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웅보전과 만월보전 정도만 있구나' 여기고 가볍게 생각했으나, 2006년 이후 절에 상당한 수
의 보물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곳은 언제나 구미가 당기는 법이라, 그 해 후반에 산문을 찾아간
바가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새로운 보물들이 쏙쏙 정보망에 걸려들면서 다시 한번 갈
기
회를 찾다가 2007년의 끝을 장식할 겸 이렇게 다시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지하철 4호선의 북쪽 끝인 '당고개역'에서 남양주시내버스 10-5번을 타고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인 덕릉
고개를 넘었다. 예비군의 애환이 가득 서린 덕릉교장을 지나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에
조용히 앵긴 덕릉
(德陵)마을에 발을 내딛는다.
♠ 영험한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도량(藥師度量), 조선 왕실의 원찰(願刹)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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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이 승하하자 덕흥군의 아들인 하성군(河城君)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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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국사
만월보전(滿月寶殿) |
광해군(光海君) 이후 마지막 황제
순종까지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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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국사 응향각(凝香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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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정조 17년) 왕실에서
승려 기허(騎虛)에게 내탕금(內帑金)을 내려 절 전체를 손보게 했는 |
1917년 주지 범화(梵華)가 불전 대부분을 중수했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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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전 앞에 놓여진 석조(石槽) |
억불숭유(抑佛崇儒)를 내세우며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 정부는 뒷구멍으로는 원찰(願刹)이니, 기 법당 앞에 으례 있는 탑이나 문루 대신
커다란 대방채를 두어 절 내부를 가린 특이한 가람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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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국사 영산전(靈山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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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단 좌우로 늘어선 16나한도와 나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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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나한은 석가여래가 열반한 이후, 미륵불이 나타나기까지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불단 좌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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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들이 보관된 장경각(藏經閣) |
▲ 영산전 앞에 매달린 조그만 동종(銅鐘) |
♠ 흥국사 대웅보전(大雄寶殿) ~ 경기도 지방문화재자료
5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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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목조광배와 궁궐 건축물의 축소판 같은 닫집의 화려함에 좀처럼 눈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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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칠성원군(七星元君) 등 칠성신앙과 관련된 60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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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앞 돌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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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추녀마루의
5개의 잡상들 |
♠ 흥국사 독성전, 시왕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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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드러진 바위를 옆구리에 낀 독성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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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전은 특이하게도 대웅보전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절 서남쪽에 잠든 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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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왕전을 지키며 들어앉은 |
♠ 흥국사 만월보전 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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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하각(丹霞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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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釋迦塔)을 닮은 흥국사 3층석탑 |
♠ 흥국사 통일약사대불(統一藥師大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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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 촬영 일시 - 2006년
12월 12일 / 2007년 12월 29일
* 작성 시작일 - 2008년 1월 1일
* 작성 완료일 - 2008년 1월 4일
* 숙성기간 ~ 2008년 1월
4일 ~ 2008년 3월 4일
* 공개일 - 2008년 3월 4일부터
* 마지막 수정일 - 2008년 3월 11일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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