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사슴이 사는 동굴
서정애
붉은 불빛 한 줄기가 게슴츠레 눈을 뜬다. 확대기에 필름을 끼우고 적정 빛을 준 인화지를 바트에 넣고 흔든다. 마지막 수세를 거치면 흑과 백의 피사체가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액체 속의 인화지를 살짝 흔들어준다. 비로소 필름 속에 갇혀있던 사물이 제 존재를 드러낸다.
중국 윈난성에는 ‘붉은사슴동굴’이 있다. 동굴 벽면에 붉은사슴이 그려져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만 오천 년 전쯤의 벽화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슴은 큰 뿔을 들이밀며 금방이라도 벽을 박차고 나올 듯 뒷다리를 앙버티고 있다. 빙하기에 살았다는 붉은사슴동굴인은 어떤 연유로 캄캄한 곳에서 벽화를 그렸던 것일까. 주술이나 신앙의 표현이었겠지만 자연의 위대함을 빌려와 자신의 소망을 거기에 투영한 게 아니었을까.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날카로운 돌도끼로 음각을 하며 동물의 윤곽을 그리고 마침내 붉은 안료를 입혀 완성할 때까지.
네 살 때부터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났다. 객지에서 맞벌이를 했던 젊은 부모님은 나를 돌볼 수가 없었다. 봄가을 추수와 명절에만 왔던 엄마가 떠나고 나면 좁고 어둑신한 다락으로 숨어들었다. 어둠과 햇살이 반반 섞인 천장 낮은 그곳은 나의 유일한 위안처였다. 엄마 보고 싶은 마음을 인형처럼 껴안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선 언제나 엄마가 등을 보이며 떠나고 있었다.
도시는 유약한 아버지에게 설 자리를 쉬이 내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거리를 찾아 도시 변두리를 헤맬 동안 엄마는 내 키만큼 쟁인 마늘 접을 머리에 이고 나가 난전 한 귀퉁이에 부렸다. 때글때글한 햇볕을 헤진 머릿수건 하나로 받아내며 마늘 접이 줄어들길 기다렸다. 꼬챙이처럼 말라가는 당신 몸에선 늘 마늘냄새가 났다. 네 명의 가족이 살기엔 단칸방은 구겨진 종이상자처럼 좁기만 했다. 젖먹이 동생을 업고 행상을 나선 엄마가 돌아올 때쯤이면 언제나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문간방, 찌그러진 쪽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었다. 한기 가득한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조막만한 손으로 쌀을 씻고 설거지를 했다. 여름이면 빛이 들지 않아 습기 때문에 늘 축축했으며 몸에는 자꾸 붉은 습진이 생겼다. 나의 유년은 동굴 같은 반 지하에 담겨 흘러갔다.
나는 동물사진을 즐겨 찍는다. 최대한 근접촬영을 해야 하므로 매번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른다. 언젠가 산 너머 목장에서 탈출한 사슴이 동네 과수원에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족인 듯 네 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던 그들은 며칠 간격으로 눈에 띄었다. 사슴을 찍으려고 과수원 비알에 숨어 한 나절을 기다렸다. 마침내 녀석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먼 산을 응시하는 눈, 미세한 벌레들의 소리를 감지하려는 듯 쫑긋하게 오므린 귀, 바람의 냄새까지 맡으려는 듯 실룩이는 코,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카메라에 붙잡혔다 싶은 순간 녀석들은 덤불 저쪽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어릴 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성장했기 때문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서툴렀다. 외톨이가 된 나는 스스로를 가두었다. 때로는 경계를 넘어 내게로 오는 선의의 사람까지 배척 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했고 조금이라도 비켜섰다 싶으면 자책하고 불안해했다. 그럴 때 사진이 내게로 왔다. 사진은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제대로 자라지 못한 유년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굴 속에 칩거하고 있는 나를 불러내어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토닥여주었다. 오랜 어둠을 뒤로 하고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내밀던 날의 그 눈부심을 기억하고 있다.
창문을 닫고 불을 끄고 커튼을 내리면 암실엔 붉은 불빛만 가늘게 비친다. 붉은 빛은 파장이 길어 인화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암등이라는 그 불빛에만 의지해서 인화작업을 시작한다. 원하는 색감을 얻을 때까지 노광량 조절을 반복한다. 약품 속에서 인화지를 흔들다보면 손가락이 갈라지곤 했다.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물에 투영된 나였고 외부세계와의 소통이었다. 동굴 속에 갇힌 ‘어린 나’를 동굴 밖으로 이끄는 매개체였다.
언젠가 TV영상을 통해 몽골 흡스굴 호수 근처의 산악에 살고 있는 붉은사슴을 본 적이 있다. 몸무게 사백 킬로그램에 달할 정도로 덩치가 크고 암수가 따로 무리지어 살며 짝짓기 때만 만난다고 한다. 동네에 간간이 내려오던 사슴보다 더 컸다. 해발 삼천 미터의 눈 덮인 산에서 고립을 즐기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붉은사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언젠가 흡스굴을 찾아가 보리라.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일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 시간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정신적인 성장을 가져온다고도 했다. 사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촘촘히 시간을 채집하며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세계이다. 또한 내가 해석한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강력한 매체이다. 자신과 마주하는 그 순간은 함께 있을 때 깨닫지 못한 내면의 더 큰 나와 만날 수 있었다.
인간은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온갖 상처를 받으며 성숙해 가는지도 모른다. 장수잠자리가 애벌레에서 몇 번의 탈의를 통해 성충이 되어가는 것처럼. 삶이 마디마다 상처와 지혜가 정교하게 얽혀있는 퍼즐 판이라면 혼자만의 견고한 시간은 그것을 완성해줄 수 있는 열쇠는 아닐는지.
어느덧 내 어릴 적 엄마의 나이 곱절 가까이 되었다. 자식들에게 아픔을 답습시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다. 직장 일로 소홀히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도 이제 다 내 곁을 떠났다. 딸 둘은 제 삶을 찾아 일찌감치 이국으로 나갔고 아들마저 뒤따라 객지로 갔다. 아이들 셋이 모두 떠난 집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 같다. 적막 속으로 바람소리만 윙윙거린다. 나는 또다시 어둠에 갇힌 걸까. 잠시 밀쳐두었던 카메라를 새로이 꺼내든 것도 그즈음이었다.
인화된 사진을 집게로 줄에 건다. 가느다란 빛이 허공을 음각한다. 어제 찍은 이슬 접사사진이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같다. 문득 암실 한켠에서 붉은사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저벅저벅 빙하기의 사람이 어둠을 밀치며 걸어 나오고 있다. 시원의 아득한 저 너머에서.
ㅡ 2020 제주新보 당선작